명동 3구역 세입자 농성장, 강제 철거로 충돌

트위터로 달려온 시민과 함께 되찾아.. 향린교회 신자들과 촛불예배

서울 중구 명동의 재개발 3구역에서 상가세입자들이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농성 중인 한 카페에 재개발 시행사측 용역업체 직원들이 들이닥치면서 충돌을 빚었고 그 과정에서 세입자 한 명이 실신해 구급차에 실려갔다.

세입자들은 농성장과 가까운 향린교회에 도움을 청하고,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트위터'를 통해 이 사실을 알렸다. 곧 향린교회 신도들과 트위터를 통해 달려온 시민들이 용역업체 직원들과 대치상황을 2시간 반가량 이어갔고, 6시 10분경 용역업체 직원들이 물러가면서 세입자들은 농성장을 되찾았다.

농성장을 되찾은 세입자와 시민들이 용역업체 직원의 재침탈을 막기 위해 스크럼을 짜자 경찰은 신고되지 않은 집회라며 해산을 명령했다. 세입자들은 “용역업체 직원들이 불법적으로 폭력을 휘두를 때는 방관하더니 이제 와서 불법집회 타령이냐”며 항의했고, 향린교회 신도들과 길거리 예배에 돌입했다.

  서울 중구 명동 재개발 3구역의 농성장을 용역업체 직원들이 침탈해, 시민들이 다시 셔터를 뜯어내고 있다. [출처: 고동주 기자]

3시 30분경 용역업체 직원 침탈 들어와

명동성당 맞은편 일대에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이곳에 세를 얻어 장사하던 2·3·4구역 상인들은 6월 14일부터 ‘적절한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3구역의 카페 ‘마리’를 점거해 농성 중이다.

2·4구역 상인대책위 위원장을 맡은 이근혜(31)씨는 “3시 30분경 어떤 아저씨 한 분이 들어오기에 함께 싸우기 위해서 들어온 줄 알았는데, 갑자기 이불로 우리를 덮더니 아수라장이 돼버렸다”며 상황을 전했다.

용역업체 직원들은 세입자들을 이불로 쌓아 농성장 밖으로 내던졌다. 세입자 원성희(52)씨는 “안에 아직 남아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용역들이 셔터를 내리고 막고 있다”며 불안해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향린교회 신도와 농성을 함께하던 시민들이 용역업체 직원들과 대치하기 시작했고, 곳곳에서 ‘트위터’로부터 소식을 듣고 왔다는 시민들이 농성장 앞으로 모여들었다.

  농성장에서는 많은 시민이 스마트폰으로 현장 상황을 '트위터'로 알렸다. [출처: 고동주 기자]

용역 직원은 방관하고, 세입자와 시민에게는 불법집회 운운하는 경찰

세입자가 용역업체 직원의 폭력행위를 신고하자 경찰이 도착했다. 세입자들은 용역 직원들을 현행범으로 체포하라고 주장했으나, 경찰은 농성장 앞에 드러누운 3구역 대책위 위원장에게 몇 마디 질문을 한 후 자리를 떴다. 농성장 안에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에 대한 확인 요청에도 경찰은 “채증한 것이 있으니 고소하라”며 응하지 않았다.

농성장 앞에 모인 시민들이 다시 경찰에 신고했고, 그동안 용역업체 직원들이 막은 농성장 안에서는 노루발못뽑이(속칭 빠루)로 집기를 부수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농성장 앞에 모인 사람들은 “길거리에 살 수 없다, 살인철거 중단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연좌농성을 벌이기 시작했다.

6시경 세입자와 시민들은 몸을 밀어붙여 농성장 셔터 열기를 시도했다. 순식간에 용역직원과 뒤엉키면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다시 경찰이 10여 명의 대원과 함께 다시 농성장에 오면서 셔터를 막고 있던 용역직원들은 물러났다.

세입자와 용역업체 직원들의 충돌에 대해 경찰의 방침을 물었으나 경찰은 “방침이 정해지면 알려주겠다”고 간단히 대답했다. 그 방침은 확인할 수 있었는데, 셔터를 완전히 열고 농성장을 되찾은 후 재침탈을 막기 위해 농성자들이 스크럼을 짜고 있자, 신고되지 않은 집회라며 해산하라는 것이었다.

  시민들이 농성장에 다시 진입하려 하자 용역 직원과 몸싸움이 벌어졌다. [출처: 고동주 기자]

  실신한 세입자가 구급차에 실려가는 중에 경찰이 신고되지 않은 집회라며 해산 방송을 하자 시민들이 항의하고 있다. [출처: 고동주 기자]

농성자들 길거리예배로 맞서다

세입자들은 되찾은 농성장을 정리하고, 농성장을 찾은 시민들은 농성장 앞에 눌러앉아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향린교회 조헌정 목사는 침탈당한 농성장에서 짓밟힌 성경책을 발견했다며 책을 들어 보이며 “정녕 나는 너희의 죄가 얼마나 많고 너희의 죄악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다. 너희는 의인을 괴롭히고 뇌물을 받으며 빈곤한 이들을 성문에서 밀쳐 내었다”는 구약성경 아모스서 5장을 읽었다. 조 목사는 “저들의 힘이 강하지만, 도덕성이 없으므로 결국 우리가 승리할 것”이라고 세입자들을 위로했다.

경찰의 이어지는 해산 경고 방송에도 농성장 앞 시민들은 자리를 지켰다. 3구역 상인 대책위 위원장 배재훈 씨는 “철거를 당할 때는 혼자인 줄로만 알았는데, 오늘 찾아와주신 여러분을 보니 대한민국의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감사를 표하고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인권운동사랑방의 미류 인권활동가는 얼마 전 불타버린 포이동을 다녀왔다며 “거기서 본 친구들을 여기서도 봐서 반갑다”고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서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라며 ‘조율’을 불렀다. 얼마 전 TV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에서도 나왔던 노래여서 많은 이들이 따라 불렀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예배를 이어갔다. 언제 다시 용역업체 직원들의 침탈이 있을지 모르는 농성장이다. 이들이 들고 있는 촛불이 위태롭게 느껴지는 이유다. (기사제휴=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부서진 농성장 안을 다시 정리하고 있는데, 용역 직원 한 명이 여전히 나가지 않고 지켜보고 있다. [출처: 고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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