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철거해도, 삶은 철거할 수 없다

명동 재개발, 제 2의 용산 아닌 두 번째 두리반 승리로 남아야...

1977년부터 진행돼온 명동 재개발 계획이 2년 전부터 다시 추진되면서 명동 재개발 지역 상인들은 지난 4월 26일 재개발 시행사로부터 ‘5월 31일까지 명도를 하지 않으면 강제 명도를 단행하겠다’는 통보문을 받았다. 이미 4월 중, 3구역은 강제 명도집행이 끝났지만, 세입자들은 2구역 대책위원회와 함께 3구역의 카페 ‘마리’에 상황실을 마련, 14일부터 생계를 건 무기한 농성을 시작했다.

  15일부터 이웃들과 트위터, 페이스북을 통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모여, 연대의 촛불을 함께 들고 있다. [출처: 정현진 기자]

지난 15일부터는 용산의 악몽을 기억하고, 최근 531일 만에 시행사와 이주대책에 합의한 ‘두리반 투쟁’에 힘입은 학생들과 시민단체 그리고 향린교회 교인들은 카페 마리를 찾아 철거용역에 맞서 연대 농성을 벌이고 있다.

현재 명동 3구역 재개발 시행사는 명동도시환경개발주식회사이며, 기업은행 6%, 대우건설 44%, KTB펀드 49%, 시행사 명래방 1% 등의 지분으로 구성됐다. 의사결정권은 기업은행으로부터 투자를 받는 KTB펀드에게 있다. 2010년 4월 사업시행허가와 같은 해 11월 도시관리허가가 내려지면서, 상인들은 2011년 3월부터 천막농성에 들어갔고, 가장 먼저 재개발 작업이 진행된 명동 3구역은 지난 4월 8일과 6월 4일에 각각 6채와 5채의 명도집행이 이뤄져 철거를 진행중이다. 아직 10여곳의 상가가 영업중인 2구역과 4구역도 머지않아 같은 절차를 밟게 된다. 특히 2구역에는 향린교회가 자리하고 있으며, 아직 명동성당 측의 반응은 보이지 않지만 이번에 철거용역이 침탈한 3구역 철거민(상인) 중에는 명동성당 신자들도 포함되어 있어 진통이 예상되고 있다.

세입자들에 대한 보상, 어떻게 이뤄졌나

한편 시행사 측은 “102세대 가운데 11세대를 제외한 나머지는 최소 120%씩 받고 합의해 나갔다”고 말하면서, “중구청이 선정한 감정평가기관으로부터 각 370만~1400만원의 보상금액이 책정됐다. 11세대에게도 이것보다 많은 액수를 제시하면서 합의를 하려고 해도 이들은 수평이동을 요구한다”며 세입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비용과 형평성의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 시행사는 재개발 대상 건물들을 모두 사들인 상태로 철거 예정 건물의 건물주가 곧 시행사가 된다. 그런데 용산 참사 이후 바뀐 법에 의하면, 재개발 사업 인가 후에는 건물주가 세입자의 이주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래서 시행사는 그 비용을 치르지 않기위해 사업 인가 전에 세입자들을 강압적으로 내보내려고 하고 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서울 중구청은 상인들과 13차례에 걸쳐 민원 협의를 했다고 밝히면서, “상인들이 처음에는 추가보상을 요구해서 시행사와 중재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합의가 안되니까 상인들이 최근에는 수평이동, 즉 다른 가게 얻어달라고 말을 바꿨다”고 말했다. 그러나 세입자측은 이들이 말하는 ‘협의’란 철거 전의 명분을 쌓기위한 요식행위였을 뿐, 실질적으로 성의를 갖고 이뤄진 협의가 전혀 아니었으며, 협의 후에는 바로 철거가 이뤄졌다고 반박했다.

세입자들은 전직 금융관료가 지분을 가진 회사와 대형 은행들이 참여하고 있는 수천 억원대 사업인데도 세입자를 위한 현실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하면서, 시행사들에 맞서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에게 더 많은 두리반을! [출처: 정현진 기자]

문제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과 권리금 대책

9년 전부터 분식집을 운영해온 한 세입자는 보상금으로 열달 치 월세에 해당하는 천만원을 받았다. 그러나 처음 가게를 열 때 치른 비용은 권리금과 인테리어 비용까지 1억 6천만원이었다. 설상가상 명도비용 400만원까지 부담해야 했으며, 인근 상점들 역시 370만원, 700만원 등이 보상금의 전부다.

용산 참사는 도시 재개발 및 정비 사업으로 종전의 권익을 상실한 세입자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음으로서 비롯됐다. 그러나 용산 참사의 쟁점이자 상가 세입자들의 보상 희망 1순위인 ‘권리금 보상’은 여전히 미해결 상태다.

용산 참사 직후 정치권은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 김희철 민주당 의원, 신상진 한나라당 의원 등을 중심으로 세입자를 보호를 위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정법) 개정을 준비했다.

도정법 개정안의 핵심은 '보상 문제'로 김희철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은 특히 세입자의 권리금 중 영업권리금을 법의 보호 대상으로 포함시켜 상가 건물의 멸실 등으로 인한 영업의 휴업 또는 폐지 전의 1년간의 영업이익과 해당 상가건물의 입지, 규모 등을 고려해 산정하도록 했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 발의했던 도정법 개정안은 순환정비방식의 정비사업을 의무화 해 세입자의 이주대책을 수립하도록 하는 조항이 포함됐다. 순환정비방식은 정비구역의 내·외에 새로 건설한 주택 또는 이미 건설되어 있는 주택에 그 정비사업의 시행으로 철거되는 주택의 소유자 또는 세입자가 임시로 거주하게 하는 등의 방식으로 그 정비구역을 순차적으로 정비하는 방식이다. 또 이 발의안에는 국토해양부장관으로 하여금 정비사업으로 건설하는 주택 중 임대주택의 비율을 100분의 30 이상으로 고시하도록 하는 조항도 담겼다.

그러나 권리금의 유형이 워낙 다양하고 정형화되지 못해 법률적 정의를 내리기 어렵다는 점, 영업이익이 경기상황 등에 따라 증감, 소멸할 수 있어 권리금 산정을 하기 위한 객관적 기준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점으로 난항을 겪었다. 현재 도정법의 최종적 개정 완료는 미지수다. 4대강 예산 문제로 연내 처리가 무산되면서 법안소위로 회부되어 있는 상태다.

현 도정법, 건설사 개발 사업만을 위한 악법
세입자들,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싸워야만 한다


일방적으로 건설업자들의 입장만을 고수하는 상가임대차보호법 중 일례로 제10조의 '상가세입자는 5년간 영업권을 보장 받는다'는 내용은 상가세입자들의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데, 그나마 '재개발, 재건축일 경우엔 예외'라는 단서 조항을 달아 5년의 영업권조차 박탈하는 실정이다.

또 도정법은 전형적인 건축업자 위주의 법으로 건설사가 결정하는 대로 '재개발이 재건축 지역이 될 수도 있고, 재건축이 재개발 지역'이 될 수도 있다. 건설사가 토지나 건물매입이 손쉽다고 생각하면 재건축으로 결정하고, 어렵다고 생각하면 재개발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재개발의 경우에는 상가세입자들에게 영업보상 4개월과 시설투자에 대한 보상의 의무가 있지만, 재건축일 경우엔 보상의 의무가 없다. 사람이야 어떻게 되든, 개발을 쉽게 하고 건설업 흥행에만 목숨을 건 법안이다.

이미 용산참사의 참상을 목격하고, 두리반의 승리를 맛본 이들은 여러 형태로 알리고 모여 명동 철거지역에서 함께 밤을 지새고 있다. 11세대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면서도 세입자들은 끝까지 힘을 내서 싸울 것이라고 촛불을 들고 다짐한다. 원하는 것은 단지 지금처럼 사는 것, 그것 뿐인데도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은 또 그렇게 거리에 천막을 치고 촛불을 들고 있다. (기사제휴=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카페 '마리'가 또다른 승리의 해방구가 되기를 갈망하는 이들이 용역에 의해 침탈되었던 '마리'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출처: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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