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리반의 승리, 어떻게 이어갈까

두리반 대토론회 ‘매력만점 철거농성장’ 열려

“협상 자체는 지난했어요. 녹음기 틀어놓은 것처럼 같은 얘기를 계속 반복해야 하는 과정이 몇 달 동안 지속됐죠.” 지루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표정이 되레 즐거워 보였다. 승리한 투쟁, 두리반에 대한 이야기였다.

두리반은 한국사회에 무엇을 남겼고, 두리반의 승리를 어떻게 제2, 제3의 승리로 이어갈 수 있을까. 이제 ‘작은 용산’이라는 수식어를 떼어버리고 다른 철거투쟁의 새로운 수식어가 될 두리반에서 28일 ‘매력만점 철거농성장’ 토론회가 열렸다. 모든 철거농성장이 또 다른 ‘두리반’이 되길 바라는 이들로 두리반 3층이 꽉 찼다.

“시행사랑 같이 가게 보러 다니며 배상금 산출해”

이날 토론회에서 ‘두리반 합의서의 성격과 의의’에 대해 발제를 맡은 두리반 대책위의 김성섭 씨는 시행사측이 “기존 상권과 유사한 수준의 장소에서 재개할 수 있도록”이라는 말을 바꾸려 마지막까지 꽤나 애썼다며 합의 과정을 전했다.

  왼쪽부터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이원호 용산참사진상규명위 사무국장, 김성섭 두리반 대책위, 단편선 자립음악생산자조합 활동가

배상금이 산출된 과정도 인상적이었다. “협상 과정에서 금액에 대해 시행사 측이랑 이견이 있었어요. 그쪽에선 처음 두리반이 여기 세입자로 들어왔던 보증금의 두 배 정도로 마무리 해보려 하다가, 2005년 문 열 때 들었던 비용 정도로 마무리 지으려 했거든요. 시행사는 ‘든 돈 물어주겠다는데 왜 그걸 못하겠다고 하느냐’ 하고 우리는 ‘니들 같으면 그 돈으로 문 다시 열 수 있냐’ 하고. 그러다 협상 끝내고 나오면서 무심코 ‘가게 내려면 얼마가 드는지 같이 집이나 보러 다니자’고 얘기했었는데 한 2주 있다가 전화가 오더라고요. 가게 보러 가자고. 그래서 같이 홍대 인근 지역 부동산을 돌아다니면서 비용을 확인하고 그 중간 금액으로 합의를 봤죠.”

이어 그는 두리반 합의서의 중요한 의의로 △철거민이 직접 작성한 합의서로 조인이 됐다는 점 △인근 지역에서 영업을 재개할 수 있도록 명시한 점 △시혜적 차원의 ‘보상’이 아니라 징벌적 의미가 있는 ‘배상’을 받았다는 점 △‘배후세력’ GS건설이 당사자로는 명시 안 됐지만 ‘관계사’로라도 합의서에 들어간 점 등을 꼽았다.

“새로운 두리반, 사적 공간 넘어 사회적 공간 됐으면”

자립음악생산자조합에서 활동하고 있는 단편선 씨는 “많은 사람들의 연대로 확장됐던 두리반 공간이 합의를 거치면서 다시 ‘사적 공간’으로 축소된 것 같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두리반이 처음에는 철거농성으로 시작했지만 작년 2월을 지나면서 청년, 아나키스트, 문화운동가, 페미니스트, 생태주의자 등 걸치지 않은 데가 없을 정도로 많은 운동들과 접합돼 결과적으로 두리반은 한국의 진보적 운동들이 총체적으로 녹아든 공간이 됐다”며 “그런데 합의하는 과정에서 다시 사적 이익으로 작아져서 끝난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사회적, 철거농성, 세입자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고 사회적 의제화하는 데는 꽤 성공했지만 규제나 법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타격을 주지 못했고, 또 이후의 두리반에 대한 상을 주체적으로 만들어내지 못했다”며 “처음의 조그만 사적 공간과 다른 형태의, 훨씬 공공적이고 사회적인 공간으로서의 두리반 이미지를 지금부터 찾아나갔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고립된 철거투쟁, 지역문제로 대응해야”

이원호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은 “두리반이라는 공간이 이후에 어떤 공간이 되느냐보다 개발에 맞선 두리반의 운동이 어떻게 확장되고 다양해질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원호 사무국장은 “두리반에 다양한 세력들이 연대해서 새로운 운동문화를 창출하고 승리 이끌어낸 것이 존경스럽고 기쁘고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모든 재개발 철거지역이 두리반처럼 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홍대라는 지역적 배경과 또 다른 특수한 조건들을 배제한 채 두리반의 방식을 다른 곳에 그대로 이식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원호 사무국장은 “지역적 연대”를 강조했다. “개발은 그 지역의 사람, 정치구조 등 지역 전반의 상황을 완전히 바꿔놓아 십 수 년 동안 일군 지역운동의 성과도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만든다”며 “개발이 계속 개발지구의 철거민 문제로 국한돼 개발지역이 지금처럼 고립된 철거 싸움을 하는 게 아니라 지역적 연대를 묶어내 지역문제로 대응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원호 사무국장은 상가세입자에 대한 재정착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상대적으로 오랜 투쟁으로 임대주택, 순환용주택 제공, 주거이전비 대책 등 여러 법적 대책이 마련돼 있는 주거세입자에 비해 상가세입자는 보상비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그마저 개발 가장 마지막 단계에 통보된다”며 “대체상가 부분이나 공공임대 상가 확보 등 상가세입자들에 대한 대책도 선택지가 더 넓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삶’의 문제 건드린 두리반...건물 가져가되 삶은 처분할 수 없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두리반 싸움을 통해 ‘재산권’ 개념을 넘어서 우리가 보장받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철거지역에서 재산이 싸움의 동기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실제로 지키려는 게 물질적 재산인 경우도 있지만 그 외에 지키고 싶은 것이 있더라도 그것을 해석해낼 단어가 ‘재산’밖에 없기 때문”이라며 ‘재산’이라는 말이 포괄해주지 못하는, 삶과 관련된 권리가 있음을 환기시켰다.


그는 “건물을 마음대로 하는 것과 그 안에서 장사하는 사람을 마음대로 하는 건 다른 것인데 법이 구분을 못하고 있다”며 “‘1파운드의 살점을 가져가되 피는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된다’고 샤일록에게 내려진 판결처럼, 임대인이 처분할 수 있는 재산은 ‘건물’과 ‘토지’일 뿐 임차인의 삶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도록 두어서는 안 된다”고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을 인용했다.

미류 활동가는 또 “상가세입자 대책 개선에 대한 논의가 권리금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위험하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돈이 삶을 보장할 수단은 될 수 있지만 보장해야 할 목적 그 자체라고 말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보상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보상만으로 안되는 게 있다는 걸 두리반 싸움이 보여주고 있다”며 “두리반이 펼쳐놓은 장소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삶’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하고 함께 얘기하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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