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걸어도 받을 사람이 없어진 전화번호...

[인터뷰] 한진중 조남호 회장, "언젠가는 후회할 것"

“제발 더 이상 죽이지 마십시오. 벌써 몇 명이 죽었습니까? 창수도 죽었고 주익이도 죽었고 재규 형도 죽었습니다. 이제 진숙이까지 죽일 겁니까. 도대체 무슨 놈의 회사가 사람 죽이는 걸 밥 먹듯이 합니까. 차라리 지금 얘기를 해주십시오. 네 번째 누구고 다섯 번째가 누구인지를 지금 얘기 해달란 말입니다. 그것만 알려주면 차라리 제가 그 순번에 들어 갈랍니다.” -3차 희망버스 부산역 집회에서 이용대 조합원 발언-

무슨 놈의 회사가 사람 죽이는 걸 밥 먹듯이…
죽음의 순서, 다음은 누굽니까?



길바닥에 주저앉아 아무런 말없이 85호 크레인을 올려다보고 있던 이용대 조합원은 그랬다. 아무리 가릴 것 없이 사람 죽이는 것에 이골이 났다해도 이건 아니라고. 조남호 회장이 제발 단 한 번만이라도 노동자들을 생각보면 좋겠다고.

“그들은 총칼로 사람을 죽이진 않지만, 멀쩡한 사람이 죽을 수밖에 없도록 선택의 여지를 없애 자살을 하게 만들고, 퇴근 후 한 밥상에 온가족 둘러앉아 삼겹살 구워먹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아는 노동자들의 가정을 파괴하는 사이코들입니다.”

“우리가 뭘 잘 못했습니까? 몇 십 년을 일하면서 배 열심히 만들어줬지, 그렇게 해서 지난 10년을 흑자 보게 해줬지, 그렇게 번 돈으로 회사는 필리핀에도 조선소를 세웠지… 그렇게 고생한 우리 노동자들을 왜 자르려고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조남호 회장이 그렇게 당당하다면 도대체 뭐가 무서워서 한국에도 못 들어오고 해외로 떠돌아 다녔냐는 말입니다.”


장마철 전기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전기차단?
처참한 85호 크레인 고공농성장


이용대 조합원은 처음 김진숙 민주노총부산본부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에 올랐을 때와 지난 6월 26일 행정대집행 이후 크레인 중간층에서 농성을 함께 했었다. 처음은 김진숙 지도위원이 해고자이긴 했지만 대의원인 자신의 구역 소속 노동자였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공장에서 법원 집행관과 용역경비들에게 개처럼 끌러나갈 수 없어 크레인에 남았다고 했다.

“밖에서 집회가 열리면 사진도 찍고 시시각각 상황을 트위터에 올렸습니다. 사측도 아마 그걸 봤겠죠. 그 뒤부터 전기가 끊겼습니다. 그러더니 조합원들이 밥을 올려줄 때 몸수색을 하다못해 나중엔 금속 탐지기까지 동원해서 휴대전화 배터리를 비롯한 모든 물품반입을 막았습니다. 심지어는 팬티, 양말, 수건도 못 올리게 했어요. 그러면서 답답하면 내려오라는 거예요.”

경총과 이재용 한진중공업 사장은 장마철 크레인의 전기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전기를 차단했다고 밝혔지만 이용대 조합원의 증언과는 전혀 달랐다.

“행정대집행이 있던 날 집행관과 용역깡패들이 우리 조합원들을 개 끌듯이 끌어 쫓아냈잖아요. 그 때 동료들과 안 끌려가려고 버티고 버티다가 중간층에 남게 됐습니다. 그때 서른 명이 넘게 중간층에 있었는데 사측이 처음에 12명만 남으면 전기를 넣어주겠다고 해서 그렇게 했더니, 이번엔 8명으로 줄이면 전기를 넣어주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또 전기는 안 넣어주고 다시 6명으로 줄이라고 하더라구요.”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는 크레인 위 노동자들은 짧은 기둥의 둘레를 왔다갔다하는 것으로 운동을 대신하고 있다.

  이용대 조합원은 20년째 그날 그날의 주요 일정과 사건을 기록하고 있었다.

이같이 통신과 사람의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물품조차 사측에 의해 막히면서 크레인에서의 농성은 그야말로 처참한 지경에 이르렀다.

“작은 통을 이용해 간이 화장실을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는데 너무 불편해요. 그래서 먹는 게 두렵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다들 옷도 제대로 못 갈아입고 씻지 못해 피부병에 걸려있습니다. 그리고 크레인 위에는 비바람이 너무 심해서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강제진압의 긴장감도 커서 자다가 자위에 눌리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꿈속에서도 괴로워 죽겠는데 일어날 수가 없는 거예요.”

한 낮의 뜨거운 열기와 잦은 비바람, 그리고 작업복도 뚫어버리는 모기떼의 공격… 그렇게 고통스러운 85호 크레인 고공농성이 김진숙 지도위원은 229일, 크레인 중간층 해고 노동자들은 47일을 이어 계속되고 있다. 그는 혼자 물끄러미 크레인을 보고 있으면 자꾸 불길한 생각이 든다고 했다. ‘만약에…’로 시작하는 불길한 생각.

“크레인에서 몸이 안 좋은 상태에서 상한 음식을 먹고 내려오게 됐지만, 여기 농성장에 있는 것 보다 차라리 크레인에 있는 게 더 맘이 편할 것 같습니다. 올라가 있으면 내 손으로 저 양반(김진숙 지도위원) 밥도 챙겨주고 편지도 주고받고, 또 저기 동료들과 정리해고 철회 싸움의 최전방에서 싸운다는 자부심도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나중에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맘은 훨씬 덜 무겁다 아닙니까.”

아무리 걸어도 받을 사람이 없어진 그 전화번호...

청년의 나이에 입사해 26년을 조선소에서 배를 만들어 온 그는 이제 쉰 살이 훌쩍 넘었다. 그런 그에게 납득할 수 없는 사측의 정리해고는 삶이 되어버린 그 세월 자체를 부정당하는 고통으로 다가 왔다. 그리고 이에 맞서 싸워온 과정은 이 싸움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되었다.

“채길용 지회장이 6월 25일 식당에 전 조합원을 모아 놓고 현장복귀 선언을 했습니다. 그 때 식당으로 가면서도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있었어요. 소문이 나돌았지만 설마설마 했지요. 그런데 정말 현장복귀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겁니다. 조합원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그동안 크레인 농성이나 단식한 것은 다 쇼였냐’고 항의가 이어졌죠.”

“정회 뒤 상집을 모두 데리고 다시 나타난 채 지회장이 ‘죄송합니다’ 그러더라구요. 저는 채 지회장이 조합원들 말을 듣고 ‘기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한 번 가보자’고 할 줄 알았습니다. 채길용 지회장은 같은 계모임도 하는 제 친굽니다. 제가 그 친구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큰 일 난다. 절대 복귀선언을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냥 돌아서 나가버렸습니다.”


  그는 지난 6월 25일, 채길용 지회장이 조합원들에게 현장복귀 입장을 밝히던 당시 찍은 사진을 가지고 있었다. 그 때 그는 '현장복귀는 안 된다'며, 채길용 지회장 앞에 무릎을 꿇었었다.

  그는 지난 6월 25일, 채길용 지회장이 조합원들에게 현장복귀 입장을 밝히던 당시 찍은 사진을 가지고 있었다. 그 때 그는 '현장복귀는 안 된다'며, 채길용 지회장 앞에 무릎을 꿇었었다.

인터뷰 도중 이용대 조합원은 필자에게 “주익이가 죽은 지 몇 년이나 됐습니까?”라고 물었다. 손가락을 꼽아가며 8년쯤 되지 않았냐는 대답에 그는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전화기를 꺼내 한 사람의 전화번호를 내밀었다. 바로 김주익 전 지회장의 전화번호였다. 아무리 걸어도 받을 사람이 없어진 그 전화번호...

“주익이가 죽은 지 8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죽기 전 전화번호를 지우지 않고 저장해 놓고 있습니다. 함께 현장에서 일할 때 제가 크레인으로 철판이나 조립된 부분을 들어 올려서 맞춰주면 주익이가 밑에서 철판을 자르거나 조립하는 일을 했습니다. 노조 간부였든 아니든 정말 성실하게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말수는 너무 적어서 입에 곰팡이 필까봐 걱정했을 정도였어요.”

희망퇴직은 또 다시 85호 크레인을 버리는 것

그렇게 김주익 전 지회장을 굳어버린 화석처럼 가슴에 안고 사는 그는 사측의 회유와 압력에도 희망퇴직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것은 스스로 또 다른 김주익을 만들어 내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십시오. 힘이 안 빠지겠습니까. 지금이 벌써 며칠 쨉니까. 어디서 그냥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싸움을 어떻게 하면 이길까’하는 생각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집안 걱정에 말 못할 사연들… 회사의 회유와 협박에 조합원들의 심적 갈등이 엄청납니다. 저도 희망퇴직을 했으면 위로금이 얼마 나왔을 겁니다. 그 돈도 못 받고 쫓겨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당장 가족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우리들에겐 적은 돈이 아닙니다. 하지만 85호 크레인을 보면 어떻게 희망퇴직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때문에 저 동지들이 죽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깟 돈 죽을 때 싸가지고 못 간다 아닙니까. 우리가 정리해고 철회 투쟁을 접고 희망퇴직서를 쓴다는 건 저들이(85호 크레인 농성자) 죽든지 말든지 상관없다는 얘기나 마찬가집니다. 아니 더 나아가 우리 손으로 저들을 죽이는 꼴이 되는 겁니다.”

탄압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관심과 고립이라고 했던가. 하다못해 미친 짓도 쳐다봐 주는 이가 있어야 할 맛이 나는 법이다. 그런데 가족의 생계와 동료의 목숨이 걸린 문제인데 오죽했을까.

“그래도 우리에게 희망을 끌어올려준 것이 있습니다. 바로 희망버스 입니다. 우리에게 희망버스는 말 그대로 희망입니다. 이것마저 없었다면 중도에 포기한 사람들이 훨씬 많았을 겁니다. 우리끼리 매일 크레인 쳐다보면서 어떻게 버텼겠습니까. 희망버스가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


“희망버스를 가지고 외부세력이니 빨갱이니 하는 소리가 도는데, 지금 시대가 바뀐지 언젠데 아직도 빨갱이 타령입니까. 빨갱이 빨갱이 하는 것 보니까 ‘아, 또 선거철이 다가 오나보다’ 싶습니다. 이제 그 유치한 짓 좀 그만했으면 좋겠습니다. 희망버스 사람들이 미쳤다고 자기도 돈과 시간 들여서 부산까지 와서 땀 흘리고 비맞고 물대포에 최루액 뒤집어쓰겠습니까.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정리해고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는 단 한번이라도 이명박 대통령과 조남호 회장이 자본이나 기업이 아니라 그 밑에서 짓눌려 일하는 노동자들을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무리 잘나고 힘 있는 사람이더라도 그런 일쯤 하나는 있어야 나중에 원망을 덜 들을 것 아니냐는 얘기다. 그렇게 그는 8월의 뜨거운 길바닥에 앉아 이명박 대통령과 조남호 회장에게 충고 했다.

“당신들의 권력이 당신들의 자본력이 얼마나 방대한지 모르겠지만 그게 천 년, 만 년 가는 것은 아니질 않습니까. 언젠가는 후회 할 겁니다.” (기사제휴=미디어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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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 , 정리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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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목록
  • 학생

    너무 좋은 기사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 판나

    정말 잘 읽었어요 좋은 취재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