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참을 수 없이 가벼운 한미FTA 장외투쟁

복지예산 핑계로 국회등원 군불...이정희, “예산안 합의하면 한나라당 부활”

한나라당이 28일부터 비쟁점 예산에 대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조정소위원회(계수조정소위) 심사에 들어갈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자 민주당이 슬슬 복지 예산을 핑계로 의회 복귀 군불을 지피고 있다. 22일 FTA 비준안 날치기 이후 1주일 만이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한미FTA 비준안 날치기 이후 야5당과 함께 예산안 심의를 비롯한 모든 의사일정을 전면 거부하고 한미FTA 무효화 투쟁을 위한 장외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예산안 심의를 위해 의사일정에 참가하면 민주당의 FTA 무효화를 위한 장외투쟁은 더 명분을 찾기가 어려워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매일 밤 수천 명의 시민들이 물대포까지 불사하며 촛불을 드는 상황에서 민주당의 예산안 합의는 한나라당에게는 날치기가 큰 문제가 아니라는 명분이 될 수 있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예산안을 합의처리 하면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살아날 명분이 된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한미FTA가 무상급식 무력화나 의료비 폭등 등을 불러올수 있다는 주장을 하는 민주당이 단기적인 복지예산을 명분으로 예산안을 합의처리 하게 되면 스스로 FTA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부정하는 자기모순에 빠질 수도 있다.

  지난 26일 범국민대회 [출처: 민주당]

참여정부 시절 한나라당 장외투쟁과 비교할 수없이 가벼운 FTA 장외투쟁

이번 민주당의 장외투쟁은 한나라당이 야당 시절 벌인 장외 투쟁 수위와도 비교해 보면 상당히 약해 보인다. 통합정당 건설을 위한 당내 내분이 한 원인이 될 수 있지만, FTA 날치기 저지 강경 입장인 정동영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한 한미FTA 무효화 투쟁위원회 중심으로만 비상한 각오를 다지는 모양새다.

한나라당은 제1야당이던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에 국가보안법 재개정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두 달 정도 장외투쟁을 벌였고, 2005년부터 2006년에 걸쳐 50여일이 넘게 사립학교법 개정을 막는다는 이유로 장외투쟁을 벌인 바 있다.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의원은 일부 의원들이 등원론을 제기하자 2006년 1월 4일 당 중앙위원회 신년인사회에서 “우리가 투쟁을 그만두고 국회로 들어가면 그것을 계기로 국가보안법까지 날치기 처리할 것”이라며 “국가수호를 근간으로 하는 한나라당은 이 모든 것을 국민들께 자세히 알리고 국민들의 힘으로 막아야 한다”고 강경하게 장외투쟁을 이끌기도 했다.

당시 한나라당이 사립학교법 문제로 ‘부자사학의 친구’로 낙인찍힐 것이라는 당내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었지만 박근혜 전 대표는 당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밀어붙인 것이다. 이런 비타협적 태도가 한나라당의 지지자들을 모으는 힘이 됐다.

반면 한미FTA는 국가보안법이나 사립학교법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국가와 국민의 삶의 근간까지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데도 민주당이 장외투쟁에 실은 무게는 당시 한나라당 보다 못하다는 인상이 크다.

실제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지난 23일 야5당에 본격적인 장외 투쟁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박석운 범국본 대표는 국회 야5당-범국본 대표자 연석회의에서 야5당 대표들에게 “야5당과 시민사회단체는 광장에서 투쟁 거점을 함께 만들자. 손학규 대표가 작년처럼 올해도 모범을 보여달라. 범국민 항쟁으로 가야한다”고 제안했다. 손학규 대표는 대포폰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지난해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천막을 치고 100시간 철야농성을 진행한바 있다.

강기정 예결위 간사, “대화창구 만들어 진다면 예산 심의 참가할 수도”

그러나 민주당 의원들은 이번 FTA 날치기 이후 1주일 만에 한나라당의 일방적 예산 조정 심의에 심하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홍재형 의원(국회 부의장)은 29일 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이번 한미 FTA 날치기 사건에 국민들은 청와대와 한나라당에 분노하면서도 이를 막지 못한 제1야당 민주당에게도 따가운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며 “한미 FTA 무효화투쟁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국회에서 우리의 본분을 지키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라고 공식적으로 군불을 지폈다.

이어 “이번에 한나라당의 예산안 날치기를 막지 못한다면 국민은 민주당에 걸고 있던 한 가닥의 희망마저 거둘지 모른다”며 “국민이 느끼는 정치권에 대한 환멸을 치유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민주당이 해야 할 제1 과제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전 방위로 투쟁할 때이다.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한다”고 우회적으로 예산안 심의 참가를 강조했다.

홍제형 부의장의 이런 군불 떼기는 전날인 민주당 예결위 소위 위원 기자회견에서도 징후가 포착됐다. 민주당은 애초 한미FTA 비준동의안이 처리되기 전 여야 외교통상위 대치상태에서도 예산심의는 중단하지 않았다. 당시 민주당은 여야 합의로 예산안을 법정기일 내에 처리하겠다는 원칙아래 부자증세와 보편적 복지, 일자리 예산 편성을 목표로 심의에 참가했다. 이를 위해 민주당은 민생예산을 선처리하고 난 후에 한미 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논의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민주당은 이런 복지예산 중심의 기 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다. 강기정 의원(민주당의 국회 예결위원회 간사)는 28일 민주당 예결소위 위원 기자회견에서 “이번 한미FTA 날치기 사과와 책임자 처벌, 다시는 예산안 날치기를 하지 않는다는 약속 없이는 계수조정 소위원회에 참여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미FTA 비준 무효화 투쟁과 상관없이 날치기 사과와 더불어 예산안 합의처리에 대한 신뢰 있는 약속을 한다면 등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기정 의원은 29일 불교방송 라디오에서도 “우선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가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에게 사과부터 해서 대화의 창구를 만들고, 한미 FTA 문제나 예산안 날치기나 향후 정기국회 마지막에 남아있는 민생입법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며 대화를 강조했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도 28일 같은 라디오에서 장외투쟁과 예산안 일정을 두고 “국회야말로 가장 강력한 투쟁장소”라면서도 “현재 시민들이, 이 엄동설한에 물대포를 맞으면서 우리 국회에서 잘못한 한미 FTA 반대투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주국야광’, 즉 낮에는 국회에서 투쟁하고, 밤에는 광화문에서 시민과 함께 투쟁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등원론이 점차 고개를 들고 있지만 박지원 원내대표 말처럼 시민들이 물대포에 맞으며 날치기 무효를 선언하는 상황에서 민주당의 등원은 강력한 부메랑이 될 가능성이 높아 눈치를 보는 인상이다.

이정희, “예산안 합의처리 명분 삼아 한나라당 살아날 것”

민주당이 예산안 심사에 합류한다면 함께 장외투쟁을 선언 했던 다른 야당들은 강하게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이날 ‘손석희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예산안 처리 전에 국회 충돌이 벌어지면 예산안 합의처리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걸 한나라당도 다 알고 FTA를 날치기 했다”며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단독상정하면서 국회가 상당기간 파행으로 가고 있었고, 이를 감수하고 한나라당이 저지른 일이고 청와대가 지시한 일”이라고 파행 당위성을 강조했다.

또 “민주당의 일부 의원들께서 ‘그래도 내년 총선도 있고 지역구 예산도 필요하지 않느냐’ 이런 생각을 가질 수도 있는데, 지금 중요한 것은 지역구 예산 수십억 원, 또는 수억 원 정도가 아니”라며 “한나라당이 한미 FTA 강행처리를 저질러놓고도 ‘야당이 별로 저항 안 합니다. 우리 예산안 합의처리 했고 노력했습니다’ 이렇게 명분을 가져서 다시 총선에서 살아나는 것이 가장 심각하고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정희 대표는 “정말 나라를 함께 걱정하고 민주주의를 살리고 싶으신 지역구 주민들이시라면 지역구 야당의원들께 오히려 ‘예산 몇 푼 따오려고 하지 말고 한나라당 확실히 심판하고 오라고’ 말씀해주시길 간곡히 요청 드린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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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목록
  • 111

    12월9일까지 해서라도

    또날치기 비난은 받을수 있겟지만

    정리해야 하지

  • 꺼져라

    111 새꺄 몇푼받구 그 지랄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