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에서 간병노동자로 일하는 김금자(가명.62) 씨는 아직도 지난 10월 21일 발생한 끔찍한 사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터뷰 시작부터 김 씨는 그저 ‘잊고 싶다’며 그 때의 기억을 지우고 싶은 듯 했다.
그녀는 지난 10월 21일 오후, 돌보던 에이즈 환자가 보호자들과 밖으로 나가는 것을 돕기 위해 주사기가 걸려있는 링거대를 옮기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갑자기 손에 따끔한 통증이 스쳤다. 꽃혀 있어야 할 환자의 주사기가 빠져 있었고, 그 주사침은 김씨의 손에 상처를 냈다.
“주사 바늘에 찔리는 순간, 하늘이 노랗고, 땅도 노랗고. 아! 나도 에이즈구나 이런 생각이 갑자기 들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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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병원 ‘직원 아니다’라며 치료 거부...자비로 치료 해결
깜짝 놀란 상태에서 응급처치를 한 김 씨는, 의사와 간호사로부터 정식 치료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응급실로 향했다. 하지만 간호사는 응급실은 야간에만 운영을 한다며 ‘직원안전보건과’로 가라고 일렀다. 발걸음을 돌려 직원안전보건과에 도착한 김 씨는 또 다시 하늘이 노래지는 얘기를 들었다. 간병노동자는 병원 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직원이 아니라고 치료도 안해준다잖아요. 마음은 급하고 너무 무서운데,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어찌나 서럽던지... 내가 그때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할 수 없이 교수님한테 가서 이야기를 듣고, 다시 직원안전보건과로 가서 교수님 이름을 대며 ‘교수님이 치료하라고 했다’고 이야기 했더니 그제서야 치료를 해 주더라구요”
간신히 치료를 하고, 약물복용을 시작했으나 치료비는 고스란히 김 씨의 몫으로 빠져나갔다.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되어 근로기준법상 ‘가사사용인’이라 명명되는 간병 노동자들은 산재보험을 적용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치료를 하는 데에만 약 40만원의 돈을 지불했다. 특히 최저임금법조차 적용받지 못하는 이들의 시급은 2500원~2700원 선이다. 이들에게 치료비 40만원은 생활과 직결될 만큼 큰 돈이다.
“치료비로 한 40만원 들었어요. 차 타고 가다가 접촉사고만 나도 변상을 하는데, 병원에서 24시간 힘들에 일하는 우리를 남이라고 외면하는게 너무 힘들어요. 병원에서 간병인이 없으면 일을 못해요. 꼭 필요한 업무고, 간호사들의 업무를 대신하는 경우도 많은데 직원이 아니라며 다쳐도 책임 못 진다는 것은 너무 하잖아요. 특히 우리는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사는데 일하다가 다친 것도 우리 돈으로 해결하라니... 정말 억울해요.”
김 씨 이외에도 지난 9월 이후 3명의 간병, 청소노동자들이 에이즈 환자 주사에 찔리는 사고를 당했다. 하지만 병원 측은 이들에게 대책은 고사하고, 어떤 후속조치나 예방교육도 없었다. 차승희 희망간병 서울지부 지부장은 “간병 노동자들을 관리하는 간호행정과에 교육을 요청했지만, 단 한 차례도 예방 교육을 실시하지 않아 우리끼리 실무교육이나 제도교육을 하고 있다”며 “만약 교육을 할 경우, 병원이 원청으로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이를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씨는 지금도 그때의 그 사건을 떠올리면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없다. 외롭게 감염 여부를 지켜보고, 치료를 받았던 과정 또한 김 씨에게는 큰 상처였다. 특히 질병 발생 여부에 대한 걱정도 놓아버릴 수 없다. 앞으로도 업무 과정에서 어떠한 사고가 발생할지 모르는데, 아무런 보상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도 답답하다.
“내가 이 일을 5년을 했어요. 그 동안 아픈 사람들 마음을 위로해주고, 그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 좋아서 힘들어도 즐겁게 일을 한 거예요. 근데 이번 사고를 겪고 나서, 가족들한테도 말할 수 없고 친구들한테도 말할 수 없어서 너무 두렵고 우울하고 외로웠어요. 다행히 노조나 희망간병 사람들과 얘기할 수 있어 우울증은 피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아직도 두려워요. 정말 열심히 일 한 노동자가 다쳤는데 이를 외면한다는 것은 비인간적인 거잖아요.”
주사바늘 사고, 바이러스 감염 등 고 위험군 ‘간병노동자’
간병노동자는 그야말로 3D업종을 대표한다. 일주일 중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주 6일, 24시간 근무를 한다. 월급도, 근로 환경도, 대우도 열악하다. 휴게공간이 없고, 배선실에 서서 식사를 하는 근무환경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열악한 그들에게 더욱 짐을 지우는 것은 업무의 위험성이다.
환자들과 24시간 생활하는 그들은 에이즈 주사 바늘에 찔리는 것 외에도, 환자가 앓고 있는 여러 가지 바이러스에 감염될 가능성이 높다. 김 씨의 경우에도 주사침 사건이 발생하기 약 3달 전인 7월, 환자가 앓던 ‘옴’에 전염됐다. 옴은 옴 진드기(Scabies mite)에 의해 발생되는 전염성이 강한 피부질환이다.
“병원은 그 환자가 옴인지 몰랐죠. 처음에 들어갔던 간병인이 그 병에 옮은거야. 근데 그 간병인한테 병원은 ‘건조피부병’이라고 진단을 했어요. 그리고 나서 저보고 그 환자를 맡으라고 하더라고요. 병원에서는 저에게 그 환자가 앓던 병이 옮지 않는 병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내가 그 환자를 맡게 돼서 가운이랑 장갑을 착용하고 환자를 닦이고 돌봤어요. 근데 어느 날 환자 몸을 닦고 있는데 내 손에 물 닿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소독도 했는데 8일 뒤에 몸에 피부병이 나기 시작했어요. 깜짝 놀라서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고, 그 환자도 다시 진단을 받았는데 ‘옴’이라고 하더라고요. 병원에서도 깜짝 놀랐지. 근데 어떡해요. 이미 때는 늦었는걸...”
분명 병원의 착오로 빚어진 사건이지만, 병원은 간병노동자에게 치료비를 지불하지 않았다. 그나마 김 씨의 경우, 환자와 약품을 나눠 사용하며 병을 치료했으나, 첫 간병인은 고스란히 치료비를 자비로 해결했다. 병에 걸리고 나서도 김 씨는 하루도 일을 쉴 수 없었다. 전염병을 앓고 있는 이상, 쉽사리 밖을 돌아다닐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옴이 옮은 간병인은 치료비도 다 자신이 해결했잖아요. 저 같은 경우도 처음에는 막막했어요. 그래서 병원에다 ‘옴이 전염병인데, 가족들한테 가 있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찜질방에 가면 병이 더 퍼질 거고, 산에 들어가야 하는데 나는 못 간다, 내가 간병 계속 책임질 테니 처방 해 달라’고 요구했죠. 그랬더니 환자 이름으로 처방을 한 약을 나눠쓰게 했어요. 환자랑 저랑 병실에서 같이 약을 몸에 막 바르고 그랬죠.”
김 씨 외에도 간병노동자 윤 모 씨가 지난 5월, 인유드균에 감염됐다. 50만원의 치료비와 검사비는 모두 윤 씨의 몫이었다. 5월에도 이 모 씨가 감염병동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돼 6개월에 한 번 씩 바이러스 검사를 받고 있다. 또 다른 피해자 이 모 씨의 경우, 지난 2008년 5월, 환자로부터 피부병에 감염된 후 지금까지도 후유증을 앓고 있다.
고위험군 ‘간병노동자’, 산재 제외가 정당한가
‘특수고용직’인 간병노동자들은 사회에서도, 직장에서도 그들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한다. 병원의 지시를 받아 일을 하는 노동자지만, ‘노동자’로 불리지 못하고, 24시간 병원 업무를 수행하지만 ‘비직원’의 대우를 받는다. 그러다보니 병원은 환자들과 가장 오랜 시간 생활하는 간병노동자에게만 환자의 의료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그들은 자신들이 어떤 위험을 안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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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마이너 자료사진] |
의료연대 서울지부 관계자는 “최근에는 한 에이즈 환자의 의료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한 간병인이 1년간 자신이 에이즈 환자를 간병하고 있는지 몰랐던 경우가 있었다”며 “이는 노동자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도 취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병원은 예방접종 등의 사전 예방에서 늘 간병노동자들을 제외시킨다. ‘우리 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다. 차승희 지부장은 “신종플루가 유행할 때, 병원에서는 직원들에게 모두 예방접종을 실시했는데 간병노동자들만 직원이 아니라며 접종을 거부했다”며 “노조가 대응해 주사를 맞기는 했지만, 매번 유행성 질환등의 예방 접종에서 간병 노동자만 제외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감염 등의 위험 이외에도, 간병노동자들은 허리디스크나 근육통 등을 달고 산다. 과체중 환자, 하반신 마비 환자, 무의식 환자를 휠체어에 매번 옮기면서 몸에 무리가 오기 때문이다. 2009년, 공공노조 의료연대분과 간병노동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노동자 90%이상이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었다. 하지만 85.4%의 노동자들은 이 같은 부상을 혼자서 치료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고용노동부는 지난 7월, 특수고용노동자 산재보험 확대적용 대책에서 간병노동자들을 제외시켰다. 지난 9월 발표한 비정규종합대책 역시, 특수고용직 노동자는 전면적인 산재보험 적용대상에서 제외됐다.
특히 특수고용노동자들이 다른 직군보다 산재율이 높은데도, 산재보험이 적용되지 않으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10년, 평균 산재율이 0.7%인데 반해, 간병인이나 퀵서비스 등의 특수고용노동자 산재율은 41.3%에 달했다. 우리나가 평균 산재율의 34배를 웃도는 수치다.
차승희 지부장은 “간병노동자는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직종으로 분류된 현대의 노예제도”라며 “주 8시간 근무, 임금 인상, 원청 직고용 등 해결해야할 문제가 많지만, 우선 이들의 인권을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산재보험 적용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