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저녁 7시, 민주노층 13층 대회의실에서 “99%의 대안찾기” 민중복지아카데미 첫 강연이 시작됐다. 이날 강연은 제갈현숙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이 “복지국가, 불안한 삶의 대안이 될 수 있나?” 라는 주제로 2시간여 동안 열강으로 채워졌다. 빈곤사회연대와 포럼사회복지와노동 주최로 열린 이날 강연에 최근 복지문제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듯 대회의실은 참여자들로 가득 찼다.
<하얀정글> 속에 비친 민중의 현실
제갈현숙 연구위원은 “지금은 진보진영의 스펙트럼이 넓어져서 언제부터 진보였는지 알 수 없는 사람도 진보로 불리고 있다. 넓어진 것은 좋은데 서로의 다름은 무시하고 통합만을 강조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은 문제” 라며 “이렇게 통합을 강조하는 복지가 이야기 될 때, 우리는 어떤 면을 유의하고 조심스럽게 바라봐야 하는 가를 기조로 강연을 준비했다” 고 밝히며 강연을 시작했다.
강연은 우리나라 의료 복지 사각지대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하얀정글> 한 토막으로 시작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이욱 할머니는 혈압약을 받으러 갔던 병원에서 당한 모멸을 기억했다. 의사는 이름을 잘못보고 혈압약 처방받은지 얼마 안됐는데 왜 또 왔냐며 타박을 했다한다. 이름을 잘못보았다는 사실을 알고도 의사는 사과하지 않았다. 그냥 웃고 말았다.
할머니는 장애를 가진 아들과 함께 살고 있고, 얼마 전에야 할아버지가 국가유공자로 인정 받아 국가보조금을 받기 시작했다. 보조금을 받아도 할머니는 여전히 폐지를 모은다. 하루 종일 폐지를 모으면 2, 3천원을 벌 수 있다.
제갈현숙 연구위원은 영화 속에 여러 가지 이야기가 들어 있다며 운을 뗐다. “영화 속 노인 가구의 삶이 특수한 사례일까요? 우리가 저 나이가 되면 그렇게 살지 않을까요?” 청중들은 하나같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아니다, 맞다. 영화 나레이션이 밝히듯이 우리나라 정부는 국민이 완전히 망해버려야 개입을 시작한다. 그래서 복지의 사각지대는 굉장히 광범위 하다. 우리의 현실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어 그녀는 통계자료를 보여줬다. 2010년 대비 2011년도 가구소득 25.2% 감소, 부채는 27.3% 증가. 자신을 하층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45.5%. 청년들이 가장 근무하고 싶은 직장은 국가기관(28.7%), 대기업(21.6%) 순으로 절반이상의 청년이 안정적인 직장을 바라고 있음을 보여주는 통계청 발표 자료는 우리나라에 빈곤과 고용불안이 얼마나 만연한지를 보여줬다.
“복지국가가 되면 정말 다 해결 될까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은 경쟁에서 밀리고, 등수에서 밀리고, 능력에서 밀려서 받게 되는 당연한 결과라고 배운다. 비정규직이든, 취업이 안되든, 빈곤층이든, 소득이 끊어지든 무조건 개인의 문제로 돌린다”며 그녀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부자들은 자기들이 부자인 이유가 다 자기 덕분이다. 돈을 얼마나 굴렸고, 얼마나 타인을 착취했는지는 모르고, 오르지 자기가 잘해서 그랬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이 ‘복지국가 합시다’ 그러면 자기 돈 내놓으며 ‘복지 합시다’ 라고 할까요?” 청중은 대답하지 않았다.
▲ 1월4일 강연에 참석한 사람들이 강연에 열중하고 있다. |
보편복지와 선별복지 속에 감춰진 노동
그녀는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아주 오랫동안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는 복지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복지는 빨갱이들이 하는 거란 의식이 한축에 있어왔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박근혜가 어느 날 복지 하겠다고 나오면 박근혜가 진보인 걸로 착각하게 만든다. 그들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복지다. 단지 그들과 우리는 복지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뿐” 이고 “보편복지 찬반 논쟁은 진보와 보수의 대립으로 표면화됐지만, 결국 복지정치를 통한 부르주아 정치체계의 새로운 재편에 기여하고 있다. 더 이상 복지는 진보의 소유물은 아닌 것” 이라며 우리나라에서 복지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짚었다.
그녀는 “생활보장제도를 가지고 빈곤사회연대도 오랫동안 운동을 해왔다. 복지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운동했던 주체들이 법안을 상정하고 이슈화시키기 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한국 사회에 복지를 해야 한다는 담론이 생기게 되었다.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며 말을 이었다. 그녀는 “보편과 선별 속에 숨은 진실을 봐야 한다. 선별을 주장하는 한나라당은 결국 보수주의자들의 복지에 대한 관념을 보여준다. 보수진영의 ‘맞춤형, 서민형, 한국형’ 과 같은 복지 레짐의 공통점은 노동 및 개인책임 강화라는 신자유주의의 원칙하에 욕구를 심사하고 판정하는 것이 중심” 이라며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결과 심화된 노동 및 사회문제에 대한 해법이 계급정치가 아니라 복지정치의 대결로 가시화된 것” 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선거를 앞두고 정당간 경쟁과 통합 문제가 있었다. 이때 정당간 이해관계가 대립되면서 복지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었다. 복지가 이슈로 부각된 것은 좋지만 복지정치가 선거프레임에 갇히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기” 때문에 복지라는 수사로 이뤄질 사기극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진보는 무상급식에 찬성, 보수는 무상급식에 반대하면서 정치적 프레임이 짜졌다. 복지는 노조 업종별로, 시민단체 별로 다양하게 이야기 되어왔다. 곳곳에서 현실에 맡게 이뤄지던 이야기들이 한 군데로 쏠리고 뭉치면서 당을 통합시키는 지경에 이르렀다. 문제는 모든 복지 프레임이 반MB 전선으로 쏠리고 있는거다. 반MB 전선 안에서 박근혜의 한나라당과 통합진보당의 복지 정책은 큰 차이가 없다”
그녀는 “몰계급적이고 몰가치적인 복지 보다는 내 계급에서 볼 수 있는 복지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며 “노동의 부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김진숙 동지가 장기간 홀로 투쟁해서 성과를 내셨지만 사회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장기투쟁하는 분들이 많다. 복지를 해준다고 해서 그 사업장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일한 것에 대한 대가를 받는게 우선되어야 한다. 복지 담론은 노동과 함께 이야기 되어야 한다” 라고 민중이 보아야 하는 복지의 관점을 제시했다. “복지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내가 노동자임을 말하지 않는다. 시민임을 이야기 한다” 며 그녀는 복지논쟁 속에 숨겨진 노동의 가치를 밝혔다.
“투표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일상의 정치를 해야한다”
▲ 열강 중인 제갈현숙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 |
“이들이 노동을 대변하지 않는 것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보편복지 담론 형성의 배경이된 사회 경제적 조건의 계급적 문제가 분배의 문제로만 부각되는 것이 문제다” 며 여기에서 멈추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일상의 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상의 정치를 해야한다. 투표권 하나로 다 맡기면 안된다. 소유권과 시민권이 부딪히면 법원은 소유권 손을 들어준다. 반도체 회사에서 백혈병으로 20대 동생들이 40명이 넘게 죽어나갔는데, 삼성은 아직도 자기네 짓이 아니라고 하고, 국가는 그 손을 들어주고 있다” 며 국가 지켜주지 못하는 노동의 영역을 이야기 했다.
“우리가 복지라는 걸 고민할 때 각자의 생활공간과 연계시켜서 복지를 고민해야 한다. 투표 만으로 끝나는게 아니다” 라고 그녀는 강연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