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위에 군림하는 “노동위원회”

[현장편지] 전북 노동위, 현대차 전주 불법파견 일부 불인정...대법판결 축소

지난 3월 7일 저녁 전북 전주 시내에 하루의 힘겨운 노동을 마친 이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이내 주변 도로를 가득 메웠습니다. 경찰의 보호를 받고 있는 반듯한 노동부 건물 앞에 서 있는 천막 앞에는 ‘농성 98일차’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7~8일은 전북지방노동위원회에서 현대차 전주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부당해고와 징계에 대한 구제신청 심판회의가 있는 날입니다.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라며 2010년 11월 15일부터 시작된 잔업거부와 파업으로 해고된 14명과 정직을 받은 9명 등 총 23명에 대한 판정입니다.

전주공장에서만 200명이 넘는 조합원들이 모였고, 기아차 광주와 화성공장, 한국지엠, 현대하이스코,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기륭전자 등 많은 곳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했습니다.

[출처: 박점규]

노동부 천막농성 100일

지난 2월 23일 2년 이상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는 정규직이라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 이후 처음 열리는 노동위원회 심판회의에 대해 관심이 높았고, 100일 가까이 이어온 농성을 연대하기 위한 마음들이 모였습니다.

무엇보다 대법원 판결이 단지 현대차 비정규직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고, 함께 싸워야 모두가 정규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멀리서 전주까지 사비를 털어 달려왔습니다.

전주공장은 버스와 중대형 트럭을 만듭니다. 3500명의 정규직 노동자들과 1천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함께 일합니다. 조립 도장 차체 등 컨베이어벨트에서 직접 생산활동을 하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부품공급, 설비보전, 실험, 수정, 물류, 출하, 선적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물론 청소, 식당, 경비, 시설 등을 하는 노동자들도 함께 생활합니다.

대법원 판결에 대한 기대

조합원들은 국내 최대 현대차 재벌의 로비와 압력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2.23 대법원 최종 판결이 있었기 때문에 지방노동위원회가 불법파견과 부당해고를 인정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8일 밤 전주에서 걸려온 전화는 황당했습니다. 노동위원회는 12개 업체 23명 중에서 6개 업체 14명에 대해서만 불법파견과 부당해고를 인정했고, 설비보전, 물류, 출고(PDI), 시트장착을 하는 하청업체는 합법도급이라고 판정했습니다.

노동위원회는 2005년 7월 1일 이후 입사자는 바뀐 파견법의 ‘고용의무’ 조항에 따라 부당해고가 아니라고 했고, 더욱 황당한 것은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요구해 해고됐다고 2005년 7월 1일 이후 복직된 노동자도 부당해고가 아니라고 판정했습니다.

노동위원회 판정 결과를 전해들은 노조 간부들은 분노에 휩싸였습니다. 대법원 판결을 왜곡하고, 극도로 협소하게 판단하여 불법파견의 대상을 최소화한 판정에 격분했습니다. 노동부와 노동위원회 공익위원들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습니다.

한 부서만 없어져도 자동차 생산 중단

대법원은 “자동차 조립 생산 작업은 대부분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자동흐름방식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현대차의 시설과 부품을 사용하며, 현대차가 사내하청 노동자의 작업 배치와 변경, 노동 및 휴게시간을 결정하기 때문에 현대차로부터 직접 노무지휘를 받는 근로자파견 관계에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따라서 조립, 도장, 차체 공정 뿐만 아니라 부품공급, 설비보전, 실험, 수정, 물류, 출하, 선적 등의 업무도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자동흐름방식에 따라 자동차의 조립과 생산작업이 이루어지며, 당연히 불법파견의 대상입니다.

자동차 공장은 생산관리나 품질관리 등 한 부서만 사라지면 자동차가 생산되지 못합니다. 전체의 부서가 자동흐름방식에 맞춰져 차를 생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현대차의 정규직이라며 낸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서울고등법원은 서브라인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불법파견에 해당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의장공장 내 도어라인에서 일하다 엔진서브라인 최종확인공정에서 근무한 김기식 조합원과 태승기업 차체공장에서 일하다 트렁크단자 조정공정으로 옮겨 일했던 김준규 조합원에게 2년이 지났기 때문에 현대차 정규직이라고 했습니다.

[출처: 박점규]

‘직접 고용 의무’가 정규직 고용이 아니면?

2005년 7월 1일 이후 입사자에게 적용되는 파견법의 고용의무 조항에서는 “해당 파견근로자를 직접 고용하여야 한다”고 명식되어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고용된 것으로 간주되었던 ‘고용의제’ 조항이 개악된 법안이라고 했지만, 당시 정부와 국회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근로자파견의 역무를 제공받은 자’까지 확대하였기 때문에 강화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직접 고용하여야 한다’는 한글의 뜻은 당연히 정규직으로 고용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도 노동위원회는 부당해고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정규직이 아니면 어디로 ‘직접’ 고용한다는 것입니까?

8년 전인 2004년 10월 21일 노동부는 현대차 전주공장 12개 업체에 대해 불법파견을 인정했습니다. 이후 현대차전주 비정규직지회는 공장을 점거하며 파업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해고됐다가 복직한 김효찬 지회장을 바뀐 파견법을 적용받는다며 정규직 대상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대법원 판결 무시하는 준사업기관 노동위원회

노동위원회가 대법원의 판결을 무시하고, 불법파견의 대상을 왜곡, 축소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절망을 안겨준 적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2.23 대법원 판결의 당사자인 최병승 조합원도 부산지노위와 중노위에서 모두 합법도급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지난 해 12월 18일 부산지방노동위원회의 판정 결과는 더욱 황당했습니다. 부산지노위는 똑같이 일하고 있는데, 1, 3공장만 불법파견과 부당해고를 인정했고, 2, 4공장과 엔진변속기·시트공장에 대해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중앙노동위원회도 2010년 7월 22일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는 현대차의 직원이 아니라며 쟁의조정신청을 기각했습니다. 준사법기관인 노동위원회가 대법원의 판결을 부정하고, 축소 왜곡해 왔던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대법원 판결의 당사자인 현대차 울산공장 최병승 조합원은 “대법 판결 핵심은 컨베이어와 그 연동작업은 도급이 안 된다는 것”이라며 “자동차에서는 한 부서만 없어도 차가 완성이 안된다”고 트위터에 올렸습니다.

대법원 판결의 왜곡과 구멍

대법원 판결을 빠져나갈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입니다. (기사 참조 : 현대차 불법파견 대법 판결에 대한 다섯 가지 생각)

불법노동을 근절하는 일은 간단합니다. 연일 비정규직 차별해소와 정규직화를 떠들고 있는 여당과 노동부가 나서면 됩니다. 정몽구 회장을 근로자파견법 위반으로 고소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면 됩니다.

그보다 훨씬 간단한 일이 있습니다.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 19조 폐쇄조치에 따라 하청업체를 폐쇄하면 됩니다. 한 업체만 폐쇄해도 자동차 생산은 곧바로 중단됩니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을 앞장서서 왜곡하고, 개인의 판결이라고 축소하고 있는 이명박 정권의 노동부가 그렇게 할 리는 만무합니다. 결국 노동자들이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없으면 단 한 대의 차량도 생산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오는 16일 정몽구 회장이 456억원이라는 최대의 배당금을 챙겨가는 현대차 주주총회에서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화하라’고 요구하고, 17일에는 현대차 울산공장으로 모여 재벌의 탐욕에 맞서 싸울 것입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앞장서고, 정규직이 연대해서 함께 싸워야 합니다. 2.23 대법원 판결을 보며, 정규직화의 꿈과 희망을 꾸고 있는 전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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