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은, 양심, 생명, 자유, 평화다

[기자칼럼] 3월9일, 길었던 하루의 단상

신부와 목사들이 배척을 들고 펜스를 내리쳤다. 펜스에는 안으로 향하는 문이라는 의미인 듯 커다란 문이 그려진 걸개가 붙어 있었다. 그 위로 배척이 떨어졌다. 한 번, 두 번, 세 번... 이윽고, 문이 열렸다. 건너편에는 거대한 몸집을 가진 문지기들이 지키고 서 있었다. 그들은 성직자들을 밀쳐냈고, 욕설을 내뱉었다. 그렇게 들어가려는 이와 막으려는 이의 몸싸움이 시작되었다. 수적 열세를 이겨내지 못한 문지기들은 후퇴했고, 20여명의 성직자들은 문안으로 들어섰다.

문 안에는 드넓은 공사판이 벌어져있었고, 이전에 그들이 보았던 아름다운 꽃은 볼 수 없었다. 그저 거대한 구조물들만 존재할 뿐이었다. 성직자들은 “강정은 평화다” “구럼비를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이윽고 달려온 경찰들은 그들을 진압했고, 성직자들은 사지가 들린 채 밖으로 끌려나왔다.

  문규현 신부가 경찰들에 의해 들려 나가고 있다.

그들을 밖으로 운반하면서 문지기 하나가 내게 다가와 물었다. “이렇게 열심히 사진 찍어서 가져가면 수당이 더 나오나?” “월급이 나오죠” “그럼, 수당도 없는데 사명감 같은 걸로 이렇게 위험하게 남의 사유지를 부수고 들어온거냐” “...” 대꾸할만한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육중한 몸집의 문지기에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물음을 이었다.

“인권을 말하는 사람들이 똑같이 욕을 하는 건 뭐냐?” “...” “돈 받고 하는 일이지만 찝찝하다, 저 사람들은 뭘 얻는거냐?” “...” “전부다 자기 욕심 채우려고 하는 짓들 아닌가?” “...” 모든 물음에 마땅한 대답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저 “고생하시네요”라는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을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말했다. “동생이 해군이다, 참수리호에 있는데 동생은 이 해군기지가 좋은거라고 했다” “동생분 말만 듣지 말고, 한번 이분들이 말하는 것도 들어보세요” 라는 말에, 그는 “읽어봤죠”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가 읽어 본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용역들이 등을 돌린 채 서있다.

성직자들은 경찰들에 둘러싸인 채 호송차량을 기다리고 있었다. 성직자들은 “아무리 우리를 잡아가두어도 끝없이, 쉬지 않고 다시 들어올 것이다”며 결의를 다졌다. 탈진한 상태로 끌려나온 송영섭 목사는 그 상태에서도 쉬지 않고 “강정은 양심이다, 강정은 생명이다, 강정은 자유다, 강정은 평화다”며 절규했다. 전경에게 양팔을 붙들린 채 그는 쉬지않고 “이 땅의 그리스도인 여러분 강도 만난 강정을 외면하지 말자”며 소리치며 호소했다.

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을 때, 앵글 속에서 또 하나의 슬픈 얼굴을 보았다. 송 목사를 오른쪽에서 붙들고 있던 앳된 얼굴의 전경은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슬픔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전경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 송 목사가 말한 그리스도인이 있는 것인지 알지 못했지만 슬픔 표정을 한 이들이 여럿 있었다.

  송영섭 목사는 “강정은 양심이다, 강정은 생명이다, 강정은 자유다, 강정은 평화다”며 절규했다.

이날, 펜스를 부수고 안으로 들어간 성직자들을 비롯해서, 그들의 연행을 막던 사람들까지 25명이 연행 되었다. 해군기지를 막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이제 연행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죄가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하루 또는 이틀, 유치장에서 또 다른 투쟁을 전개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연행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과, 찝찝함을 안고, 슬픔을 안고 ‘일’하고 있는 이들 간의 싸움은 지난하다. 이들은 이렇게 싸워야 할 이유가 사실 없다. 언제쯤일까, 이들을 서로 싸움붙이고 뒤에 숨어서 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을 자본의 간악한 얼굴이 드러나는 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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