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1, 2 노총인 UGT(사회당계), CCOO(공산당계)는 지난 3월 29일 하루 총파업을 전개하였다. 그 날 스페인 노동자와 시민 수백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마드리드에서 80만 명, 바르셀로나에서 90만 명이 거리를 행진하는 등, 여러 도시에서 대규모 집회가 벌어졌다. 곳곳에서 집회대오가 경찰과 충돌하였고, 170여 명이 연행되기도 했다.


파업의 영향력

파업의 영향은 컸다. 항공편 80%가 취소되었고, 르노, 포드, 폴크스바겐 등 자동차 공장에서는 대다수 야간교대조가 작업을 거부했다. 이날 하루 스페인 전체 전기 소모량이 17% 줄었을 정도로 파업이 중공업 부문에 미친 영향은 컸다. UGT 페르난데스 사무총장에 따르면 공공부문 노동자의 57%, 제조와 건설 부문 노동자의 97%가 참여하여, 전체 총파업 참여율은 77%에 달했다고 한다. 스페인 전체적으로 60개 도시에서 150만 명 이상이 집회에 참여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노동법 개악에 대한 대중의 분노

3월 29일 총파업과 대규모 집회는 최근 시행된 노동법 개악 때문이었다. 작년 12월 임기가 시작된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국민당)는 2월 10일에 노동법 개정안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법안이 3월 초에 국회에서 통과되기 전에도 이미 대부분 조항은 행정 명령을 통해 시행된 상태였다. 새로운 법은 1년 근무시 45일치 임금을 퇴직금으로 적립하는 기준을 전체적으로 33일로 하향조정하였고, 기업의 수익이 3 분기 연속 감소할 경우 연 20일치 임금에 해당하는 퇴직금만 지급된다. 새 법에 따르면 수익이 2분기 연속 감소할 경우 사측이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할 수 있도록 하며 기업단위 단체협약을 산별 단체협약에 우선하다고 규정함으로써 산별 단체협약을 무력화시킨다. 또한 정부 승인 없이 정리해고를 가능하게 하는 등 해고를 보다 용이하게 만들었다.

노동법 개악은 스페인 노동자가 수십 년 동안 지켜온 권리를 단번에 박탈함으로써 노동자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노동자만 분노한 것이 아니다. 이 법은 유럽이 자부심을 느끼는 사회 모델의 중요한 요소인 단체교섭권, 직업안정, 사회보장에 대한 공격이기 때문에 많은 스페인 시민들도 이번 개악을 자신의 정체성과 생활방식에 대한 공격으로 이해했다.

지속되는 경제위기와 민중의 고통

끝이 보이지 않는 경제위기 속에서 노동자민중이 노동법 개악으로부터 느끼는 위협이 보다 심각해 지고 있다. 2008년까지 유로지역 평균을 상회하는 성장세를 유지하던 스페인 경제는 금융위기 이후에는 성장부진, 높은 실업률과 재정적자 증가가 지속되었다. 현재 스페인의 쌍둥이 적자(재정적자와 경상수지적자)는 아일랜드 다음인 세계 2위이다.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2010년부터 전 호세 사파테로 정권(사회노동당)이 긴축재정을 비롯해 재정, 노동, 금융부문에 대한 구조개혁 조치를 추진하였다. 이러한 정책은 재정적자를 줄이는 데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스페인 민중에게 높은 실업률, 사회서비스 축소, 공공부문 해고 등 많은 고통을 가져왔다. 긴축재정 정책에 대한 불만과 정부에 대한 불신을 고조되어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사회노동당이 크게 패배하여 정권이 보수 국민당에 넘겨졌다.

신정부가 출법한 2011년 12월 21일 이후에도 경제 상황이 계속 악화되었다. 올해 1월에 S&P사가 스페인의 국가신용등급을 두 단계 하향 조정하였다. 이에 따른 차입관련 재무비용 상승으로 인해 정부 채무 청산이 보다 어려워졌다. 3월에는 정부가 약속하던 유럽집행위원회 재정적자 한도규정(GDP 3%)에 맞춘 적자감소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 인정했다.

현재 스페인의 실업률은 23.6%으로 2008초 수준 3배를 달하고 있다. 청년 실업률(25세 미만)은 50.5%로 유로지역 청년 평균 실업률(21.6%) 2배 이상이다.

한편 라호이 정권 하에서 구조개혁 정책이 가속화되었다. 12월에 정부는 78억 달러 임금 삭감과 115 억 달러 공공지출삭감을 포함하는 새로운 긴축재정 조치를 발표하였다. 최근 노동법 개악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고조되는 민중의 불만과 활발해지는 대중 투쟁

3월 29일 총파업은 CCOO, UGT에 의해 선포되었지만 파업의 실제 동력은 아래로부터 나왔다. 노동법 개정이 발표되자 양 노총이 내용 수정을 요구해 정부와 협상을 시도하고 상징적인 집회를 조직했지만 총파업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2월 19일에 집회에는 예상치 못하게 100만 명의 노동자가 참여했다. 집회대오가 노동법 개악에 대한 분명한 반대 입장을 표현하고 총파업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일반 노동자들의 총파업 요구가 주로 언론을 통해 보고 되었고, 양 노총은 결국 3월 9일에 총파업 계획을 발표했다.

외신들은 총파업을 신정부에 대한 첫 도전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번 노동법 개악이 정당한 노동권에 대한 노골적인 공격인 만큼 라호이 정권에 대한 특별한 반감을 일으킨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2월 집회와 3월 총파업투쟁은 사회노동당 정권 하에서 시작된 스페인 민중의 긴축반대 운동과의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

작년 5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 운동은 ‘분노하는 사람’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졌고, 젊은 스페인 청년들은 SNS을 사용해 서로를 조직하였다. 정치권의 기득권 제거, 일자리창출, 재정긴축반대, 주거권 보장, 인프라투자, 교육과 보건의료를 비롯한 사회서비스 확대, 국방비 삭감, 금융자본 통제 등 요구를 내걸면서 5월부터 8월까지 마드리드 태양의 문(Puerta del Sol) 광장과 바르셀로나의 카탈루냐 광장에서 농성을 진행하였다. 그 기간 동안 수 차례의 대규모 집회를 벌이며 유럽 전역에 펼치는 분노하는 사람 운동을 촉발시켰다.

같은 시기에 CCOO, UGT는 몇 차례의 긴축반대 시위를 조직했지만 파업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대응이 충분치 못했기 때문에 분노하는 사람, 좌파진영, 일반인 등 여러 방면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비판도 계속되었다. 총파업을 앞두고 분노하는 사람 운동을 대표하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지금’ (Democracia Real Ya)에 노총의 엘리트주의와 온건주의에 대한 비판이 올라왔다. 같은 사이트를 통해서 분노하는 사람들이 99%의 총파업, 즉 진정한 대중적인 투쟁을 호소하고 총파업에 관련 홍보물과 집회 일정을 개시했다.

분노하는 사람운동이 노조 지도부에 대해 상대적으로 비판적이긴 하지만 노동자의 투쟁을 지지하지 않은 것 아니다. 작년부터 올해에 이어 노동자들과 함께 길거리에 나서 같이 싸워왔다. 3월 29일 총파업 투쟁에도 조직노동자, 미조직노동자, 분노하는 사람, 학생, 일반인 등 다양한 대중들이 참여하였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경제위기에 대한 분노와 정부에 대한 불만이 총파업의 동력이 되었다.

보다 강력한 투쟁의 필요성

아무리 광범위한 지지를 받아도 하루 총파업은 노동법 개악을 저지하고 나아가 정부의 구조개혁을 통한 노동자민중에 대한 경제위기 책임 전가 정책을 막기엔 충분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총파업 다음 날인 3월 30일 라호이 정권은 총 360억 달러의 세금 인상과 지출삭감 조치를 포함하는 선례 없는 예산안을 발표하였다. 전기세 인상, 공공부문 노동자의 임금이 동결되는 등 새 예산안은 민중을 더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었다.

지금 스페인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대중 투쟁이 필요하다. CCOO와 UGT는 3월 29일 총파업을 선포함으로써 이 사실을 인정한 셈이다. 스페인의 일부 좌파는 3월 29일의 성과를 확대하기 위해서 48시간 파업 일정을 즉각 발표하고 이후 파업 일정을 점점 늘려나가자는 계획을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양 노총이 아직까지 구체적인 투쟁 계획을 발표하고 있지 않다.

구체적인 방법이야 어찌되었건 간에 점점 더 확대되는 투쟁이 필요하다. 작년부터 이어진 긴축반대 운동의 교훈을 비추어봤을 때 노조들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노조, 좌파단체, 분노하는 사람 등 다양한 세력이 투쟁을 함께 구성하고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도 명백하다. 스페인 노조들이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분노하는 사람 등 대중적 운동과 건설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문제다.


* [편집자주] 지난 30년 동안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일환으로 초국적 자본이 거대한 힘을 갖게 되고, 그 지배력을 키웠다. 이러한 자본은 생산지의 해외이동, 투기, 오프쇼링(해외 아웃소싱), 노동유연화 전략 등으로 막대한 이익을 벌어들이는 동시에 노조를 약화시키고 노동자에게 바닥치기경쟁을 강요했다. 반면에 노동자는 아직까지 일국적 차원에서 조직되어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초국적 자본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조직과 공동행동이 필요하며, 이는 서로를 모르면 불가능한 일이다.
노동자운동연구소의 <투쟁하는 세계노동자>는 초국적 자본의 생산전략, 공급망 관리, 투기, 노동유연화 등 파괴적인 전략에 맞선 투쟁에 초점을 두고 매 회 투쟁지역을 하나씩 소개한다.

덧붙이는 말

* 이 연재는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국제국>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