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놈 김용민, 교사 정진후, 국회의원 강용석

[기자칼럼] 정진후엔 침묵, 김용민 사퇴만 촉구하는 위선적 야권승리 셈법

“Fucking USA라는 노래에 담긴 담론의 전제는 여성은 ‘Fuck’ 할 수 없다는 것이다. ‘Fuck’의 주체는 남성이다...강간이든 섹스든 미국을 ‘fuck’ 하게 되면 한국은 남성이 되고 미국은 여성이 된다. ...<중략>... 결국 한국 남성이나 미국 남성이나 모두 강간할 수 있는 권력을 갖지만, 한국 여성이나 미국 여성의 몸은 남성 집단 간 싸움의 대리 전쟁터로 제공된다. Fucking Usa의 논리는 바로 르완다, 구 유고, 동티모르 등 모든 전쟁터에서 자행되는 여성에 대한 집단 강간의 면죄부였다. 이러한 남성 이데올로기에서 여성은 인간이 아니라 남성 국가가 소유한 기호, 상징, 한반도, 가족, 민족 그 자체가 된다. 그러므로 강간하는 남성의 입장에서는 여성을 강간하는 것이 아니라 적국을 강간한 것이 된다” - 정희진<페미니즘의 도전>-

김용민과 나꼼수는 스스로를 잡놈이라고 부른다. 잡놈이었던 그가 과거 19세 이하 청취 금지인 성인 인터넷 라디오에서 했던 외설, 성폭력적 발언이 문제가 됐다. 김용민 후보는 이 라디오에서 미국의 관타나모 이라크 포로들에 대한 성학대 문제 해결을 묻는 질문에 “유영철을 풀어서 부시, 럼즈펠드, 라이스를 아예 강간해 죽이는 거다”라고 말했다.

또 노인폄하 논란이나, 기독교 폄하 논란도 일었다. 하지만 김용민 후보가 한 노인 폄하 논란은 정확히 말하면 노인폄하가 아닌 종종 폭력을 일삼는 보수우익 단체인 ‘어버이연합’에 대한 폄하고, 기독교 폄하 논란은 보수 기독교계의 온갖 치부를 지적하는 것이었다. 어버이연합을 조롱거리로 삼고 보수 기독교계의 비리를 지적한 것을 일반적 집단에 대한 폄하 논란으로 만든 것은 총선을 맞은 보수세력 결집용 정치 공세밖에 안 된다.

김용민 후보가 30대 초반, 포르노에 가까웠던 성인 라디오 방송에서 뱉은 단어들은 당시 라이스라는 미국의 여성국무 장관과 강간이라는 단어가 결합해 엄청난 폭발력을 발휘했다. 당시 김용민 후보가 한 발언은 ‘여성 라이스’에 대한 태도라기보다 관타나모 사태의 책임자인 부시, 럼즈펠드, 라이스를 동일 선상에 놓은,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응징을 상징한다. 따라서 김용민 ‘강간 발언’의 맥락은 "Fucking USA"라는 노래를 집단적으로 불렀던 2002년, 한국 촛불 집회에서 공유하고 있던 남성중심적 사고와 유사하다. 당시에 일부 여성단체와 좌파 활동가들은 Fucking USA에 담긴 남성(남근) 중심의 여성의 몸에 대한 인식 문제를 제기했지만 소위 민주진보개혁세력은 노래가사가 왜 문제냐는 식이었다.

따라서 김용민 발언을 문제 삼기 위해선 한국사회, 더 좁게는 진보진영에 만연해 있는 남성중심성에 대한 전반적인 성찰과 반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 김용민 후보 사퇴논란엔 라이스와 강간이라는 단어가 결합한 성폭력적 발언이라는 1차적인 반응만 있을 뿐, 이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찾아볼 수가 없다. 특히 김용민 후보의 사퇴를 가장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민주진보개혁을 자처하는 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해찬 민주당 고문을 비롯한 민주진보개혁 진영의 김용민 사퇴 요구엔, 김용민이 야권 전체와 접전지역의 야권 후보들에게 미칠 나쁜 영향만이 전제로 작동하고 있다.

나꼼수 전략이 권력에 대한 남근 중심의 성적 조롱이라는 사실, 몰랐나

‘잡놈 김용민’은 8년 전 19세 이하 청취금지인 포르노 수준 라디오 방송의 연출자 겸 고정 게스트였다. 그리고 그는 나꼼수로 유명해진 뒤에도 여전히 ‘잡놈’임을 강조해 왔으며, 나꼼수에서도 ‘조X’ 수준의 남근 중심 단어들을 연발하며 낄낄댔다.

비키니 시위 논란이 아니라도 나꼼수에 담긴 농담들은 남성 중심의 성적코드가 담긴 개그였고, 대중은 그런 성적 코드로 정권을 농락하는 그들에 열광했다. 특히 정봉주 전 의원이 빠진 이후 성적 코드를 더 노골화한 사람이 ‘잡놈 김용민’이다.

김용민 후보가 8년 전 19금 라디오방송 게스트로 나가서 했던 하드코어 포르노 성 언어와 제국주의에 대한 조롱은 나꼼수에서 조현오 경찰청장의 성대모사를 통해 ‘X까’를 연발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그 전보다 더 세련돼졌다는 표현과 정도의 차이가 있을까. 그런 면에서 나꼼수 김용민의 현재를 용인한 이상 그의 과거 발언은 큰 문제가 될 수 없다. 김용민 후보가 선거에 출마할 당시나 최근 나꼼수에서 한 성적 발언들은 성인지적 감수성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민주진보 세력들은 그가 후보가 될 때 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다 알고 공천을 줬고 환호했다는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김용민의 이런 감수성을 지적한 언론은, 가장 남성 중심적이고 성문제가 비일비재한 새누리당 권력의 비호언론 조선일보였다. 조선일보가 성적 감수성이 철철 넘쳐서 김용민을 비판했겠는가. 조선이야말로 김용민의 성적 코드가 정치와 결합할 때 보수적인 대중이 얼마나 요동칠지를 정확히 읽어냈고 선거 초기부터 그의 말을 활자화시켰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조선일보는 처음부터 정치적으로 이 문제를 접근했으며 그 때문에 김용민의 사퇴를 일관되게 주장해온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조선의 주장은, 3류 포르노 수준의 라디오 진행자가 고매하신 국회의원을 할 자격이 있느냐는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피해자에 대한 책임 느끼고 징계를 자청한 훌륭한 정진후 후보

그렇다면 조선일보가 아닌 민주진보개혁을 자처하는 많은 이들이 김용민 후보의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전적으로 올바른가? 이들의 사퇴요구 논란을 짚어보기 위해선 교사 정진후 후보가 건재한 상황과 김용민에 대한 사퇴 요구에 어떤 침묵의 카르텔이 존재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사실 전국교직원노조 위원장이었던 정진후 후보가 성폭력 2차 가해자들이 면죄부를 받는 과정에서 보여준 태도는 잡놈 김용민의 태도보다 반성폭력 운동에 훨씬 좋지 않은 사례다.

전교조에 소속됐던 2차 가해자들은 성폭력 사건의 고소를 늦추려 했거나, 피해자가 성폭력을 당한 것을 알고서도 가해자와 함께 있도록 방치하거나, 이미 피해자가 다른 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민주노총 위원장 도주 수사에 떠민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2차 가해자들이 징계위 2심에서 모두 감경조치 받았다. 애초에 가해자들이 받았던 제명 징계는 영구 제명도 아니었다. 3년간 활동을 정지당하면 되는 징계였지만 그마저도 전교조는 받아들이지 않고 경고 조치로 바꾼 것이다. 그 이면엔 가해자들과 더불어 전교조라는 조직에 지워진 ‘조직적 은폐’라는 멍에를 털어내려는 목적이 있었다.

정진후 후보는 당시 이런 조치를 내린 징계재심위원회는 독립기구이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진후 위원장이 속한 정파(계파)가 징계재심위원회 구성과정에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문건이 공개됐다. 전교조 핵심 간부들이 ‘조직적 은폐’라는 단어를 민주노총 성폭력 진상조사 보고서 등에서 빼기 위해 압박을 가한 증언이나 정황도 있다. 이는 정진후 후보가 사실상 2차 가해자 면죄부의 ‘머리’라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그런데도 정진후 후보가, 전교조 대의원 대회에서 피해자의 요구대로 사건을 처리하지 못한 책임을 지기 위해 자신에게 경고라는 징계를 요청한 훌륭한 인격체로 둔갑하는 데선 진보의 허울을 보는 듯하다.

전교조가 성폭력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 조장했다는 불명예스런 단어를 지우기 위해 정진후 위원장을 배출한 전교조의 핵심 정파가 움직였고, 핵심 집행부들이 움직인 여러 증언과 문건이 있는데도 정진후 후보는 여전히 몰랐거나 관계가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

전교조는 어느 노동조합보다 성폭력 문제와 권위주의 문제에 민감했고 진보의 상징이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19금 라디오 게스트 출신 김용민의 성폭력적 발언과 정진후 후보의 당시 태도가 갖는 무게감의 차이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정진후 후보 논란에는 보다 더 엄중하게 처리할 운동사회 성폭력 문제와 노동조합 권력의 이면이 함께 작동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용민의 사퇴를 주장하는 많은 민주진보개혁인사와 그 동지들은 정진후 후보의 문제에 대해선 그 흔한 성명서 한 장조차 내지 않았다.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직접 통합진보당을 향해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피를 토하며 편지를 공개했지만, 진보나 민주를 자처하는 상당수가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런 그들이 김용민 발언을 두고 즉각 사퇴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성폭력 피해자의 절절한 호소 외면한 정진후보다
김용민의 사퇴가 더 관심인 ‘위선의 총선’


정진후 후보의 사퇴를 요구하는 성폭력 피해자의 목소리에 전혀 귀기울이지 않았던 일부 언론과 일부 민주진보개혁 정치인들, 일부 여성단체들의 김용민 후보 사퇴요구는 겉으론 여성의 권리나 인권을 주장하지만 실제론 야권의 총선 승리에 더 관심이 있어 보인다.

입으로는 아이들에 대한 교육 문제니, 성폭력 문제니, 여성인권 등의 훌륭하고 교양적인 목적을 들이대지만 진짜 관심은 반MB-반새누리당으로 짜여진 선거 판세에서 김용민 논란이 민주당 후보 또는 야권에 해를 끼칠 것이 염려되는 것이다. 이들의 사퇴요구에는 이 같은 정치적 셈법만 있었고, 김용민 후보의 완주선언에도 젊은 층의 투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정치적 판단만이 있을 뿐이다. 사퇴요구든 완주선언이든 정치적 판단만 작용했다면, 여성인권을 들먹일 것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 정치적 판단만 하면 될 뿐이다.

이런 정치적 판단들은, 반MB 만이 강력한 진보로 작동하는 이번 선거판에서 고결한 진보인 체 하기보다는 위선과 허울을 벗어던지고 반성 모드로 들어간 잡놈 김용민의 의회진출을 더 설득력 있어 보이게 한다. 김용민은 무명시절 자신의 발언을 뉘우치고 사과하고 있지만, 노조권력의 정점에 있던 교사 정진후 후보는 여전히 자신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큰 책임이 없다는 일관된 입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주와 진보를 강조하는 이들이 정진후 후보의 노조 내 조직과 그 정파 권력이 개입된 사건에 침묵한 것은 두고두고 논란이 될 것이다.

한국 성폭력 상담소만 정진후와 김용민에 같은 잣대

그나마 성폭력 피해자에게 희망인 것은 이 문제에 대해서 가장 비정치적이면서도 젠더적 감수성과 반성폭력 논의에 접근한 한국 성폭력 상담소의 태도다. 성폭력 상담소만이 정진후 후보와 김용민 후보 논란에 대해 같은 잣대를 가지고 진지하게 접근했기 때문이다.

성폭력 상담소는 5일 낸 논평에서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후보는 과거 민주노총성폭력사건 처리 과정에서 사건해결 절차를 조속히 마무리하기 위해 피해 당사자의 의견을 외면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며 “이 사건을 보며 유권자들이 불쾌감을 느낀 이유는 피해 당사자의 호소를 듣고 ‘내규에 근거하여 성폭력 사건해결을 완료하였다’는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당의 태도 때문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담소는 “성폭력 사건 해결 내규가 피해자 치유와 인권 증진을 위하여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충분히 검토하고 넘어가지 않는 한 진보정당들은 ‘조직차원의 건강한 해결’을 내세워 피해자를 입막음하는 허울뿐인 내규를 만들었다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담소는 김용민 후보 논란을 두고는 “‘나꼼수 코피사건’으로 여성 비하발언 논란에 휩싸였던 민주통합당 후보는 과거 인터넷 방송 진행시 성폭력을 정당화하는 발언과 여성비하 발언을 수차례 했던 전력이 드러나 사과하기도 했다”며 “각 정당들이 공천심사과정을 통해 후보들의 젠더 감수성을 검증하려 한다면 ‘성범죄 전력자 공천 배제’ 이상으로 후보자들의 젠더의식을 검증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함을 증명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성폭력 상담소는 김용민 논란이 있기 전인 지난 3일에도 정진후 후보에 대한 통합진보당의 태도에 대해 문제제기 한 바 있다.

기민한 강용석, 김용민에 색깔 가미 코미디 연출

이번 김용민 논란에서 빠질 수 없는 사람은 단연 성희롱 발언의 대명사 강용석 후보다. 강용석 후보는 6일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김용민 후보의 또 다른 라디오 방송을 찾아냈다며 색깔론까지 더해 주고, 친절하게 김용민 후보의 당시 라디오방송을 직접 생생하게 들려주는 코미디를 보여줬다. ‘성희롱 대명사’의 사퇴 요구는 김용민 사퇴를 둘러싸고 얼마나 많은 정치적 계산이 작동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또 다른 코미디를 보여준 사람들은 서경석 목사를 비롯한 보수 교육단체들이었다. 이들은 9일 오전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나꼼수의 타락성과 폭력성을 젊은이들이 즐기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이런 반윤리적이며 부도덕한 것을 제어해야 할 사회지도층이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놀랐으며, 이런 비교육적인 현상에 대해 정부 차원의 대책이 없다는 점에 놀랐다”고 비통해 했다.

이들은 이어 “민주당이 김용민을 공천하게 된 배경은 그가 욕설과 음담패설로 젊은 층의 인기몰이를 한 덕이 크다”며 “욕설과 음담패설이 없었다면 공천을 받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꼼수의 타락성에 물든 아이들을 걱정하는 보수세력의 비분강개는 김용민 논란에 얽힌 정치셈법이 얼마나 위선적 요소가 많은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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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하조직

    김용욱 기자 화이팅! 오랫만에 고개 끄덕이며 보는 기사 였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