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지난 25일 화물연대가 총파업에 돌입하면서, 장시간, 심야 노동에 따른 화물 노동자들의 건강권 문제와 산업재해 인정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보건단체를 비롯한 노동, 시민 단체까지 화물노동자들의 건강권과 산업재해 인정 실현을 요구하며 파업에 힘을 싣고 나섰다.
‘도로위의 무법자’ 화물차...높은 사고율은 왜?
‘달리는 시한폭탄’, ‘도로위의 무법자’ 등으로 불리는 화물차는, 그 이름만큼 높은 사고율을 기록하고 있다.
화물차의 고속도로 차량이용량은 9.1%에 불과하지만, 교통사고건수 비율은 24.0%에 이른다. 사망자수 비율은 무려 40.6%에 달한다. 고속도로 차량이용량 대비 교통사고 건수와 사망자수를 비교해 봤을 때, 승용차 대비 각각 3.6배, 8.4배에 달하는 수치다.
특히 교통사고가 났을 때 사망으로 이어질 확률은 승용차에 비해 4.3배가 높고, 대형교통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도 승용차에 비해 3.1배나 높다. 실제 고속도로 교통사고 전체 사망자 수는 2007년 420명에서 2010년 389명으로 줄었지만, 화물차 사망자는 122명에서 148명으로 늘어났다.
이 같은 높은 사망, 사고율은 화물차 운전자들의 위험운전, 졸음운전, 과적 및 적재 불량 운행 등에 따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운전자들의 운전 행태 이면에는, 그들을 사고와 죽음으로 내모는 제도적 문제가 존재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동근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은 지난 25일, 위험한 도로로 내몰리는 화물노동자의 실태를 담은 이슈페이퍼를 발간했다. 연구소는 이슈페이퍼를 통해, 화물노동자들의 위험한 운전 행태가 살인적인 장시간노동과 심야노동에 따른 졸음운전, 낮은 운송료료 인한 심야운행과 과적운행 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2011년 운수노동정책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화물노동자의 1주 평균 노동시간은 69.9시간으로, 법적 초과근로시간인 12시간을 훨씬 초과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컨테이너 화물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월 315시간으로, 여타 산업부문 노동자의 노동시간과 비교해 압도적인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잦은 심야노동도 일상화 되어 있다. 녹색병원이 2009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화물노동자의 한 달 평균 심야운행은 14.3일로, 이틀에 한 번 꼴로 심야노동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63.6%는 한 달에 5일 이상을 잠을 자지 못하고 운행하는 연속근무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정부가 주도적으로 화물차의 심야노동을 유도하고 있어, 심야노동 비율은 갈수록 증가추세다. 정부는 현재 화물차의 심야운행을 유도하기 위해 저녁 9시에서 새벽 6시에 운행하는 경우, 고속도로 통행요금을 50% 할인해주고 있다.
다단계 하청의 저임금 구조...화물노동자 ‘위험운전’으로 내몰아
때문에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화물노동자들을 장시간, 심야노동으로 내 모는 임금구조와 화물시장의 체계, 정부 정책이 고속도로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유럽 기준에 따르면, 운수노동자의 주당 노동시간은 48시간을 초과할 수 없으며, 하루 노동시간은 13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또한 심야노동이 행해질 경우 하루 노동시간은 10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김동근 연구원은 “한국 화물노동자의 노동시간은 이 기준과 비교할 때 비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장시간 노동”이라며 “장시간 운전은 졸음을 유발하고 집중력을 저하시켜 교통사고의 중요한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화물노동자들의 심야, 장시간 노동은 사실상 다단계 하청구조에 따른 낮은 운임료 문제로부터 시작된다. 화물연대의 조사에 따르면, 4단계 알선업체를 통해 물량을 받는 차주의 월 순수입은 69만원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월 노동시간인 314시간 기준으로 환산하면 시급이 2,197원인 셈이다.
이처럼 극단적인 저임금의 구조 속에서, 노동자들은 위험을 감수하면서 장시간, 심야노동에 따른 위험 운전을 할 수밖에 없다. 김동근 연구원은 “화물노동자의 극단적인 저임금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저임금’과 ‘장시간, 심야노동’, ‘사고’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화물연대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표준운임제 법제화 △운임 30% 인상 △영업용 화물차에 대한 면세유 지급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을 비롯한 화물운송관련 법제도 전면 재개정 △화물운송노동자를 비롯한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과 산재보험 전면 적용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김동근 연구원은 “시민의 교통안전과 화물노동자의 안전 및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화물 운송 수입의 보장과 화물노동자의 노동기본권 강화가 필수적”이라며 “특히 화물노동자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운송료의 대폭적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장시간, 심야노동 화물노동자 건강권 위협..,“산재보험 전면 적용해야”
화물노동자들은 장시간, 심야노동으로 건강권마저 위협받는다. 2011년 운수노동정책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화물노동자 중 41.4%는 자신의 건강상태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화물노동자들은 만성적인 근골격계 질환, 고혈압, 위장병 등에 시달린다. 위 조사에서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31.6%로 나타났으며, 이는 제조업 노동자의 근골격계질환의 증상 유병율이 23.9%인 것을 감안했을 때 비교적 높은 수치다.
이 같은 만성적인 질병에도, 화물노동자들은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돼 산재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사고가 나거나 다쳐도 병원비부터 차량수리비까지 온전히 노동자들의 부담이 된다.
때문에 보건의료노조와 노동건강연대 등 17개 노동안전보건단체는 26일,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안전한 도로를 위한 표준운임제 도입과 산재보험 전면적용을 요구했다.
이들은 “화물노동자들은 각종 산업재해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어떠한 사회안전망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다”며 “무엇보다 화물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해야 하며, 그 첫걸음으로 화물노동자에게 산재보험을 전면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 역시 26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산재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는 화물, 건설 노동자에 대한 산재보험 전면 적용을 요구했다. 민주노총은 “25일부터 파업 중인 화물운수 노동자와 27일부터 파업에 돌입하는 건설노동자들의 공동요구 중 하나가 산재보험 전면적용”이라며 “민주노총은 산재보험법의 근로자 정의를 개정하여 250만 특수고용노동자에게 산재보험을 전면 적용할 수 있는 개정입법을 요구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