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과 노동자

[칼럼] 대법관 후보자들에게는 법의 영혼과 정신이 없다

성역 없는 수사를 장담하던 검찰이 권력과 재벌 앞에 맥없이 무릎 꿇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를 반영하듯 대법관 인사청문회에서도 재벌과 권력 앞에 한없이 약한 후보자들의 진상이 드러났다. 지난 금요일에 마무리된 대법관 인사청문회는 부정과 비리의 잔치로 알려진 정부 고위직 인사청문회와도 다를 바 없었다. 대법관 후보자들에게는 법의 영혼이 없다.

보수 언론들과 일부 새누리당 의원들조차 대법관 후보자들의 도덕적 중립성 같은 기본 자질을 비판했다. 후보자들의 자질 부족이 심각해 인사청문회는 전문성 등 직무 적합성은 제대로 따져보지도 못했다.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도입한 이래 국회 인준을 못 받는 사상 초유의 일이 생겨날 가능성이 크다.

다수 언론과 정계에서 가장 문제시하는 후보자는 민주통합당이 자진사퇴를 요구한 김병화 후보자다. 김 후보자는 위장 전입, 다운계약서 작성 및 세금 탈루, 아들의 석연치 않은 공익근무요원 선발에 이어 의정부 지검장 시절 로비를 받고 제일저축은행 불법대출 수사를 축소시켰다는 의혹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후보자들도 김병화 후보자에 비해 의혹의 가짓수는 적을지라도 그 질적 면에서는 절대 뒤지지 않는다.

고영한 후보자는 태안 기름유출사건 손해배상 판결의 부당성과 위장 전입의 의혹을 받았고, 김창석 후보자는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사건의 솜방망이 처벌로 유명하다. 김신 후보자는 더욱 가관이다. 사법부 재판을 종교 재판과 혼동하지 않았다면, 종교 재판에 향수를 가진 것일까? 그는 법정에서 원고와 피고에게 기도를 요구하고 저서에 ‘지진은 하나님의 경고다. 지진이 발생한 인도의 구자라트 주는 기독교 복음을 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고 쓴 사실이 알려져 종교 편향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가 생각하는 사법적 정의는 과연 무엇인지 묻고 싶다.


게다가 김신 후보자는 한진중공업 문제 해결을 위해 고공크레인에서 농성을 벌인 김진숙 지도위원 퇴거 및 출입금지 가처분 신청 하루 만에 이를 받아들여 100만원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했다. 당사자인 김진숙 지도위원의 출석한 자리에서 그는 고공농성 장소가 김주익 지회장의 자살이 일어난 곳이었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행강제금 부과를 농성 조기 철수를 위한 정당한 심리적 압박이라고 강변해 새누리당 의원들조차 난색을 표명하게 했다.

보수 언론과 정계가 이 점을 덜 중요하게 다룬 것도 심각한 문제다. 민주통합당은 김병화 후보자의 기본 자질을 가장 중요한 문제로 여기고 있으며, 주요 보수 언론 사설들은 김진숙 지도위원 이행강제금 문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노동자를 배제한 정의는 민주 사회의 올바른 가치가 아니다. 따라서 이들은 올바른 정의 수호라는 법의 정신을 가질 수 없다.

“정말 이 땅에서 섬겨야 하는 예수가 누군지, 고난 받는 사람이 누군지, 버려진 사람이 누군지 따뜻한 눈으로 되돌아보기 바란다”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말에 오히려 진정한 법의 영혼이 스며있다. 정의라는 법의 영혼을 올바로 수호하는 것이 사법 정신이라면, 법의 영혼이 없는 대법관 후보자들에게는 사법 정신도 있을 수 없다. 김진숙 지도위원과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농성을 푼 것은 사법부의 강제이행금 부과가 아니라 그들의 투쟁과 이를 뒷받침한 대중의 힘이었다는 사실이 새롭게 울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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