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이 국회 청문회까지 출석하며 한바탕 고초를 겪은 후, 노조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훨씬 더 강경해진 듯하다. 부산 영도를 비롯해 전국을 들썩이고 있는 열사 투쟁의 중심에서, 그는 왜 그토록 고집스럽게 사태 해결에 나서지 않고 있는 것일까?
▲ 2011년 10월 7일 국회 환경노동위 국정감사에서 증인대표로 증인선서를 하는 조남호 회장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2003년 이후 노조에 끌려다녔다는 피해의식... 보복심리 발현”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정문 앞 천막농성장에서 만난 한 조합원은 “조남호 회장이 이토록 고집스럽게 노조를 탄압하는 것은 2003년 김주익, 곽재규 열사 투쟁에서 회사가 완패한 것에 대한 보복심리가 발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3년 김주익, 곽재규 열사가 연이어 사망한 이후 회사는 노조 요구를 수용해 단체협약을 맺었다. 노조는 단체협약으로 인사권 등 유리한 조항을 따냈고, 회사는 그해 열사 투쟁에서 완패했다. 2010년에는 회사가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했지만, 전국적인 ‘희망버스’ 열풍이 일어나며 이 또한 좌절됐다.
심지어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은 눈물의 ‘대국민 호소문’ 발표에 이어 국회 청문회까지 참석해야 했다. 국회 청문회 자리에서는 ‘커닝페이퍼’ 논란으로 망신을 샀다.
8일째 공장 안에서 시신을 지키고 있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당연히 감정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며 “비공식적으로 들리는 이야기는 2003년 열사 투쟁 이후 회사가 노동조합한테 끌려 다녔다는 피해의식이 굉장히 크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김 지도위원은 “2003년 열사 투쟁 이후, 한진중공업지회는 국내 최고의 단협이라 할 정도로 전향적인 내용의 노사 단협을 체결했다”며 “하지만 복수노조 결성 이후, 교섭 대표권이 넘어가면서 그 당시 따냈던 인사권 등을 다시 회사에게 빼앗겼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진중공업노동조합(기업노조)이 작년 9월, 회사와 체결한 단체협약은 인사권 조항 등에서 크게 후퇴했다.
기존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의 단체협약 ‘징계’ 조항은, 징계위원회의 징계위원을 노사 4명씩 동수로 구성하도록 했다. 이는 2003년, 열사 투쟁 이후 노조가 따냈던 성과였다. 하지만 한진중공업노동조합과 회사의 단체협약에서는 ‘징계위원은 노사 각 4명씩 한다’는 문구가 삭제됐다. 대신 ‘조합임원 3인이 참고인으로 참석하여 변론할 수 있다’는 문구를 삽입했다.
지회 조합원은 “회사는 2003년 이전으로 노조를 되돌리고 싶어 하는 것 같다”며 “2009년 회사 측 한 임원은 신년사에서 ‘2003년 잘못됐던 것을 되돌려 놓겠다’라고 이야기 했고, 그 후로 노무관리자 출신의 임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 기회 놓치면 영도공장 폐쇄 물건너가”
한진중공업 사측의 ‘강경책’을 단지 ‘보복심리’로만 설명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 때문에 노조는 회사가 필리핀 수빅 조선소로 이전하기 위해 ‘노조와해’라는 필수적 단계를 밟고 있는 것이라 파악하고 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한진중공업은 지난 2006년부터 필리핀 수빅만에 조선소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에 한진중공업지회는 영도조선소의 물량감소와 고용불안을 우려해 2007년, 회사와 특별단체교섭을 체결하며 회사의 경영에 제동을 걸었다.
특별단체교섭 내용에는 △회사는 현 수준의 적정 인력을 유지하며 경영상의 이유로 국내 공장의 축소 및 폐쇄 등 인위적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 특히 해외 공장 등으로 인해 국내 공장 조합원의 고용 불안이 발생치 않도록 한다 △회사는 해외 공장이 운영되는 한 조합원의 정리해고 등 단체협약상 정년을 보장하지 못할 행위는 하지 않는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회사는 2010년 상반기에만 수빅 조선소에 23척을 수주한 반면, 영도조선소는 단 한척의 배도 수주하지 않았다. 대신 회사는 4년간 영도조선소의 수주가 없었다며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노조와 시민사회는 이를 사실상의 영도공장 폐쇄 선언이라 받아들였으며, ‘희망버스’가 전국적으로 가동됐다. 결국 회사의 영도공장 폐쇄의 첫 수순이던 ‘정리해고’ 계획은 좌절됐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회사가 지금 이 시점에서 노동조합을 완전히 깨지 않으면, 이후 영도 공장을 폐쇄하고 필리핀 수빅 조선소에 올인하고자 하는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며 “어차피 회사는 국내에서 공장을 운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국내 이미지에 타격을 받는다 해도 별 상관이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2011년 당시에도 상식 이하로 회사가 ‘버티기’를 한 것 역시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 역시 “이후 노조가 와해될 경우, 영도공장의 문을 닫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회사는 노동조합이 없는 세상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최강서 열사 유가족과 노조 측은 지난 4일, 기자회견을 통해 ‘조건 없이 협상 일정을 잡으면 고인을 회사 공장 바깥으로 옮기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회사 측은 ‘고인의 시신을 회사관리 범위 바깥, 시위자 전원 공장 밖으로 나갈 것’을 요구 조건으로 내세우며 사실상 협상 거부를 선언한 상태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6일 오전에 사실상 협상논의가 중단됐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