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 경제민주화를 시장경제질서 확립으로 대체

사회적 약자 집단행동, 안전사회 위협 요소로 볼 가능성도 내비쳐

헌법 119조 2항은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지난해 대선에서 주요 대선 후보들의 핵심 공약 중 하나였던 경제민주화는 이렇게 헌법에도 명시된 강력한 재벌 대기업 규제의 근거였다.

하지만 21일 박근혜 정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5대 국정목표와 21대 국정전략, 140개 세부 국정과제엔 경제민주화란 용어 자체가 빠졌다. 대신 인수위는 경제민주화 보다 광의의 개념으로 ‘원칙이 바로 선 시장경제질서 확립’이라는 표현으로 대체했다. 인수위는 경제민주화라는 표현은 없지만 세부 국정과제 내용에 경제민주화 공약 발표 사안이 들어가 있어 경제민주화의 의지나 공약 실현 방향, 이행 계획 등은 바뀌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이날 발표에서 류성걸 인수위 경제1분과 간사는 “경제민주화와 관련 사항은 그동안 논의를 통해 내용에 충분히 반영됐다”며 “5개 국정 목표에 (경제민주화) 관련 사항을 모두 나열할 수 없어 경제, 사회, 문화 5대 목표 중에 나누어 포함됐고, 과제 140개 중에 상세하게 소개됐다”고 밝혔다.

류 간사는 또 “경제 관련 부분은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에 나와 있고, 경제민주화 관련 원칙에 대해서는 ‘원칙이 바로 선 시장경제질서 확립’ 28번~44번 속에 내용이 다 들어가 있다”고 재차 내용에 녹였음을 강조했다.

이현재 경제2분과 간사도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대기업의 파워 남용을 막고, 상대적으로 취약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보호하는 것”이라며 “중소.자영업 지원대책을 마련하려는 취지가 정책에 반영돼 있다”고 반박했다.

인수위 설명대로 박근혜 당선인이 대선 때 제시한 경제민주화 관련 공약은 국정목표인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의 5번째 전략인 ‘원칙이 바로선 시장경제 질서 확립’에 일부 담겨 있다.

인수위는 ‘원칙이 바로선 시장경제 질서 확립’을 위해 “자본과 힘의 논리에 의한 불공정 행위를 방지하여 개인 이익과 사회 공동선이 합치되는 균형 잡힌 경제가 되도록 한다”며 “공정한 경쟁질서를 확립하는 등 원칙이 바로 선 경제 환경을 마련하여 모든 경제주체가 동반 성장하는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경제적 약자의 권익보호 △소비자 권익보호 △실질적 피해구제를 위한 공정거래법 집행 체계 개선 △대기업 집단 지배주주의 사익편취행위 근절 △기업지배구조 개선 △금융서비스의 공정경쟁 기반 구축 등의 세부과제를 제시했다.

그러나 이미 대선기간 동안 논란이 됐던 대기업집단 계열회사 간 순환출자 금지 조항은 기존 순환출자 고리를 자발적.점진적 해소 유도에 맞췄고, 신규 순환출자 금지 조항만 신설했다. 이미 공룡이 된 재벌 대기업들은 경제 상황을 고려해 손을 대지 않겠다는 것이다.

"고용과 복지 내세우지만 핵심인 노동은 찾아 볼 수 없어”

무엇보다 경제민주화가 재벌경제 개혁이나 공정거래 보장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노동권 존중과 노동문제 해결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지적엔 아예 귀를 닫았다. 인수위는 오히려 노동자들의 헌법에 보장된 단체행동을 불법 집단행동으로 규정하려는 의도도 일부 드러냈다.

인수위가 발표한 ‘세부추진과제 89-법과 질서를 존중하는 문화 구현’에서는 “불법 집단행동에 대한 사법대응체제를 구축, 안전한 사회를 구현”이 제시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노동자들의 합법파업도 불법집단행동으로 규정했던 것을 상기하면 노동자의 투쟁을 안전 사회를 위협하는 행위로 볼 수 있어 노동자들에 대한 더욱 강경한 대응을 예고한 대목으로 읽힐 수 있다.

인수위는 또 ‘대화와 상생의 노사문화 구축’을 위해 “범 국민적 참여와 역량 결집을 통해 경제사회 전반의 이슈를 포괄하는 사회적 대타협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도 재차 “전근대적이고 불합리.불법행위 근절 및 위반시 법에 따라 엄정 조치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고공농성을 벌이는 현대차 비정규직, 쌍용차, 재능교육 등 재벌 기업보다 월등히 힘이 약한 사회적 약자들이 타협을 거부하고 목숨을 건 투쟁에 나서면 언제든지 외면하고 불법행위로 규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제민주화를 충분히 녹여냈다고 보기 어렵다.

민주노총은 국정과제 발표를 두고 “경제민주화는 중심과제에서 사라졌고 고용과 복지를 내세우지만 그 핵심인 노동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며 “헌법에 명시된 경제민주화를 경시하고 이명박 정부의 친재벌-반노동 정책을 이어가겠다는 표현”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를 우선 순위로 내세웠지만 생산성 향상, 성장 우선을 내세움으로써 ‘고용없는 성장’과 다를 바 없는 말장난에 불과하다”며 “의도적으로 민주와 노동을 약화시키거나 심지어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것이 차기정부의 ‘국정과제’라면 민주노총은 더욱 치열하게 투쟁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한편 인수위는 25일 출범하는 박근혜정부의 국정비전을 ‘국민행복, 희망의 새 시대’로 제시하고, 국정비전 달성을 위한 5대 국정목표를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 △맞춤형 고용 복지 △창의교육과 문화가 있는 삶 △안전과 통합의 사회 △행복한 통일시대의 기반구축으로 선정했다.

인수위는 “이제는 국민행복과 국가발전이 선순환하고 모든 사회공동체 구성원이 화합하여 안정된 삶을 영위하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며 “국민행복을 바탕으로 새로운 한반도시대를 개막하고 나아가 지구촌의 행복시대에 기여하는 모범국가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 박근혜정부의 시대적 소명”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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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nysong

    경제민주화는 헌법에서 규정하듯 시장자유주의, 시장자본주의로 비롯되는 불평등을 완화하기위함이지만 박ㄱㅎ정부의 시장질서확립은 그 정신부터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옹호하기위한 것이다. 아전인수격인 이러한 개념의 재정리는 프레임자체를 변경하기위한 고도의 전략적의미를 담고있다고 본다.경제민주화라는 단어의 폐기는 앞으로 상당히 오랫동안 자본주의 정부들의 성격을 규정하게될것이다. 새누리당이든 민주당이든 다르지않을것이라보여진다. 중대한 문제임이틀림업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