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 이야기

[최인기의 사진세상](24) 서울 용산구 동자동


대부분의 쪽방은 커다란 건물 뒤에 가려져 있습니다. 서울을 중심으로 보자면 창신동 동대문호텔 뒤편의 쪽방이 그렇고, 종로뒷길 돈의동이나 남대문, 청량리, 영등포역 근처의 쪽방이 그렇습니다. 그나마 구로지역의 쪽방들은 주택가에 밀집해 있을 뿐입니다. 말 붙이는데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동자동처럼 자그마한 집을 일컬어 닭장집, 벌집, 하꼬방이라 부릅니다. 2012년 여름 빈민학생연대활동 이후 오랜만에 동자동을 찾았습니다. 지하철 1호선 서울역에서 내려 11번 출구로 나와 용산구 후암로 57번길로 접어들어 동자동으로 향했습니다. 식당과 술집이 즐비한 골목으로 접어들자 대낮인데도 골목을 서성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낡고 허름한 건물 사이 담벼락에 ‘월세 놓음’이라는 전단이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쪽방이 밀집해 있는 곳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합니다.


동자동은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정리할 때 서계동의 대칭으로 동쪽 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1975년 10월 1일 관할구역 변경으로 중구의 동자동, 도동1·2가의 일부가 용산구로 편입되어 용산구 동자동이 되었다고 합니다. 동자동은 6.25전쟁 이후 빈곤한 이들이 판자촌을 형성하고 살았으며 지금은 주택재개발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서울역과 주변에 인력소개소가 있거나 멀지않은 곳에 전통시장인 남대문 시장이 인접해 있어 생계를 꾸려가기 비교적 수월한 지역입니다. 작은 골목길에 화분이 가지런히 놓여있습니다. 지붕 위에도 옥상 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보름이 지났으니 한 달 후에는 작은 화분 위로 꽃들이며 갖은 채소들이 피어오를 겁니다. 비록 낡은 쪽방 건물에 좁은 길이지만 누구든 화사한 봄날을 기다리는 마음은 매한가지입니다. 가난을 들여다보는 심정은 착잡합니다. 동자동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비참한지 드러내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꼭 이 글을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동자동을 비롯한 쪽방촌의 일상을 다룬 글들은 쉽게 찾을 수 있으니까요.


“밥은 먹고 다니냐?” 한번도 밥을 산적은 없지만 동자동사랑방 조승화 사무국장을 만났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후배지만 이 친구는 나를 싫어합니다. 선배의 마음을 몰라주는 후배가 아쉬워도 언젠가는 진심을 알아주겠지요. 아무튼 동자동사랑방은 이곳 주민과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주민을 대상으로 쪽방신문을 제작하여 마을소식을 전하기도 하고요. 건강 관련 그리고 복지수급, 주거문제 등에 대한 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마을잔치, 영화상영 및 음악공연, 텃밭사업 등 동자동 주민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주민이 출자해 직접 조합원이 되어 운영하는 마을은행이 있습니다. 약 6백여 명의 주민이 공동으로 출자해 긴급하게 돈이 필요하면 10만원에서 최대 50만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단돈 몇 십 만원 없어서 거리로 나앉거나 병원비가 부담스러워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주민에게 당장 필요한 급전을 마련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사랑방마을 공제협동조합’입니다.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동자동사랑방에서 쪽방주민의 편의 공간인 마을부엌 겸 도서관으로 운영하고 있는 ‘식도락’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식사를 준비하던 김장기 씨가 웬일이냐며 반갑게 맞아 줍니다. 벽면에 빼곡히 쌓여있는 책이 먼저 눈에 띕니다. 그리고 입구에는 주방이 깔끔히 만들어져 있습니다. “한마디로 마을공동부엌이면서 마을도서관이죠. 두발 뻗고 잠자기도 불편한 쪽방에서 밥을 해먹기란 여간 힘든게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취사 공간조차 없는 경우가 허다하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동부엌시설을 운영합니다. 함께 밥을 먹고 게다가 작은 마을문고까지 갖춰 그야말로 밥과 책이 있는 식도락(食圖樂?)인 셈입니다.” 주민 의견이 모아져 사랑방 식도락이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도 전합니다.


식도락을 나와 장기 아저씨와 골목길로 향했습니다. 장기 아저씨는 이곳에서 오랫동안 생활을 하셨습니다. 식당에서 주방장을 한 적이 있어서 음식을 만드는 일은 자신의 몫이라고 합니다. 식당이 즐비한 골목을 빠져나와 붉은 벽돌로 감싸진 4층짜리 건물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니 방마다 문이 잠겨있습니다. 한곳을 가르키며 얼마 전 쪽방 주민이 홀로 고독사한 방이라고 합니다. 장기 아저씨는 이곳에서 이런 일은 흔한 일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에도 며칠간 보이지 않던 사람이 싸늘한 시신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지만 아무도 지켜보는 이 없이 쓸쓸히 유명을 달리한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얼마 전 한 신문 기사를 인용해보면, “시체해부및보존에관한법률 12조 1항에 따르면 시장·군수 또는 구청장은 인수자가 없는 시체가 발생한 때에는 지체 없이 그 시체의 부패방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의과대학의 장에게 이를 통지해야 하며, 의과대학의 장이 의학의 교육 또는 연구를 위해 시체의 교부를 요청한 때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해야 한다고 돼 있다”는 것입니다.

홈리스 행동 이동현 활동가는 “기본적으로 사람의 인권이 신체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인데 시체 해부는 인간의 존엄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고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며 “무연고 시신의 절대 다수는 가난한 이들의 시신이라는 점에서 이들을 해부할 수 있다고 규정한 법률은 즉각 개정돼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마침 전도영 씨가 하루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중입니다. 도영이는 고아지만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시청에서 알선해준 농사 짓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노숙인 인권과 복지문제에 관심이 많고 ‘사랑방마을 공제협동조합’ 의 임원이기도 합니다. 한 달에 약 70만 원 정도를 벌지만 방값으로 20만원을 내고 차비에 지출을 빼면 얼마간의 돈을 저축 한다고 합니다. 도영이의 집은 동자동 놀이터 맞은편 건물 1층에 있습니다. 낡은 건물입구에는 공동으로 쓰는 화장실이 있습니다. 겨울바람을 막고자 현관 문대신 비닐이 쳐있는 곳을 밀치고 들어가니 입구부터 매케한 냄새가 훅하며 풍겨옵니다. 그리고 쪽방 건물특유의 어두침침한 작은 복도가 이어집니다. 복도 끝의 작은 방이 도영이의 집입니다. 자물쇠 문을 열고 들어가자 창문조차 없는 1.5평정도 크기의 도영이가 누우면 딱 맞는 방이 나옵니다. 방 한쪽에는 옷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고, 낡은 텔레비전이 놓여있습니다. 두 사람이 앉기에도 불편한 방안에 앉아 천천히 살펴보니 의외로 정리정돈이 잘되어 있습니다. 도영이는 천장에 걸려있는 작은 옷장을 스스로 짰다고 자랑입니다. 하지만 겨울에는 따뜻한 물이 없어 전기밥통에다 물을 데워 고양이 세수를 하고, 여름에는 너무 더워 차라리 공원이나 도로에 나와 라면박스를 깔고 잠을 청한다고 합니다.


요즘 동자동 쪽방시세는 얼마인지 물어 봤습니다. “예전에는 일세도 받았다는데 요즘에는 보증금 없이 월세죠. 보통 20만~25만원 가량해요.” 쪽방건물은 처음부터 쪽방을 위해 만들었다 할 정도로 건물 안에 작은 집들이 밀집해 있습니다. 집주인이 직접 관리하기 보다는 대부분 쪽방관리자를 두고 있다며 이곳의 쪽방 주인들은 돈을 엄청 모았을 거랍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집 부자는 무려 1,000채를 넘게 보유하고 있다는데 이들에게는 월 20만원에 한 평이 전부인 셈입니다. 참으로 불평등 세상입니다. 도영이의 이야기를 더 듣고자 방에서 나와 근처의 치킨 집으로 향했습니다. 잠시 후에 동자동 사랑방 회의를 마치고 승화가 들어왔습니다. 생맥주를 들이키며 궁금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전국적으로 노숙인의 숫자는 어느 정도일까? “약 3천5백 명에서 4천여 명 정도로 추정하는데 거리 노숙인과 쉼터에 거주하는 노숙으로만 한정 지을 수 없죠. 이들 외에도 노숙 직전에 놓인 고시원과 찜질방 그리고 만화방을 전전하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많다고 봐야죠” 최근 이들을 통틀어 ‘홈리스’라고 표현합니다. 좀 더 포괄적인 시각으로 이들을 바라봐야 한다는 뜻입니다. 동자동 지역의 주민은 2011년 10월 말 기준으로 873명으로 되어 있으나. 쪽방과 비슷한 상황의 주거 조건임에도 쪽방으로 지정되지 않은 주거까지 포함하면 대략 1,000여 명의 쪽방주민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우리사회가 전반적으로 빈곤화되는 과정에서 홈리스들이 넘쳐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들을 둘러싼 잘못된 선입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아무런 일을 하지 않는 게으른 사람으로 알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노숙인이 일용노동자나 노점상 그리고 폐지 수집 등 비공식부문에서 소일을 하고 있고, 어떠한 형태로든 일할 의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작년 6월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과 관련해 시행령 및 시행규칙, 노숙인 등 복지사업 운영안내서가 만들어졌습니다. 이에 대해서 이동현 씨를 통해 알아 봤습니다. 시설입소자이면서 3개월 이상 노숙생활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노숙인 일시보호시설, 노숙인 자활시설 입소자 중 지속적으로 3개월 이상 거리 또는 노숙인 시설에서의 노숙 생활이 확인된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거리노숙과 같이 시설에 안 들어가는 사람들 또는 3개월 미만의 노숙인은 자격미달이며 결국 의료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입니다. “이밖에도 홈리스에 대한 예산은 지방정부 계획을 세우는데 있어서는 복지부로 나누어져있어서 책임소재도 명확하지 않아 통합적으로 지원되어야 합니다.”


세상에 절망하고 스스로를 작은 감옥에 가두고 술로 살아가는 사람들, 수많은 사람이 스쳐지나가는 발길 아래 그림자처럼 숨죽이고 사는 사람들, 아무리 동자동 쪽방촌이 답답하고 암울하다 할지라도 비록 열악한 환경이지만, 나름의 방법으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쪽방이 불결하다는 이유로 무작정 철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삶이 어렵고 남루 한 것은 사실이지만, 추위나 더위로부터 그리고 화재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좀 더 나은 방법으로 삶을 살아 갈 수 있도록, 혹은 지금보다 더 나쁜 삶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다양한 정책과 지원이 절실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희망을 일구려는 사람들이 있기에 마음이 든든합니다. 이날 조승화 사무국장과 정말 밤새도록 술 한잔 기울이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드는 생각이 아무리 쪽방에서 살지만 목욕은 좀 하고 다니라고 아무생각 없이 던진 말이 왠지 맘에 거슬립니다. 세상의 낮은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찾아나서는 활동가들에게 응원과 지지의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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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님

    도대체 이해가 안가는사람들이야요 노숙인과 쪽방사람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인간들이 아니고서야

  • 질라리비


    쪽방이 불결하다는 이유로 무작정 철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정책과 지원이 절실합니다. 조승화씨...수고가 많으시네요

  • 한정우

    이런 병신 사기집단홈리스개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