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간 노동에 뱃속의 아이가 죽어간다”

제주의료원 간호사 집단 유산 해결 나서...“임신, 출산 권리 보장하라”

공공병원인 제주의료원 간호사 문현정 씨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 아이를 자연유산했다. 문 씨는 아이를 유산한 뒤 주변으로부터 산모가 “몸 관리를 어떻게 했냐”는 질타를 받아 괴로웠다고 토로했다.

아이를 잃은 슬픔에 “눈물 흘리는 일 외에 할 일이 없었다”는 그는 주변 동료들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야간노동을 포함한 장시간 노동, 생식독성물질에 노출된 병원 현장에서 일했던 제주의료원 간호사 8명이 유산을 경험했고, 4명이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진 아이를 출산했다. 2009년부터 2010년까지 2년간 벌어진 일이다.

문 씨는 “동료 간호사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뱃속에서 아이가 죽어가는 일을 경험했다”며 “몸이 힘들어도 장시간 근무, 한 달에 10번이 넘는 야간노동, 약 분쇄 작업 등을 아무 말 없이 해 왔는데, 그러는 사이 간호사와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었다”고 말했다.

병원사업장 여성노동자 건강권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준)에 의하면 제주의료원의 경우 간호사들의 자연유산율이 2009년 15건 중 4건, 2010년 11건 중 4건으로 전국과 제주도 지역의 자연유산 발생률보다 18~19% 높았다.

이들은 그 원인으로 야간노동을 포함한 교대제 근무, 장시간 노동을 들었다. 박현희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제주의료원 부지부장은 먼저 “공공병원이 적자가 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지자체와 병원측은 적자를 이유로 환자들이 오기 힘든 한라산 초입에 병원으로 옮겨놨다”며 “적자가 심해지고 노동자의 임금이 체불되면서 간호사의 이직률이 30%를 넘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남아있는 간호사들이 노동 강도가 높아진 상태로 일하다보니 유산을 경험하고 선천적 심장질환을 가진 아이를 출산했다”며 “제주도, 회사, 노조가 역학조사 한 결과 현 노동조건이 유산과 선천성 심장질환 아이 출산의 원인으로 꼽히기도 했다”고 전했다.

또한 병원 현장의 생식독성물질도 문제로 지목됐다. 이서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는 “간호사나 병원 노동자들은 X레이에서 나오는 방사능물질, 산화에틸렌과 1급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 등 생식독성물질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경우가 많다”며 “이 물질에 노출된 경우 유산율이 1.83배가량 높다”고 말했다.

그는 장시간 노동도 지적했는데, “심야노동, 장시간 노동 등은 심혈관계질환, 불면증, 정신질환 등 수많은 질병을 유발한다”며 “장시간 노동의 경우 여성노동자의 유산율이 1.44%가량 높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사태 해결은 요원한 실정이다. 선천적 심장질환아 출산, 자연유산을 한 제주의료원 간호사 8명이 2012년 12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를 신청했지만, 선천적 심장질환아를 출산한 4명의 경우 산재 신청이 반려됐다. 산재 적용이 노동자 당사자에만 해당된다는 이유다.

박현희 부지부장은 “엄마가 임신 중에 장시간 노동과 생식독성물질에 노출되어 아이가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태어난 아이라서 산재를 적용받지 못한다는 괴상한 논리가 어디 있는가”라고 꼬집으며 “근로복지공단이 역학조사 결과를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병원사업장 여성노동자 건강권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준)은 29일 오전 대한문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제주의료원 상황을 알리며 “병원사업장 여성노동자의 임신과 출산의 권리를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정부는 저출산 시대를 운운하며 여성들에게 출산을 강요하지만 정작 여성들이 임신, 출산, 양육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있다”며 “정부는 이들의 권리 보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연맹, 노동과 건강 등 7개 단체로 구성된 병원사업장 여성노동자 건강권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준)는 이날 출범하며, 제주의료원 여성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을 시작으로 병원사업장 여성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선다는 계획이다.
태그

산업재해 , 병원 , 산재 , 야간노동 , 장시간노동 , 공공병원 , 제주의료원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정재은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