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연장, 핵심도 우선순위도 아니다

[기고] 고령화는 원인이 아닌 '결과', 노동연장이 아닌 '분배'가 핵심

정년연장, 기정사실화

끓는 물에 빠진 국수가락 마냥 정년연장이라는 화두에 온 사회가 흐물흐물 거립니다.

본 회의를 앞두고 있습니다만, 일명 ‘정년 60세 연장법’이라 불리는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법 개정안’이 지난 4월 24일 국회 환노위를 통과하며 기정사실로 되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던 이 법의 대표발의자인 이완영의원(새누리당)은 임금피크제 도입을 전제로 한 법안이라 강조했고, 법 통과의 주역인 김성태 의원(새누리당)은 ‘제 몸속에 노동자의 피가 흐른다’며 힘을 주었습니다. 바로 다음 날인 25일, 금호섬유화학의 임금피크제 도입을 통한 정년연장 노사합의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정년연장은 19세기 독일, 일해도 가난한 노동자가 100만명을 넘어서며 급진적 노동운동이 확산하고, 사회가 극도로 불안정해짐에 따라 당시 재상이었던 비스마르크가 사회주의 세력에 대한 선제 조치로 사회보장제도의 기틀을 마련하며 연금, 일자리, 노인복지, 의료보험 등과 함께 고안되었다고 잘 알려졌습니다. 당시 독일인의 평균수명이 45세~49세였던 점을 고려하면, 그가 왜 정년을 65세로 정했는지 짐작할 수 있지요. 이렇게만 본다면 모순적이게도 정년을 고령화의 대책으로 이야기하기엔 쑥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순진한 발상, 정년연장이 고령화의 대안?

물론 당시와는 판이한 인구와 노동력의 급격한 고령화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조건입니다. 2060년이 되면 생산가능인구 100명이 노인 80명을 부양하는 1대 1 부양시대에 진입한다는 예측은 국민들의 불안감을 일깨우기에 적당해 보입니다.

  지난해 노인노조도 설립됐다.

그럼에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이 되어버린 6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사업장 이동의 자유마저 박탈당한 100만 이주노동자들에게, 경제활동인구에 포함조차 되지 못해 고용‧실업률 추계에도 끼지 못하는 140만 장애인들에게, 불인정‧불안정 노동 속에서 부림 당하는 이름 모를 민중들에게 정년연장은 무슨 의미입니까?

고령화 탓에 사회적 생산력이 저하되고 젊은 세대의 부양인구가 급증한다는 것이 지금 정년연장의 핵심근거입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젊은 층의 실업률에서 알 수 있듯 우리 사회의 문제는 생산력 저하가 아닌 생산력 과잉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젊은 세대의 부양인구가 증가한다는 걱정 앞에는 삼포세대(연애포기, 결혼포기, 출산포기)가 있습니다.

정년연장(60세)을 통해 국민연금 수급연령(61세)과의 ‘은퇴 크레바스(소득 공백기)’를 줄여 노인빈곤율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은 순진한 발상입니다. 이미 기획재정부 중장기전략위원회는 ‘대한민국 중장기 정책과제’를 발표하며 현 고령자 기준 65세를 70세로 상향하리라는 것을 시사했습니다.(여기에서 ‘1889년 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가 노령연금을 세계 최초로 도입하면서 수급연령을 65세로 책정했던 당시 독일인의 평균수명은 49세 수준이었다’가 역사적 근거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정년연장법 통과일인 4월 24일 한국금융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국민연금의 고갈을 근거로 2025년까지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2.9%로 인상하고, 수급개시연령을 67세로 조정하는 방향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정년연장이 해묵은 논쟁이었던 것처럼 노인기준 연령과 연금지급연령 상향도 매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고령화의 대안이 정년연장이라면,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정년 폐지일 것입니다. 관 속에 눕기 전까지 손발이 허락하는 한, 기업이 수락한 금액을 받으며 일하는 것, 그리고 용돈 조로 나오는 연금을 받으며 연명하는 것 말입니다.

고령화는 원인이 아닌 ‘결과’, 대책은 제대로 된 ‘분배’에서 시작해야

현재 여당과 야당은 물론, 노동계에서도 정년연장을 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반면 기업들만 복지책임을 전가하지 말라며 떼쓰고 있습니다. 단 1명의 노동자라 할지라도, 사회안전망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몇 년을 더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이득임이 분명합니다. 그렇기에 표면상으로는 자본의 실, 노동의 득 인양 보입니다. 하지만 이 이득이 장기적인 전체 민중의 이익일지 누구도 확신하지 못합니다.

지금의 정년연장은 노령연금으로 뒤통수 쳤던 박근혜 정부의 달래기 정책이자, 정부여당이 정규직 50대 세대권력에 주는 푯값에 지나지 않습니다. 경제위기의 책임을 물을 수 없고, 재벌에게 세금을 더 내라고 하지 못하는 정부가 선택한 가장 손쉬운 경제민주화 제스처이며, 임금피크제라는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둔 자본의 가장 덜 치명적인 개혁이자,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동조합이 뼈저리게 울며 먹은 겨자입니다.

청년고용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생산력이 넘쳐 나고 사회적 부가 증가함에도, 우리가 과거보다 더 오래 일해야 한다면 문제는 분배에 있습니다. 고령화는 분배에 실패한 체제가 낳은 결과입니다. 이것은 2010년 사르코지 대통령의 (정년연장과 연금 지급연령 상향을 골자로 한) 연금법 개정안에 전쟁을 선포했던 프랑스 민중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령화사회 대책이라는 요란한 잔칫집에 국수만 덩그러니 말아져 있는 꼴입니다. ‘낳지 않고 늙어 죽어 가는 종(種)은 멸종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당연한 진리 앞에서 진정한 고령화 대책은 이를 초래했던 원인제공자들이 그 사회적 부담을 지고, 내어놓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정년연장은 노동자 민중이 빼어들 카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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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 정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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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과 다른나라 노동조합은 정년연장을 반대하는 파업투쟁을 하고, 한국의 노조들은 정년연장을 좋아한다.
    참 유치한 나라의 유치찬란한 노조이다.
    죽을 때까지 임금노예로 살아가는 것이 노동운동의 목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