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윤슬기 씨 추모 1주기를 맞아 30일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삼성 직업병 피해 유족들과 반올림은 ‘산재판정에 삼성병원 의사 참여, 판정위원 비공개, 산재 불승인 결정’의 근로복지 공단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 |
[출처: 엄명환 현장기자/ 뉴스셀] |
고 윤슬기 씨는 1999년 6월 군상여상 3학년 재학 중에 삼성전자 LCD 천안공장에 입사, 곧바로 LCD 생산라인(스크라이브공정)에 배치되어 3교대로 근무를 시작했다. 이곳에서 그녀는 유기용제와 방사선이 노출되는 환경에서, 보호구조차 지급받지 못한 채 LCD패널 절단 업무를 수행했다. 1999년 11월 말경, 근무도중 어지럽고 숨이 차는 증세가 지속돼 서울성모병원에서 진행한 검사결과 그녀는 2000년 1월 “중증 재생불량성 빈혈”을 진단(2000년 1월) 받았다. 그 뒤 13년 동안 수혈에 의지해 살아오다 지난해 6월 2일, 재생불량성 빈혈이 악화되어 장출혈과 폐출혈로 사망했다. 그녀의 나이 불과 만 31세였다.
재생불량성빈혈은 혈액을 만들어내는 골수의 손상으로 나타나는데, 보통 인구 100만 명당 연간 발생률이 2~14명 사이로 보고되고 있어 매우 낮은 발생률을 가진 희귀한 질환이다. 그러나 삼성에서 일하다 재생불량성빈혈에 걸린 피해노동자가 반올림에 제보된 수만 벌써 5명이다. 백혈병, 림프종 등 림프조혈기계 암과 같이 벤젠, 포름알데히드, 방사선, 산화에틸렌과 같은 유해인자에 노출되면 발병한다.
반올림은 “재생불량성 빈혈은 단기간(6개월) 내 급성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 윤슬기님이 해당 작업에 종사한 5~6개월의 기간 동안 재생불량성 빈혈의 원인물질에 노출되었다면 질환이 발생하는데 충분한 기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고인이 일했던 스크라이브(scribe)공정은 세척, 화학처리, 방사선 검사를 하며, 열경화를 거치면서 열분해 산물로 나오는 벤젠과, 방사선 검사로 인한 방사선에 복합적으로 노출되었을 가능성 충분”하다며 “그러나 국소배기장치나 개인보호구는 전혀 지급되지 않았다. 같은 공정 노동자 1명은 백혈병(20대후반 남성)이 발병했고, 또 다른 한명은 유방암(24세 여성)이 발병했다”고 밝혔다.
![]() |
[출처: 엄명환 현장기자/ 뉴스셀] |
작년 7월 윤슬기 씨의 유족은 근로복지공단 천안지사에 산재 유족급여를 신청했고, 올해 4월 12일 근로복지공단 산하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초심회의에 유족 대리인(반올림 이종란 노무사)이 출석해 업무와 질병간의 상당인과관계가 있다는 최종 의견진술서를 제출했다. 당일 판정위원들끼리 비공개로 진행한 회의 결과는 3대 3 가부동수로, 5월 9일 재심의가 열리게 되었다. 재심의 및 판정회의에서는 또다시 3대 3 가부동수가 나오자, 마지막으로 질판위위원장이 표결에 참여해 4대 3으로 윤 씨에 대한 산재는 최종 불승인 처리됐다. 유족들은 5월 27일 불승인 통지서를 받았다.
이 판정위원회에 강북삼성병원 의사가 참여한 것과 재심의까지 거쳐 질판위 위원장의 반대표로 최종 불승인이 난 것과 관련 공정성과 투명성 논란이 일고 있다.
반올림은 “근로복지공단이 산재신청 당사자에게 사전에 판정위원 기피제도 및 판정위원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이름, 직업, 소속)를 사전 제공하지 않아 당사자의 법률상 권리인 ‘기피신청권’을 박탈”했다며 “판정에 공정성을 해할 우려가 있는 위원에 대한 기피신청권을 행사하지 못함으로서 업무상질병 판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주장했다.
강북삼성병원은 삼성전자와 같은 삼성 계열사이자, 이 사건 재해노동자인 고 윤슬기 씨를 비롯해 삼성전자 반도체 및 LCD사업장에 특수건강검진을 실시하는 병원이다. 반올림은 “삼성전자측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행위를 할 수 없는 병원임에도 불구하고 근로복지공단이 강북삼성병원 의사를 삼성 직업병 노동자 산재판정위원으로 배치시켜 불승인이 났다”고 판단했다.
또한 최종 판정위원회 위원장(상임위원)이 불승인 표를 던져서 4대 3으로 불승인 처분을 받게 된 것은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노동자 편이 아니라 기업(삼성)편임을 명백히 드러나는 행위”라고 규탄하며, “기업주가 화학물질 등 정보 독점하는데 산재입증은 노동자가 해야하는 산재입증책임 구조는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산재사건과 관련해 근로복지공단은 문제가 될 수 있는 삼성병원 의사를 판정위원회에 참여시키고, 명단을 공개하지 않아 유족들에게 기피 권한 자체를 박탈해 ‘삼성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게 아닌가’라는 의혹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기사제휴=뉴스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