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반려된 공무원노조 설립신고서가 고용노동부와 8차례 면담, 실무협의, 노동부 담당 정책관의 최종 확인까지 사전에 거친 후 제출 된 것이라 박근혜정부 노정관계에 미칠 영향이 만만치 않다.
공무원노조가 공개한 규약개정 실무협의 과정을 보면 공무원노조와 노동부는 법외노조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최대한 서로의 명분을 지켜주는 선에서 협의를 진행한 측면이 있다. 특히 공무원노조 지도부는 노동부에 신뢰를 보내고 조직 내부 반발까지 무릅쓰며 규약 개정을 주도했지만, 정부는 뒤통수를 쳤다.
실제 양 당사자간 실무협의 내용을 살펴보면 매우 구체적인 내용이 논의 됐다. 노동부와 공무원노조는 논란이 된 해고자 조합원 신분 관련 규약인 7조 2항 단서조항을 그대로 두는 대신 “관련 법령에 따라”를 삽입하기로 했다. 또 조합원 신분보장조항도 그대로 두고 “규약 7조2항에 따라”라는 문구를 넣었다.
공무원노조는 이 같은 실무협의 내용이 확정된 후 지난 11일 오전에 공공노사정책관을 만났다. 노조는 “이 자리에서 실무협의 내용을 최종 확인한 결과 고용노동부 차원에서 이견이 없음을 확인했다”며 “실무협의 내용과 같이 보완 제출하면 설립신고가 완료될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판단에 따라 공무원노조는 20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일부 대의원들의 반발 속에서도 규약을 개정했다. 이어 22일엔 고용노동부에 설립신고 보완서류를 제출했다.
노조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23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이 공무원노조 설립신고사항을 보고하자, 안전행정부가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이 자리에서 방하남 장관은 일단 설립신고를 수리한 후에 사후관리하는 방향으로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끝내 노동부는 실무협의 내용을 모두 틀고 “규약 7조 2항의 단서조항이 중앙집행위원회가 노조 가입이 허용되지 않는 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판단된다”며 네 번째 설립신고를 반려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 등의 정부 고위층의 개입설이 나온다. 실제 노동부도 25일 설립신고증 교부를 기정사실화하고 기자 브리핑까지 예고했지만, 이날 오전에 브리핑을 갑자기 취소했다.
공무원노조는 2일 반려통보가 오자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경색된 노사관계의 단초였던 설립신고 문제 해결을 위해 고용노동부장관 면담을 포함해 8차례에 걸쳐 협상을 진행했다”며 “이 과정을 통해 실질적인 합의를 도출했으며, 공무원노조 지도부는 책임을 갖고 대의원대회 규약 개정 등을 이행했다”고 강조했다.
김중남 공무원노조 위원장은 “이번 사태는 공무원을 대상으로 대통령이 사기행각을 벌인 것”이라고 비난했다.
노동계는 이번 설립신고 반려를 두고 “과장 전결 사항인 설립신고가 대통령 전결사항이 됐다”고 비꼴 정도로 이번 사안에 정치적 의도가 담겼다고 보고 있다.
민주노총은 설립신고가 반려되자 성명을 내고 “박근혜 정권은 이번 사태로 노정관계가 극단적인 상황으로 악화될 것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며 “설립신고 반려를 노동조합과 노동기본권에 대한 전면적인 탄압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인다”고 규정했다.
민주당 환노위 소속 의원들도 정부의 이번 설립신고 반려를 MB정부에 이은 반 노동정책의 신호탄으로 읽었다.
한편 노조 내부에선 노동부 실무협의를 믿고 규약개정을 추진한 노조 지도부 책임론이 나오고 있어 설립신고 관련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노조는 6일 중앙집행위를 열고 이후 대응 계획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