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대학살, 북아프리카 혁명에 대한 진압

이집트 유혈진압 173명 사망, 무슬림형제단 1,004명 체포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이집트 임시정부의 대학살 후 이집트 현 정국에 대한 각 정치세력 간 입장이 분명해지고 있다. 이집트 당국은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살인 진압은 결국 이집트 내외 혁명 운동을 제압하고 미국 중심의 역내 패권을 복권시키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알자지라> 등에 따르면, 16일 ‘분노의 날’ 시위에 대해서도 이집트 당국은 유혈 진압을 지속, 카이로에서만 91명, 전국에서 173명의 사망자를 낳았다. 이집트 당국은 진압과 함께 폭력 시위를 이유로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일제 검거를 실시, 카이로에서만 558명, 전국에서 1,004명을 체포했다. 17일 <알아라비아>에 따르면, 이집트 당국은 무슬림형제단의 법적 해산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출처: http://english.alarabiya.net/ 화면캡처]

당국의 이 같은 유혈 조치는 무슬림형제단을 불법화하고 무바라크 시절로 정국을 복귀시키겠다는 의지를 나타낸다.

이집트 당국은 이에 대해 무슬림형제단을 ‘테러리스트’로 규정, 이들의 ‘악의적인 테러 책략’에 대처한다는 이유로 유혈 진압을 옹호하고 있다. 특히 당국은 무슬림형제단의 공공기관, 경찰서를 비롯, 콥트교 등 민간 시설에 대한 방화와 공격을 방치, 부각시키며 유혈 진압에 대한 비판을 무마시키고 있다.

이러한 당국의 태도에 무슬림형제단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계속적인 저항 입장을 정하고 16일 ‘분노의 날’ 시위에 이어 다음 주를 ‘저항의 주’라고 선언, 계속적인 항의운동을 벌인다는 계획이다. 무슬림형제단 700여 명은 또 카이로의 한 이슬람 사원에서 모여 또 다른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혁명을 수호한다고 표방했던 자유주의 세력 주도의 ‘구국전선’은, 이곳 출신 엘바라데이 부통령이 사퇴했지만, 국민에게 무슬림형제단의 테러에 맞서자며 현 상황에 대한 책임을 무슬림형제단에 돌리고 정부 편에 서 있다.

미국도 이집트 당국의 이 같은 입장을 지지하는 모양새다. 오바마는 이미 이집트 당국의 유혈 진압에 대해 거리를 두었지만 이집트에 대한 지원 의사는 고수했다. 미국 정부는 애초 6월 30일 대중 운동에 대해서는 “민주주의는 선거를 넘어 선다”며 명확하게 군부가 옹호한, 거리의 편을 들은 한편, 7월 3일 군부의 무르시 대통령 해임에 대해서는 ‘쿠데타’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며 사실상 군부 쿠데타를 용인했다.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학살로 인해 이제 군부는 자칭 “국민의 편”이라고 했던 입장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저버리고 자신의 폭력적, 패권적 성격을 분명히 했다.

애초 군부와 무슬림형제단 간의 다툼은 2011년 1월 25일 혁명과는 관계 없는 각 세력 간 이해 관계에 따른 충돌이다. 군부는 1월 25일 혁명 후 무바라크를 버린 한편, 약 1년간 군정을 실시, 주도권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 했지만, 잇따른 살인 진압에도 불구하고 거리의 요구가 잦아들지 않자 선거를 실시했고, 이후 선거에서 군부가 내세운 후보가 무슬림형제단에 패배하자 무슬림형제단에 야합하며 권력을 유지했다.

<링스(Links)>에 지난해 8월 12일, 영국 아프리카 연구자 아담 하니에가 2012년 이집트 대선 후 지적했듯, 이집트 군부와 무슬림형제단의 야합은 무르시 대통령이 임명한 내각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국방부는 최고군사위원회의 탄타위, 총리는 1999년에서 2005년까지 수자원부 장관을, 이후 신자유주의적인 아프리카개발은행장을 지낸 히샴 칸딜이 맡았다. 내무장관은 당시 해산된 무바라크의 민족민주당 지도부의 친척으로 과도 정국 시 시위대 탄압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아흐메다 가말 에딘이, 재무장관은 군정 내각 출신인 뭄타즈 알사이드에 유임됐다. 투자장관에는 무바라크 시대 투자자유지역을 관할했던 오사마 살레흐를 임명했다.

군부는 그러나 무바라크 구세력이 주도하는 헌재는 선거로 선출된 이집트 하원을 2012년 6월 친군부 최고헌법재판소 위헌 판결을 기초로 해산 명령을 내리는 등 지속적으로 정국에 대한 주도권을 강제해 왔다.

무슬림형제단의 자유정의당(FJP)의 압델 알다르데리의 <자달리야> 15일 인터뷰에 따르면, 무슬림형제단은 친무바라크 언론사, 법관, 경찰, 부패한 군부와 관료층이 1월 25일 혁명을 가로 막아 왔다고 비판한다. 그는 특히 최근 6월 30일 대중 시위 전 연료 부족 현상은 무슬림형제단 주도 정국을 불안정하게 하기 위한 무바라크 전 세력의 사보타지라고 보고 있다.

이러한 군부의 제동에 대해 무슬림형제단은 스스로는 혁명을 이행한다고 밝히면서도, 혁명 세력과 연합해 변혁하기 보다는 이슬람주의 독재로 정국을 안정시키고자 했다. 노동자 파업과 시위 운동에 대해서는 가차 없는 탄압에 나서는 한편, 2012년 말 무르시 대통령의 긴급조치, 이슬람주의 중심의 제헌 등이 이를 말한다.

이 같은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이집트 민중의 반대 운동이 계속 확산되자 군부는 이를 이용, 정권을 찬탈하고 서둘러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진압에 나선다.

이집트 당국의 무슬림형제단 학살...북아프리카 혁명에 대한 진압

그러나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군부의 학살은 무슬림형제단에 대해서만이 아니다. 이는 근본적으로 2011년 ‘아랍의 봄’ 후 터져 나온 민중의 목소리를 제압하고 기존 질서로 이집트 사회를 복권시키려는 이집트 군부와 미국의 야욕을 반영한다. 군부가 무슬림형제단과의 대화 여지를 저버리고 서둘러 진압에 나선 이유도 거리에 끌려 다니기 보다는 이의 주도권을 제압하고 정국을 주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군부의 살인진압은 이집트 국내 정치에서 뿐 아니라 북아프리카 혁명에 대한 진압이기도 하며 북아프리카 혁명을 통해 불안정해진 중동 질서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미국 의지의 뚜렷한 표현이다.

이미 2011년 바레인 대중시위에 대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유혈 진압, 리비아 내전 개입, 시리아 내전 지원으로 인해 북아프리카의 혁명 기운은 짓밟혀 왔을 뿐 아니라 시리아의 경우는 인간적, 국가적 위기 상황으로까지 빠져 들었다.

특히 중동지역에서의 고조된 불안정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은 이집트 혁명 운동의 주도권을 빼앗으려는 이집트 군부의 편을 든 것으로 보인다.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난민의 엑소더스, 시나이 반도로의 무장세력 결집 등으로 인해 북아프리카는 어느 때보다도 불안정진 상황이다. 이 때문에 북아프리카 상황을 이스라엘 외 제2 역내 친미 세력인 이집트 군부를 중심으로 지역 안정을 추구하려는 패권주의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튀니지에서처럼 계속적인 세계 경제위기 아래 북아프리카 민중의 혁명 운동이 다시 일어나고 있지만 이집트의 사례로 이제 혁명 운동의 여지는 극히 줄어든 상황이다. 리비아에 대한 서구의 군사 개입, 파국으로 치달은 시리아 내전, 이집트 군부의 학살로 혁명 운동 사례는 모두 질곡 속으로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군부도 무슬림형제단도 아닌, “빵과 자유, 사회적 정의”를 요구하는 이들의 목소리와 전략이 더욱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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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그곳에서 피흘려 싸우고 있는 무슬림형제단과 그 지지자들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주목해야 한다?

    누구들 말씀인지?

    당신들은 누구이길래?

  • 보스코프스키

    문서의 논조가 지나치게 부정적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물론 자기만족주의적인 문서 당연히 독입니다만 이 문서 역시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는군요.
    거기다가 흠 님이 지적하신대로 다른 누군가가 누구인지도 밝혀야 합니다. 아울러 리비아와 시리아는 진즉에 서구의 간섭이 있던 곳이었는데 웬지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구체적인 부분이 나오지를 않아서 더욱요...

  • 김대중이 김종필과 야합해서 정권잡아 IMF 앞잡이가 되서 노동자들 때려잡으니, 경상도 군부가 쿠데타로 김대중 내쫓고 저항하는 전라도민 학살해도 좌파는 '빵과 자유, 사회적 정의'운운하며 거리 두면 되는 겁니까? 지역 감정에 찌든 사람들 이해 다툼이고, '혁명과는 관계없'으니까?

    하긴, 소련도 중국도 북한도 김대중도 김일성도 민족해방주의자도 당신들 '참좌파' 앞에선 진정한 진보를 오염시킨 죄 사회주의 변질시킨 죄 엎드려 빌어야 할 판에, 이슬람주의 이집트 따위야?

  • 보스코프스키

    한국사에서 진즉에 쯧님이 지적하신 '장면' 하나 있었지요... 바로 구 '장면'정권이 이러했죠... - 1961년의 '장면'
    아마 그때 이 논조대로라면 참좌파가 아닌 '장면'정권 같은 것 정도야 진즉 없어진 것이 당연하다고 했겠죠... 왜 '장면'정권이야 반 민중적 정권이니 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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