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부터 밀양송전탑 공사가 사실상 4일째 진행되면서 7-80대 노인들의 부상과 실신이 속출하고 있다.
송전탑 경과지가 고지대인데다 주민들 중 그나마 젊은 층이 50대 후반이라, 평소 무릎관절, 허리, 혈압, 뇌심혈관계 질환을 안고 살던 주민들이 체력적 한계를 맞고 있는 것. 주민들이 아픈 노구를 이끌고 노숙까지 불사하며 결사 항전하는 이유는 송전탑을 못 막으면 자신의 삶 자체가 무너진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4일 오후 부북면 126번 송전탑 인근 400미터 산속에선 3일째 비닐 천막 아래서 노숙 농성중인 여수마을 주민들의 부상과 실신이 이어졌다. 여수마을 주민 30여 명은 3일 밤낮을 비닐과 홑이불 등으로 노숙하며 경찰과 한전 직원들이 교대를 할 때마다 공사 중단을 요구하고 직원진입을 막으며 몸싸움을 벌였다. 농성 주민 대부분은 70대 이상 노인들로 대부분 지팡이를 짚고 있다.
여수마을 주민들은 이날 오후 1시께 “공사 현장을 한 번이라도 보게 해 달라”며 공사장 진입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한 여경이 최칠수(78세) 할머니의 팔을 당기면서 버티다 뒤로 실신해 119에 후송됐다. 이어 이기저(81세) 할머니가 농성장 앞을 지나다 넘어져 팔 부상으로 후송됐다. 오후 4시께엔 한 주민이 위장장애로 후송됐다. 이날 오전엔 다른 주민이 당뇨 증세가 악화돼 후송되는 일도 벌어졌다.
▲ 한 여경이 최칠수(78세) 할머니의 팔을 당기면서 버티다 뒤로 실신해 119에 후송됐다. |
▲ 자형의 산소 주변에 송전탑 공사가 들어갔다며 대성 통곡하는 여수마을 주민 |
“순사들이 막아서 작대기 짚고 산길을 돌아 왔다”
126번 철탑 농성장에서 잦은 실신과 부상이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경찰이 해발 300여미터 고지대로 향하는 임도의 차량진입을 막아 모두 지팡이를 짚고 등산으로 걸어와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경찰은 임도마저 통행을 막아 7-80세 주민들이 경찰의 눈길을 피해 없는 산길을 찾아 다니게 했다. 길이 잘 닦여진 임도도 기자들이 20분 넘게 숨을 몰아쉬며 사실상 등산을 하는 길이라, 임도를 피해 가시덤불을 헤치며 올라간 주민들은 내려갈 마음을 먹지 않는다.
지난 2일 새벽 두 시 반, 여수마을 김수자(56세) 주민은 경찰을 피해 농성 현장에 가기 위해 다른 두 명의 아주머니들과 산길로 향했다. 김 씨는 임도에서 경찰이 막고 있는 곳부터 산길에 길을 들어섰다 결국 길을 잃었다. 김 씨는 오후 한 시가 돼서야 농성 현장에 도착했다.
김 씨는 “산을 얼마나 헤맸는지 다리가 아파 어딘지도 모르는 길에 퍼져 앉아 있었다”며 “내가 도착하지 않자 사람들이 신고해 경찰이 전화로 위치를 물어봤지만 어딘지 알려줄 수가 없었다. 간신히 산길을 아는 사람을 만나 오후에 도착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날 비슷한 시간에 농성장으로 출발한 또 다른 팀도 마찬가지였다. 김영자(57) 주민은 “새벽 6시에 도착했는데 얼마나 헤맸는지 골이 나서 경찰에게 항의 하다가 몸싸움이 붙었다. 그러자 경찰이 모닥불과 라면을 끓이던 버너에 소화기를 뿌려 싸우다 실신해 실려갔다”며 “경찰이 산속으로 올라오는 길도 막아 피하느라 길도 없는 산속으로 올라오다 생고생을 했다”고 전했다.
이들과 함께 올라왔던 김 모(60) 할머니는 “어두운데다 다리도 다 긁히고 무서웠다. 그래서 산속에서 날 밝기를 기다렸다”고 했다. 김 할머니의 두 다리는 온통 상처 투성이었다.
김옥숙 할머니(80)는 새벽에 출발하지는 않았지만 역시 임도가 아닌 산길을 돌아 올라왔다. 김 할머니는 “순사들이 지켜서 돌아서 왔다. 내가 진작 죽었으면 이 짓을 안 했을 것”이라며 “오래 사는 것도 죄다. 작대기 두 개 짚고, 기어서 그리 왔다”고 울분을 터트렸다.
최판남 할머니(88세)는 “관절도 안 좋고 허리도 아파 꼼짝도 못하는데 철탑 생각 때문에 왔다”며 “좋은 길은 경찰이 자꾸 막아 가시구멍을 기어 올라왔다. 이제 다시는 안내려 간다”고 말했다.
126번 송전탑은 3일 오후 헬기로 대형포크레인 부품을 운반해와 현재 굴삭기 두 대로 부지 정지 작업 단계에 있다.
“주민들 농성장에 들어오게 해야 병원 간다”
이날 오전엔 89번 송전탑 공사현장 인근인 상동면 평리 입구에서도 나이든 주민들의 실신 사태가 이어졌다.
평소 혈압 약을 복용해 온 80세 강순자 할머니는 밤샘 농성 후 혈압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했다. 강순자 할머니는 함께 농성을 진행하던 일부 주민들이 잠시 소 먹이를 주러 갔다 경찰에 막혀 농성장에 들어오지 못하자 경찰에 항의하다 심장과 머리에 고통을 호소했다. 강 할머니는 119대원들의 병원 후송 진단에 “주민들이 들어와야 병원에 가겠다. 죽어도 여기서 죽겠다"며 버텼다. 결국 강 할머니는 경찰 측이 주민 4명의 농성장 진입을 허용해 구급차에 올랐다.
앞서 평리에선 김옥희(60세), 최말녀(78세) 할머니가 여경과 한전 직원들이 교대를 위해 들어가자 막던 도중 목에 묶었던 쇠사슬이 조여 실신해 후송되기도 했다. 김말수(89) 할머니도 안경이 부서지고 탈진해 후송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