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식 전 날, 한국공항공사노조가 농성을 철수하면서 용산참사 유족과 진상규명위원회 활동가들은 밤새 길바닥 농성을 이어갔다. 취임식 직전에는 김석기 전 청장의 공항공사 사장 취임을 인정할 수 없다며 공사 진입을 시도하기도 했다. 유족들은 “(용산 진압으로 사망한)열사들의 원혼이 아직도 구천을 떠돌고 있다”며 굳게 잠긴 문을 두드렸으나 끝내 취임식장으로 가는 문은 열리지 않았다.
김석기의 사죄? “농성 9일째, 유족들 앞에는 한 번도 안 나타나”
김석기 전 청장은 15일 열린 국토교통부 국정감사에서 용산 참사 과잉진압과 관련해 입을 열었다. 그는 “그 당시 제가 맡은 일을 불가피하게 수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며 “희생자가 발생해서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유명을 달리한 분들에게 충심으로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김 전 청장이 용산 참사 유족에게 사죄를 한 것이라 보도하기도 했지만, 이 발언은 용산참사 유족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그동안 용산 진압의 정당성을 설파해 오던 김 전 청장이, 공사 사장 취임을 위해 국회의원과 언론 앞에서 거짓 사죄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특히 용산참사 유족과 진상규명위원회 등은 9일째 공항공사 앞에서 농성을 이어오고 있지만 김 전 청장은 단 한 번도 유족들을 찾지 않았다. 이원호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은 “9일째 김 전 청장의 얼굴을 보고 사죄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지만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서 “그는 국정감사에서 유족들이 취임 반대농성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고 했는데, 그럼 지금까지 출근하지 않은 이유는 뭐냐”며 “그동안 김 전 청장은 유족들을 피해 국제선 청사의 임시 사무실에서 업무를 하고 있었음에도 유족들이 농성하고 있는 줄 몰랐다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취임식을 앞두고 유족과 진상규명위원회는 봉쇄된 출입문 앞에서 김석기 공항공사 사장 취임을 인정할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의원과 언론 앞에서가 아닌, 피해 당사자들에게 직접 사죄해야 한다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전재숙 씨 등 4명의 유가족은 본사로 진입했지만, 로비에서 공사 직원과 청원 경찰들에게 둘러싸였다. 문 밖에서 출입을 봉쇄당한 유족 및 진상규명위원회 등도 발이 묶이긴 마찬가지였다.
결국 김석기 전 청장을 대면하지 못한 유족과 진상규명위는 취임식이 끝난 오전 10시, 공항공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석기 공항공사 사장 퇴진 투쟁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 밝혔다. 조희주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대표는 “김석기의 공항공사 사장 취임을 인정할 수 없다”며 “퇴진 시까지 어디든 따라다니며 김석기 퇴진 투쟁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용산참사 유가족 유영숙 씨는 “분노로 가슴이 터질 것 같다”며 “내 남편이 테러범이 아닌 평범한 가장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질 때까지, 지옥까지 쫓아다니며 투쟁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족 이충연 씨 역시 “김석기의 진정성 없는 사죄에 유족들은 피눈물을 흘렸다. 비 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이며 비전문가인 김석기는 당장 자진 사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석기, 16일 오전 도둑 취임 강행... “용산참사는 불가피한 일”
공항공사노조는 농성 해제 및 천막 철수, 유족들만 길바닥에 남아
용산참사 유족들의 강한 반발에도 김석기 전 청장은 이날 오전 9시, 공항공사 사장 취임식을 강행했다. 김 전 청장은 당일 새벽 유족들의 눈을 피해 공사로 들어가 예정된 취임식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청장은 이날 취임식에서도 “용산참사는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안타깝고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운명을 달리하신 분들과 유가족 분들에는 마음으로부터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전문성 결여 논란에 대해서는 “경찰 재직 당시 공항의 보안과 안전 등을 책임지는 일을 수행하기도 했다”며 “빠른 시간 안에 업무를 파악하고, 공항공사 내의 전문가들이 소신껏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 취임식은 강행했지만, 이후 용산참사 유족들과 진상규명위원회 등은 항의 시위와 출근 저지 등 김석기 사장 퇴진 투쟁을 이어간다는 방침이어서 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박래군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용산 참사 5주기가 되기 전인 3개월 안에 공항공사 사장 자리에서 끌어내릴 것”이라며 “내일 국정감사 항의시위와 다음 주 출근저지 투쟁을 이어나가며 지속해서 문제를 제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용산참사 유족과 함께 공사 앞 천막농성을 진행했던 공공운수노조연맹 한국공항공사노조는 지난 15일 밤 자정 무렵 천막을 자진 철거하고 농성을 해제했다. 이에 따라 본사 앞에는 유족과 진상규명위만 남아 밤새 길바닥 노숙 농성을 이어갔다. 노조는 공사와의 협상에서 합의점을 찾고 농성을 자진 해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한국공항공사노조는 언론과의 접촉을 차단한 상태다.
공공운수노조·연맹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유족과 연대단위에 사과의 뜻을 전했다. 이들은 “우리 연맹 산하의 한국공항공사노조는 지난주부터 천막농성투쟁과 출근투쟁 집회 등을 통해 낙하산 사장 저지 투쟁을 계속해 왔으나, 기업별노조로서 낙하산 사장 저지 투쟁을 장기간 진행하는데 조직적인 어려움에 봉착했다”고 밝혔다.
이어서 “이 때문에 공항공사노조는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투쟁을 존중하는 가운데, 위원회에 양해를 요청드리고 오늘 새벽에 농성 투쟁을 중단하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며 “이에 대해서는 공공운수노조·연맹이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와 연대해준 여러 단위에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