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코레일은 마냥 웃고만 있지는 못하다. 민영화를 추진하는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시선도 어느때보다 차갑고, 민영화 저지에서 시작된 철도노조의 파업은 노동계 전체의 정권퇴진 투쟁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엄청난 조직력을 보여주며, 최장기 파업을 사수한 철도 노조의 이번 파업이 노조에게 남긴 성과와 과제는 무엇일까.
민영화 반대 국민여론, 철도파업 지지
철도노동자들의 최장기 파업은 ‘민영화 반대’라는 국민여론을 얻었다. 수서발 KTX 주식회사가 지난 28일 면허를 받았지만 철도노조의 파업으로 ‘민영화는 안 된다’는 여론과 공감대는 전국에서 들끓었다. 파업기간 동안 전국 역사에서 민영화반대 철도노조 파업을 지지하는 1인 시위와 촛불문화제가 진행됐으며, 각 대학에서는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이 불었다.
철도노조는 이번 파업의 성과에 대해 “철도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공공재를 민영화해서는 안 된다는 전 국민적 합의가 이뤄졌다”며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수립과 집행이라는 후진적인 관행을 타파하고 공공정책 수립에 있어 ‘사회적 대화와 합의’를 우선시하는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철도노조의 평가에 대해 노동계는 전반적으로 수긍하는 분위기다. 노동계에서는 철도노조의 파업이 무엇보다 민영화 반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했고, 강경일변도인 정부의 노동정책에 브레이크를 걸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실제 매번 50%의 지지율을 넘던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22일 철도노조 지부도를 체포한다며 자행된 경찰의 민주노총 침탈 이후 뚝 떨어졌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23일부터 27일까지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취임 44주차 국정수행 지지율은 2주 연속 하락한 48.5%를 기록했다. 부정적 평가는 44.5%로 나타났다. 최근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지지 정당이 없다고 답한 무당파의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는 잘하고 있다가 33%, 잘못하고 있다고 49%로 나타났다.
정부의 무리수, 노동계 정권퇴진 투쟁 선언
철도노조는 파업에 돌입하기 전부터 합법적인 투쟁을 위해 노력했다. 법에 따른 쟁의행위 절차를 거쳤고 필수공익업무 인원들을 파업에서 배제했다. 하지만 정부와 코레일은 파업이 시작되자마자 ‘정부 정책을 반대하는 파업은 정치파업으로 불법’ 이라고 규정하며 징계와 고소고발을 남발했다.
급기야는 지난 22일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하겠다며 민주노총을 침탈했고, 28일 밤에는 기관사 조합원들이 모여 있는 한 춘천의 한 펜션에 경찰과 코레일 관계자들이 찾아가 연행하겠다며 복귀를 종용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한술 더 떠 국토교통부는 지난 28일 철도 같은 필수공익사업장에서 파업이 일어나 장기화하면 파업 단순 참가자도 직권면직하는 입법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철도노조에 대한 탄압과 도를 넘은 공권력 행사라는 정부의 무리수는 노동계를 박근혜 정권 퇴진 투쟁으로 나서게 했다. 28일 민주노총의 총파업에는 10만여 명의 노동자 시민이 시청광장에 모였다. 민주노총은 철도노조의 현장복귀 여부와 상관없이 1월 말까지 이어지는 총파업 투쟁은 이어가겠다는 뜻을 30일 밝혔다.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는 ‘박근혜 퇴진, 민영화 저지, 노동탄압분쇄 총파업’ 투쟁 기조를 중심으로 1월 9일과 16일 2, 3차 총파업에 돌입한 뒤 2월 25일 국민총파업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출처: 철도노조] |
정치권이 파업철회 선언, 징계와 손배문제 남아
이번 철도노조의 파업철회는 여야 정치권이 철도소위를 구성하기로 합의하면서 이뤄졌다. 30일 오전 민주당은 철도소위를 구성해서, 철도노조가 파업을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노조의 파업철회를 야당이 선언한 것이다. 이로 인해 철도조합원들은 물론, 노동계는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철도노조와의 합의가 있었다 해도, 아직 코레일 측과 실무협상이 남아있던 상황에서 정치권의 이 같은 행보는, 철도노조를 징계와 거액의 손해배상에 그대로 노출시켜버렸다.
서승환 국토부 장관은 30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징계 문제는 별개로 생각해야 한다.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코레일도 보도자료를 내고 “합의과정에 사전 의견조율이나 별도의 합의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코레일은 노조 간부 490명을 해고 등 중징계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노조를 상대로 1차분으로만 77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116억원 상당의 철도노조 예금과 채권, 부동산 등에 대한 가압류도 신청했다.
철도노조 관계자는 “이전 파업에서도 현장복귀 뒤 징계와 해고로 노조가 탄압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징계와 손배 문제를 해결하지도 않은 채 합의한 것에 대한 조합원들의 우려가 있다.”면서 “앞으로의 현장투쟁이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에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들과의 연대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국회 소위원회 구성만으로 파업이 정리된 것이 ‘민영화 반대’라는 철도노조의 요구에 비해 상당히 미흡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합의안은 28일 노조가 제시한 ‘면허발급 중단’이라는 양보안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야는 30일 국토위 전체회의에서 여야 의원 4명씩 참여하는 8명의 철도소위를 구성키로 만장일치로 의결했지만, 논의의 틀만 합의했을 뿐 의제에 대해서는 커다란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소위에서는 철도운영체계 개편 방안을 포함한 철도산업 발전방향, 민영화 방지책 등을 놓고 치열한 논쟁이 예상된다. 철도노조는 소위의 성격을 ‘민영화 반대 소위’로 규정하고 있다. 야당은 철도산업 민영화 방지 조항 법제화를 지속적으로 요구할 계획이지만, 정부·여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위반이라며 ‘민영화 금지 법안 논의는 안 한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파업철회 결정, 민주노조의 운영원리 지켜졌나
철도노조는 통상 잠정합의안에 따라 현장복귀 뒤 조합원 총회를 진행해왔으며, 안이 부결될 시 집행부가 사퇴했다. 그러나 파업중단 여부를 조합원들과 함께 결정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여야와 노조가 3자 합의를 한 것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철도노조 홈페이지에 한 조합원은 “새누리당이 위원장을 맡을 철도소위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라며 “지도부 마음대로 파업철회를 결정할 수 없다. 투쟁을 이어가야 한다.”라는 항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노동사회 단체에서도 성명을 통해 “중차대한 파업 중단의 결정을 조합원의 찬반을 묻지 않고 위원장이 결정한 것은 민주노조 운영에 위배되는 것”이라거나 “파업중단 여부를 조합원들과 함께 결정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3자 합의를 한 것은 큰 문제이며, 특히 여야가 철도파업 중단을 발표하도록 방치한 것은 22일간의 파업투쟁의 정신을 훼손한 것”이라는 비판적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향후 진행될 조합원 총회에서 이번 파업철회 결정에 대해 파업참가 노동자들이 어떤 평가를 내릴지도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철도노조의 파업은 끝났지만, 정부와 노조 모두에게 해결해야할 과제들을 남겼다. 노조는 핵심요구인 민영화 저지를 현재까지는 막아내지 못했지만, '철도는 민영화하면 안 된다'는 국민적 공감대는 확실하게 쟁취했다. 정부는 고집스레 KTX 자회사설립을 추진하고 노조파업을 철회시켰지만, 대통령 임기 1년만에 최대 위기의 시간을 맞게 됐다. 사실상 민영화 2라운드는 노조의 현장복귀와 여야합의로 만들어진 철도소위가 시작되는 이제부터다. 정부의 일방통행에 파업철회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던 철도노조와 철도노조의 파업을 응원했던 민심의 향후 투쟁이 주목되는 이유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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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자 기자는 뉴스셀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뉴스셀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