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보험 50주년, 하청노동자 산재은폐로 곳간에 5조원

근로복지공단, 노동자와 ‘법적싸움’ 불사...84%의 승소율

올해로 산재보험제도 도입 50주년을 맞았지만, 갖가지 제도적 문제가 드러나며 그 의미가 퇴색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산재보험 배제와 근로복지공단의 산재보험 지급 강화 등은 산재보험 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으며, 노동자들은 산업재해 인정을 위해 근로복지공단과 법적 싸움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반면 근로복지공단은 낮은 산재보험료 지급으로 연일 ‘흑자행진’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5년간 보험료로 지급하지 않은 채 쌓아둔 돈만 약 5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산재보험 50주년, 하청노동자 산재은폐로 곳간에 5조 원

금속노조 노동연구위원은 지난 20일, 산재보험 도입 50주년을 맞아 ‘산재보험 50년, 어디까지 왔나? : 산재보험의 흑자행진과 불안정 노동자의 구조적 배제’ 이슈페이퍼를 발표했다.

노동연구원에 따르면, 근로복지공단이 2008년부터 지난 5년간 산재보험료로 징수한 총 금액은 약 23조 9850억 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노동자들에게 산재 보상 차원에서 지급한 각종 급여 총액은 17조 8854억 원 가량이다. 지난 5년간 약 5조 원에 달하는 금액이 보험료로 지급되지 않고 쌓여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작업장 산업안전보건제도가 개선되고, 산업 재해율이 획기적으로 낮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증가하고 있는 하청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은폐와 배제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본래의 산재보험 제도의 의미가 왜곡되고 있는 추세다.

박종식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동일한 사업장 내에서 사내하청, 용역, 파견 노동자들이 확산되면서 이와 같은 유형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작업장 내에서 위험한 일들을 전담하고 있다”며 “그 결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재해위험이 점차 높아지면서 산재은폐와 공상처리의 관행은 이들의 고용형태 상의 불안정성과 중첩되어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으로 조선산업에는 정규직 대비 81~433%에 달하는 수많은 사내하청노동자들이 고용돼 있다. 작업 특성상 산업재해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업종이지만, 산재은폐와 공상처리가 만연해 산재보험 제도의 ‘사각지대’로 손꼽히고 있다.

노동연구원은 “조선산업 사내하청업체에서 산재처리를 하게 되면 사내하청 노동자는 ‘산재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되어 다른 사내하청업체에 재취업이 어렵게 되는 일종의 ‘낙인효과’ 때문에 공상처리가 만연하다고 한다”며 “아울러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사내하청업체와의 마찰을 회피하고 재취업시의 불이익을 염려하여 산재처리보다는 공상처리를 선택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대형 조선소 사내하청업체들의 경우, 1년 중 소속 노동자들의 산재사고가 2/3건 발생하면 원청업체와 물량 재계약을 할 수 없어 소속 노동자들에게 공상처리를 강요하는 관행도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일정 기간마다 작업장을 옮겨 다녀야 하는 사내하청노동자들은 근골격계 질환으로 산재인정을 받기 어려운 여건에 놓여있다. 노동연구원은 “근골격계 질환과 같이 장기간 동일한 작업으로 인해 유발되는 산업재해는 ‘동일사업장 내에서’ 3년 이상 근무해야만 ‘잘병 유소견자’로서 판정받을 수 있는 전제조건이 있다”며 “근속년수가 짧고, 작업장 이동이 빈번한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근골격계 질환과 같은 질병으로 산업재해 판정을 받기가 매우 힘들다”고 비판했다.

근로복지공단, 노동자와 ‘법적싸움’ 불사...84%의 승소율

산재보험은 1964년 처음 도입됐지만, 모든 노동자들이 산재보험 적용을 받게 된 것은 도입 36년 만인 지난 2000년이다. 1964년에는 500인 이상의 사업장과 일부 업종에만 산재보험이 적용됐지만, 점차 적용규모가 낮아지고 업종이 확대되면서 2000년에는 1인 이상 전 사업장으로 확대됐다.

하지만 산재보험 제도가 보편적 사회보험으로 제도 정비가 이뤄진 것과는 달리, 실제로는 여전히 많은 노동자가 산재보험 혜택에서 제외돼 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2012년 기준 사업체의 산재보험 적용비율은 50.7%이며, 노동자들의 산재보험 적용비율은 83.7%가량이다. 노동연구원은 “종사자보다 사업체수 적용률이 더 낮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소규모 영세사업장의 경우 대부분 산재보험제도에 가입돼 있지 않으며, 영세사업장 노동자들 역시 산재보험의 사각지대에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산재보험의 업종별 적용노동자수 현황에서 허수도 발견된다. 2012년 산재보험 적용을 받는 건설업 노동자수는 약 278만 여 명으로 집계됐지만, 같은 해 전국사업체조사에서 건설업 총 종사자수는 약 105만 명에 그쳤다. 노동연구원은 “건설업에서 과다 추정된 산재보험 적용 노동자수를 고려했을 때 실제 한국에서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수는 1천 4백만 명 이하로, 산재보험 적용률이 더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까다로운 산재보험 적용 요건이나, 근로복지공단의 산재보험 지급 강화 등으로 노동자와 공단 간의 법정 싸움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2012년 산재보험관련 심사청구접수 건수는 8,529건이지만, 이 중 1,132건(13.37%)이 취소됐다. 산재인정을 받기 위해 노동자들은 법적 소송에 나서지만, 2012년 근로복지공단의 승소율은 84%로 월등하다.

산재발생 시 노동자들에게 입증 책임을 떠넘기고, 요양승인과정에서 근로복지공단이 행정소송에 나서며,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엄격한 판정을 내리는 것도 노동자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노동연구원은 “이러한 산재보험제도에 대한 불만들이 배제된 체로 산재보험 50주년을 마냥 축하할 수가 없다. 특히 지난 5년 동안 5조 원 이상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 역시 전혀 달갑지 않은 소식”이라고 비판했다.

이어서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보험제도여야 할 산재보험이 비용과 효율성만을 지나치게 따지고, 나아가 산재보험 자체를 민간부문으로 넘기기 위해 이처럼 산재보험 심사기준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들 정도”라고 지적했다.
태그

산재보험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윤지연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