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도 설날에 버스 타고 고향 가고 싶다

고속버스 점거, 국토부와 고속버스운송조합에 제도개선 촉구

  설 명절을 앞두고 장애인들이 “장애인도 버스 타고 고향에 가고 싶다”라며 고속버스와 시외버스에 대해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출처: 비마이너]

인천민들레장애인야학 박길연 교장(51세)의 고향은 경남 남해다. 1990년도에 중도장애를 입은 박 교장은 장애인이 된 뒤 고향 가는 길이 어려워졌다. 휠체어 탄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KTX에는 장애인이 탈 수 있는 별도의 칸이 있지만, 박 교장의 고향까지 가지 않는다.

박 교장은 최근 7년간 거의 고향에 가지 못했다. 이동수단이 없어 명절 때도, 아버지 제사 때도 가지 못했다. 가려면 리프트가 장착된 차량을 빌려야 하지만, 이마저도 빌리기가 쉽지 않다. 한번은 이삿짐 트럭을 타고 간 적도 있다.

박 교장은 “비장애인일 때는 고향에 가고 싶을 때 얼마든지 갈 수 있었지만, 이젠 가고 싶어도 못 가니 서러움이 더 한다”라며 “그때마다 내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더 많이 느낀다”라고 울분을 토했다.

설 명절을 앞두고 장애인들이 “장애인도 버스 타고 고향에 가고 싶다”라며 고속버스와 시외버스에 대해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27일 낮 12시 30분 서울 고속버스터미널 경부선이 있는 곳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휠체어 탄 장애인들이 고속버스, 시외버스, 광역버스 등 계단이 있는 버스를 이용할 수 없는 현실을 지적하고 이의 해결을 촉구했다.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들은 장애유형에 따라 휠체어를 자신의 몸에 맞게 개조해 사용하기도 하며, 특히 휠체어에서 내려 의자에 앉는 것이 불가능한 사람도 있다. 즉, 휠체어를 탄 상태 그대로 버스에 탑승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시내버스에만 저상버스가 도입되어 있다. 저상버스란 계단이 없는 버스로 휠체어 이용 장애인은 리프트를 이용해 버스에 탑승할 수 있다.

2005년 제정된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은 “교통약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교통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휠체어 탄 장애인은 여전히 대중교통 이용에 제약을 받고 있다.

“기차에 장애인 편의시설이 없던 과거에는 버스를 타곤 했다. 그러나 탈 때마다 인간이길, 여성이길 포기해야 했다. 남성이 장애여성을 들어 올리는 인권 침해적 상황이 발생하며 수동휠체어는 짐짝처럼 트렁크에 실린다. 기사들은 ‘저 사람이 나에게 도와 달라 하면 어떡하지’하는 불안해하는 시선으로 날 바라본다. 그렇게 버스 타고 내려간 뒤 터미널에 도착해선 약속한 사람이 조금이라도 늦게 오면 기사들과 사람들은 또 한 번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곤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밝힌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사무국장의 말이다.

박김 사무국장은 “2007년 제정된 장애인차별금지법에도 장애인이 이동할 권리를 명시해놨다. 이에 따라 국가는 정당한 편의제공을 해야 하지만, 이제껏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방기했다.”라며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고속버스는 장애인이 탈 수 없다. 서울에서 부산 갈 때 무엇을 탈지 장애인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버스를 점거하고 쇠사슬로 버스와 자신의 몸을 묶는 박경석 대표 [출처: 비마이너]

전장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장애인은 버스 왜 못 탑니까’ 하면은 사람들이 다 도와주겠다고 한다. 그런데 대중교통 이용이 도와주는 문제인가.”라며 “우리는 왜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면서 버스를 타야 하나. 이에 대해 오늘 대답을 듣고자 한다.”라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참가자들은 미리 예매한 1시 40분 출발 세종청사행 고속버스를 타기 위해 개찰구로 이동했다.

수동휠체어를 타는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버스에 올랐으나, 버스에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자리 잡을 만한 공간은 없었다.

결국 박 상임공동대표는 운전자석이 있는 버스 앞쪽에서 쇠사슬로 버스와 자신의 몸을 묶고는 “수동휠체어를 탄 나도 이 정도인데 전동휠체어는 아예 들어오지도 못한다”라며 “버스표를 샀는데 왜 버스를 탈 수 없나. 장애인도 고속버스, 광역버스, 마을버스를 탈 수 있어야 한다. 권리는 실현되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경찰은 고속버스를 타기 위해 이동하는 장애인들을 '미신고 불법집회'라며 방패로 막아서 여기저기서 참가자들과 충돌을 빚었다.

장애인 이동권을 요구하며 고속버스를 점거한 전장연은 늦은 3시경 전국고속버스운송사업조합 이사장, 상무이사 등과 면담에 들어가면서 점거를 풀었다.

이날 면담에서 전장연은 △버스표를 샀음에도 탑승할 수 없었던 오늘 사태에 대해 고속버스 회사는 공개 사과할 것 △탑승하지 못한 귀책사유는 버스 측에 있기에 단순 환불이 아닌 사업자 측의 배상 규정에 따라 배상할 것 △장애인 접근권이 보장될 때까지 단기적 대책을 마련해 즉각 불편을 최소화할 것 △버스 회사는 정부에 적극적으로 정책을 제시하고 국토부와 함께 제도개선에 나설 것 등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고속버스운송조합 측은 2월 28일까지 공문으로 답변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면담에 들어간 전장연 김도현 조직실장은 “지금 이동편의증진법상으로도 마을버스, 전세버스를 제외한 모든 버스에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 설치가 되어야 한다”라며 “앞으로 전장연은 국토부와의 면담을 통해서 구체적인 계획과 예산 투여를 요구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장애인 이동권을 요구하며 버스를 점거한 전장연 활동가들 [출처: 비마이너]

  고속버스, 시외버스, 광역버스 등은 계단이 있고 입구가 좁아 특히 전동휠체어는 아예 탈 수가 없다. [출처: 비마이너]

  경찰은 '미신고 불법집회'라며 버스를 타기 위해 이동하는 장애인들을 방패로 막아서 여기저기서 참가자들과 충돌을 빚었다. [출처: 비마이너]

  경찰이 방패로 길을 막아서자 한 장애인 활동가가 이에 항의하고 있다. [출처: 비마이너]

  경찰이 방패로 길을 막아서자 한 장애인 활동가가 이에 항의하고 있다. [출처: 비마이너]

  장애인 이동권을 요구하며 버스를 점거한 전장연 활동가들 [출처: 비마이너]

  버스에 오른 박경석 상임공동대표가 버스표를 손에 들고 “수동휠체어를 탄 나도 이 정도인데 전동휠체어는 아예 들어오지도 못한다”라며 “버스표를 샀는데 장애인은 왜 버스를 탈 수 없나. 장애인도 고속버스, 광역버스, 마을버스를 탈 수 있어야 한다.”라고 발언하는 모습. [출처: 비마이너]

  "장애인도 버스 타고 고향에 가고 싶다" [출처: 비마이너]

  인천 민들레장애인야학 박길연 교장의 고향은 경남 남해이나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없어 명절은 물론 아버지 제사 때에도 고향에 내려가지 못한다. [출처: 비마이너]

  전장연은 27일 낮 12시 30분 서울 고속버스터미널 경부선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휠체어 탄 장애인들은 고속버스, 시외버스, 광역버스 등 계단 있는 버스를 이용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출처: 비마이너]

  기자회견을 하는 전장연 활동가들. [출처: 비마이너]

  기자회견 중 박경석 상임공동대표가 버스표를 들어 보이며 “우리는 왜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면서 버스를 타야 하나. 이에 대해 오늘 대답을 듣고자 한다.”라고 외쳤다. [출처: 비마이너]

  "고속도로 만드느라 바쁜 서승환 장관님, 장애인도 버스 좀 탑시다!" [출처: 비마이너]
덧붙이는 말

강혜민 기자는 비마이너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비마이너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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