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활동보조인은 모두 '예비 범죄자'?

인천경찰청, 부정수급 의심자 1000명 넘는 개인정보 요청

경찰이 장애인활동지원제도 부정수급을 수사한다는 명목으로 활동보조인의 개인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하려고 해 반발을 사고 있다.

인천경찰청은 지난 19일 인천 지역에 1000명이 넘는 활동보조인의 주민번호·주소·연락처를 확보하려고 인천시에 자료를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인천시는 20일 각 구청과 활동지원기관에 해당 자료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이에 활동지원기관 소속 장애인과 활동보조인들은 자신들을 '예비 범죄자' 취급을 하는 것이라며, 23일 이른 11시 인천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를 규탄했다.

활동보조인과 장애인들의 규탄 움직임이 확산할 조짐을 보이자 인천경찰청은 현재 자료요청 계획을 보류하겠다고 한발 물러선 상태다.

  인천경찰청이 부정수급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1000명이 넘는 장애인과 활동보조인의 주민번호 등 개인정보를 요구해 장애인 당사자 및 활동보조인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번 사건은 복지 서비스를 바라보는 경찰의 왜곡된 시각과 정보인권 감수성 결여 때문에 벌어진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인천경찰청이 장애인 활동지원 부정수급 사건 관련 제보를 받은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경찰은 비슷한 사건이 더 있을 것으로 판단해 수사를 확대하기로 하고, 보건복지부(아래 복지부)로부터 활동지원 바우처 부당 결제 의심 사례 자료를 받았다. 그러나 이 자료에는 주민번호 등 구체적인 자료가 없어 인천시에 주민번호 등을 요청한 것이다.

경찰은 복지부가 제공한 자료에는 1000명이 넘는 활동보조인과 장애인들의 명단이 들어 있었다고 밝혔다.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확인한 바로는 인천 남구와 계양구에서만 장애인 214명, 활동보조인 576명에 대한 개인정보 요청이 들어왔다. 이는 이 지역 활동보조인의 약 60%에 달하는 수치다.

복지부가 제공한 바우처 부당 결제 의심 사례 자료는 바우처의 사후 일괄결제와 이동거리와 비교해서 시간이 과다하게 책정된 경우 등을 모두 부정수급 의심사례로 지목했다.

이에 대해 활동보조인 김명문 씨(47)는 "이는 활동지원서비스 업무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서 "바우처 결제는 보통 스마트폰 등으로 하는데, 시스템 오작동이 잦아 일괄결제를 할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김 씨는 "또한 장애인들과 이동할 때는 같은 거리라도 더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데, 복지부는 그런 조건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라면서 "경찰이 명확한 증거도 없이 사실상 활동보조인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지원서비스 코디네이터 업무를 맡고 있는 이소망 씨(26)도 이러한 일이 벌어지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 씨는 “일괄결제 등에 대해서는 구청에서 지도점검 받을 때도 충분히 사유를 설명해 다 통과된 사항"이라면서 "경찰이 범죄사건 다루듯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종인 사무국장은 “일단 인천경찰청이 주민번호 등 개인정보 요청을 보류한 것은 다행”이라면서도 “복지부가 이번 일처럼 활동보조인 블랙리스트 만들 듯 자료를 수사기관에 넘기는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문제는 계속해서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진보네트워크 장여경 활동가는 “공공기관이 보유한 개인정보를 목적 외로, 그것도 영장 없이 수사기관에 제공해온 관행은 큰 문제점이 있다”라면서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에서도 수사기관의 개인정보 침해에 대해 충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있지 못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박근혜 정부 들어 부정수급을 빌미로 복지 수급자에 대한 도덕적 공격은 갈수록 심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비정상의 정상화’의 1호 과제로 부정수급 척결을 내세우는 한편, ‘정부합동 복지부정 신고센터’를 설치해 21개 정부기관에서 관장하는 약 292종의 복지사업 부정수급 사례를 조사하고 있다. 또한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5일 복지예산 부정청구 시 최고 5배 징벌환수조치를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시민사회와 장애인계에서는 정부가 복지 사각지대 해결에는 관심이 없고, 빈곤을 범죄화하는 데에만 골몰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덧붙이는 말

하금철 기자는 비마이너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비마이너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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