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과 함께 한국 정부의 ‘안전 이데올로기’도 덩달아 바다 밑으로 침몰해 버렸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부의 부실한 재난관리 시스템, 사건 은폐 의혹, 미흡한 대처 등이 도마 위에 오르며 그동안 박근혜 정부가 내걸어 왔던 ‘안전사회’ 기치의 허구의 민낯이 드러나게 됐다.
특히 정부는 그간 국민의 안전, 생명과 직결되는 핵심 업무들을 불안한 고용형태로 확산해 온 터라, ‘안전’에 대한 불안감은 더욱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다. 세월호의 비정규직 고용형태가 안전에 취약한 구조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향후 국민 생명과 직결되는 다수 업무의 비정규직 고용 형태에 대한 개선 요구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불안한 대한민국, 생명 직결 핵심 업무에도 ‘비정규직’ 넘쳐나
세월호 침몰 참사 과정에서 언론을 통해 선장을 비롯한 핵심승무원 다수가 대거 비정규직으로 고용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안전 및 대응관리에 취약한 세월호의 비정규직 고용형태가 이번 대참사를 부추겼다는 지적이었다.
실제 세월호 전체 승무원 중 비정규직은 15명으로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비상상황 시 승객 안전과 구조 등을 책임져야 하는 세월호의 총 지휘자 격인 선장은 1년짜리 계약직이었다. 기관부, 갑판부 등 핵심 승무원 인력 70%도 비정규직이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안전 핵심 인력의 비정규직 고용형태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비행기 조종사나 철도 시설 유지보수, 버스 운전사 등을 비롯해 재난구조대와 같은 국민의 안전 및 생명과 직결되는 핵심 업무들이 이미 비정규직으로 고착된 상태기 때문이다.
그동안 노동계나 시민사회는 안전, 생명과 직결된 핵심 업무의 정규직 고용을 요구해 왔다. 국민의 발인 선박이나 비행기, 버스, 철도 등 교통수단은 자칫 대형 참사를 불러올 수 있는 만큼, 고용안정을 통해 안전성 및 전문성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거대 항공사 조종사와 승무원, 철도 유지보수 업무, 버스기사 등은 다수가 불안한 비정규직 신분이다. 대한항공의 경우 이미 11년 전인 2003년부터 외국인 조종사를 비정규직으로 채용해 왔다. 외국인 용역업체를 통해 인력을 공급받는 방식이었다. 이후 외국인 조종사들에 대한 불법파견 의혹이 일었고, 고용노동부로부터 수차례 불법파견 지적도 받았다.
하지만 대한항공 측은 이 같은 논란에도 정부에 조종사와 승무원까지 파견을 허용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회사 측은 지난해 6월,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을 상대로 조종사와 객실승무원까지도 파견을 허용토록 파견법 개정을 건의한 바 있다. 2012년 말 기준으로 대한항공의 전체 조종사는 2,224명이며, 객실 승무원은 5,708명이다. 조종사 중 약 15%는 비정규직 외국인 조종사다.
안전 취약 구조 만들어...조종사, 철도 보수, 재난구조대도 비정규직
철도공사도 철도 안전의 핵심 업무인 유지, 보수 업무를 모두 외주화 했다. 이에 따라 철도시설의 유지보수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은 외주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채워졌다. 선로보수 외주업체인 코레일테크에 소속된 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율은 96%에 달한다. 게다가 지난 2011년 12월, 코레일테크의 안전 소홀로 노동자 5명이 열차에 치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전세버스노동자들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 2010년 운수노동정책연구소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전세버스노동자의 90%가 ‘지입노동자’로 불리는 특수고용노동자로 고용돼 있다. 전세버스노동자의 평균 월급은 2007년 기준 104만원이다. 노동자들은 월 25만원의 지입료와 회사대행경비 40만원, 알선료, 감가상각비, 유류비, 도로비 등을 직접 지불해야 한다.
심지어 북한산, 설악산, 지리산 등 국립공원의 재난구조대도 대부분이 비정규직 신분이다. 정부의 고용률 달성을 위해 국립공원 안전관리업무를 비정규직 일자리로 확대한 까닭이다. 작년 기준, 20개 국립공원에서 근무 중인 안전관리요원은 총 147명이다. 그 중 안전관리반은 44명, 재난구조대는 103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종훈 새누리당 의원은, 안전관리요원 중 운영업무직인 7명을 제외하고는 모두다 비정규직 신분이라고 지적했다. 재난구조대 100여 명도 모두다 비정규직으로, 국립공원 내 전체 안전관리전담자 95%가 비정규직인 셈이다.
뿐만 아니라 산악사고 발생 시 부상자 한 명을 들것에 싣고 내려올 때 필요 인력은 최소 4명이지만, 국립공원별 안전관리전담자는 3~4명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 상황이 발생했을 때 민첩한 대응은 고사하고 구조조차 나설 수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