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정씨가 발견됐던 높이 3.5미터 현장 [출처: 현대중공업사내하청노동조합] |
유족과 노조, "현장 정황 볼때 산재사망이다"
유족과 사내하청노조는 “죽으려는 사람이 속장갑과 목장갑을 이중으로 끼고 벗겨지지 않게 청테이프까지 손목에 감은 뒤에 목을 매겠느냐”고 반문했다. 에어호스가 어떤 형태로 감겨 있든 작업 중에 일어난 산재사망이라는 것이다.
숨진 정씨는 26일 낮 11시 27분께 119에 사고 신고가 접수돼 병원으로 옮겼지만 숨졌다. 정씨는 현대중공업 선행도장부 13번 셀장 2626호선 S22 블록에서 블라스팅 작업을 하다가 송기마스크 에어 공급용 호스에 목이 감긴 채 발견, 당시 정씨 몸은 땅에 닿지 않고(바닥에서 50cm) 에어호스에 매달린 상태였다. 정씨가 발견된 현장 높이는 바닥에서 3.5미터 가량 된다.
정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26일 저녁 6시 2분께 숨졌다. 병원은 27일 오전 7시 정씨를 부검한 결과 머리 뒷쪽에 혈액이 고여 있었음을 확인했다.
노조는 정씨가 1차로 무언가에 부딪쳤고, 2차로 에어호스가 목에 감기면서 실족해 추락 중 에어호스에 매달려 꼼짝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숨진 정씨가 자신이 일하던 작업장에서 벗어난 곳에서 발견됐다는 것에 대해 노조는 같은 작업을 하는 같은 블록에서 발견됐고 다른 작업장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노조는 “에어호스가 꺾여 반대편으로 갈 수도 있고, 다른 장비를 점검하기 위해 반대편으로 갔을 수 있다”고 했다. 노조는 현장노동자들이 “에어호스가 항상 몇 바퀴 꼬여 있는 것을 감안하면 실족을 하면서 꼬여 있던 에어호스가 목을 감았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진술했다면서 ‘자살’로 볼 근거나 증거도 없고 정황으로 보면 사고사가 맞다고 했다.
경찰, “부검의 소견과 현장상황 볼 때 자살가능성 크다”
경찰은 28일 오전 전화통화에서 “부검의 소견이 타살이나 사고사 가능성이 낮고 자살일 가능성이 크다고 나왔다”고 말했다. 경찰은 “타살이나 사고사라면 줄을 잡고 저항한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흔적이 없다”고 했다.
머리에 충격이 먼저 있어 정신을 잃었을 가능성이나 손에 장갑을 끼고 있어 목을 풀지 못했을 가능성을 제기하자 경찰은 “부검의 소견이 머리 상처 정도로 봤을 때 정신을 잃을 정도의 충격은 아니며, 개인 체질이 특이하거나 정신을 잃더라도 부검 결과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경찰은 “부검의 소견이나 현장 상황은 자살일 가능성이 크지만, 자살 동기나 생활고에 시달렸는지, 건강상 이상은 없었는지 등 수사 상황에 따라 내용은 달라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목에 두 바퀴 에어호스가 감긴 흔적이 인위적인 면이 있다면서 정씨가 목을 매 자살했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또 자신이 일하는 위치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정씨가 발견된 것도 지적했다. 확인 결과 정씨가 발견된 곳은 같은 팀이 일하는 동일 작업 블록이었다.
유족, "대출이나 빚 없고 죽을 이유 없다"
숨진 정씨, 조카 2명과 15일부터 같은 현장에서 작업
정씨는 같은 팀 작업자 10명과 26일 오전 8시부터 선행도장 샌딩 작업(도장 작업 전 표면을 메꾸거나 표면을 매끄럽게 하는 일)을 했다. 10시부터 20분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작업 시작. 11시 27분께 함께 일하던 동료에 의해 에어호스에 감겨 매달린 채로 의식을 읽은 정씨가 발견됐다.
최초 목격자 윤모 씨는 작업을 하던 중 에어호스 힘이 약해 나가보니 정씨가 에어호스에 감겨 매달려 있었다고 진술했다. 윤씨는 작업반장 박모 씨에게 연락했고, 박씨는 정씨 목에 감겨 있던 에어호스를 자른 뒤 119에 연락해 병원으로 후송했다.
숨진 정씨의 유족(부인, 45)은 27일 빈소에서 “중1 딸과 고1 아들이 있는데 남편은 주말이면 집에 와서 가족과 함께 쇼핑도 같이 하고 바람쐬러도 자주 갔다”며 남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이유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정씨 가족은 전세로 살고 있지만 대출이나 빚이 없어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도 아니었다고 한다.
유족에 따르면 정씨는 조선소 선행도장 샌딩 작업만 12년 가량 했다. 숨진 정씨가 일하던 현장에는 10명이 일했는데 그 가운데 2명은 정씨의 친조카와 외조카였다. 삼촌과 외삼촌으로 불리던 정씨는 조카들과 같은 현장에서 4월 15일부터 일했다. 5월 3일 친조카는 결혼식을 앞둔 상태다. 정씨의 외조카인 김모 씨(30)는 “외삼촌이 목숨을 스스로 끊을 이유가 없다. 조카들과 함께 일한다고 좋아했고 자상하게 챙겨주고 했는데 조카들 둘이나 있는 곳에서 자살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사내하청노조 하창민 지회장은 “자살이라는 증거가 없고 명백한 산업재해다. 지회는 진상규명을 반드시 하겠다”고 밝혔다.
노조는 28일 아침 출근시간에 배포한 선전물을 통해 “이번 일은 고인의 죽음을 왜곡해 현대중공업이 책임을 면하려는 파렴치한 범죄 행위”라고 지적했다.
- 덧붙이는 말
-
용석록 기자는 울산저널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울산저널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