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5천여 명이 모인 촛불집회는 고요하면서도 슬픔과 분노가 떠돌았다. 아이들이 가끔 떠드는 소리 외엔 곳곳에서 울음 참는 소리와 그 소리에 감염된 울음이 1만 5천명이 모인 공간을 가득 채웠다. 가수가 꿈이었던 희생자 고 이보미 학생의 언니가 함께한 시민합창단의 ‘거위의 꿈’이 울려퍼지다 30여 초 동안 적막이 흐르자 안산 문화광장은 고요한 울음으로 뒤덮였다.
▲ 안산 중앙역으로 행진을 시작하는 참가자들 |
“추모제에 앉아 있는데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만 들렸어요. 나만 울었으면 혼자 감정이 과잉 됐나 싶은 느낌이 들었을 텐데 다 같이 우니까 나도 내려놓고 울어도 되는구나 싶어서 함께 펑펑 울었어요. 집에서 신문이나 TV를 보고도 눈물이 나왔지만, 소리 내서 울 수는 없었어요. 부모님이나 친한 사람 앞에서 울면 이상해 보일 것 같았어요
세월호 관련 동영상 보는 것도 너무 괴로웠어요. 내 삶이 흔들리는 것 같고 자꾸 현실을 외면하게 되더라구요. 그런데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자리였어요. 울어도 되고 슬퍼해도 되고... 생각해 보면 가식 없이 슬픔이나 분노를 해소하고 공유할 자리가 없었어요”
이렇게 거대한 슬픔을 공유한 사람들은 “아이들을 살려내라”며 진상규명과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을 묻는 촛불로 안산 번화가를 덮었다.
10일 저녁 6시 안산 문화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희생자 추모와 진실을 밝히는 국민촛불행동’은 세월호 희생자 가족과, 살아 돌아온 아이들의 가족, 그리고 함께 아픔을 느끼는 사람들이 자본과 권력의 탐욕에 찢겨진 시대를 잊지 않고 행동하겠다는 마음을 모아 갔다.
단상에 오른 고 박수현 학생의 아버지 박중대 씨는 아들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박중대 씨는 “이 사건이 강남 등 잘사는 사람들에게서 일어났다면 대응 속도와 방법이 달랐을 것이고 그 결과도 달랐을 것”이라며 “그곳에서는 대한민국의 언론은 듣지도, 보지도, 믿지도 말라”고 했다.
함께 단상에 오른 단원고 고 김동혁 학생 어머니는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서 올라왔다”며 눈물을 터트렸다. 그는 “20년간 용접공으로 살아온 아빠를 자랑스러워하던 너였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세금을 내고 일터에서 소시민으로 살아온 엄마, 아빠가 네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겠다. 동혁아 사랑해”라며 눈물을 참지 못했다.
생존자 학부모도 단상에 올라 쏟아지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장동원 씨는 “언론이 무서워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며 “먼저 간 우리 딸 친구들, 정말 소중한 친구들이었고 아이들도, 부모도 살아서 힘들었다”고 눈물을 훔쳤다.
이어 “아이들이 어버이날 희생자 부모님께 카네이션을 드리고 싶어 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커서라도 친구들을 잊지 않을 거고, 치유 잘 받고 부모가 돼서도 찾아뵙겠다”고 아이들의 슬픔과 마음을 전했다.
지난해 7월 고등학생 5명이 숨졌던 태안 해병대 캠프 참사 유가족도 단상에 올라 철저한 진상규명과 특검을 요구하는 희생자 가족들을 지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안 유가족들은 150일째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중이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은 “다시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월드컵에 미치고, 정치놀음에 빠져 언제 세월호 참사가 있었는지, 얼마나 울었는지 잊어버리는 바보 같은 국민이 되지 말자”고 했다. 박래군 소장은 ”더는 가만히 있지 말고 행동하자. 잘못된 나라와 잘못된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꿔야한다”고 강조했다.
박 소장은 또 “시민사회단체들은 범국민대책기구를 만들어 추모분위기를 더욱 확산시키고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싸워나갈 것”이라며 “무능한 정부에 책임을 묻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만들어 가겠다”고 했다.
범국민대책기구는 11일 최종 논의를 거쳐 13일 께 정식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또 오는 17일 서울 청계 광장에서 10만 여명이 모이는 대규모 촛불집회도 계획 중이다.
촛불행동 참가자들은 저녁 8시께 집회를 끝내고 안산 중앙역을 향해 행진을 시작했다. 행진은 무거운 침묵 속에서 진행되다, 안산 번화가를 끼고 돌자 “아이들을 살려내라”, “박근혜는 퇴진하라” 등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한편 촛불행동에 앞선 오후 3시엔 ‘세월호 침몰사고 문제해결을 위한 안산시민사회연대’와 ‘세월호참사범국민대책위원회’가 합동분향소가 위치한 화랑유원지에서 노란리본 인간띠잇기 추모 퍼포먼스를 마치고 촛불행동이 예정된 안산문화광장까지 행진했다.
무거운 침묵 속에 2천여 명 정도가 참가한 행진은 단원고 정문을 지나갔다. 몇몇 시민들은 행진대열을 보고 눈물을 보였고, 상인들도 가게 밖으로 나와 행진대열을 지켜봤다.
자녀들과 함께 행진에 참가한 철도노조 조합원 홍 모 씨는 “안산 도시 전체가 분위기가 너무 안 좋다. 사람들이 모여도 유흥가를 다 안가는 분위기”라며 “술 마시고 떠드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모두가 침통한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은 늘 실수할 수 있기 때문에 실수를 잡아 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한 거고, 이를 위해선 비용이 들고 품이 든다”며 “앞으로도 사람과 안전보다 이윤만을 중시한다면 세월호와 같은 사고는 끝나지 않고 또 벌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