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하청 산재사고 누가 책임지나

산재 나면 원청에도 책임물어야

5월 2일 동구 현대중공업 근처 모 정형외과에서 만난 두 사람은 모두 일하다 다쳤으나 산재신청을 못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현대중공업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다쳤고, 한 사람은 현대미포조선 물량팀으로 일하다 다쳤다.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은 수주 물량이 늘면서 물량팀을 대거 투입하지만 이들 노동자들이 산재를 당하면 원청에서 책임지지 않는다. ⓒ울산저널 자료사진

1차 하청업체 노동자
"일하다 다쳤는데 산재 신청하려 하니 아무것도 해줄 게 없다는 회사"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A 기업에서 일하는 최 모(50)씨는 해양사업부 공사1부에서 일하다 다쳤다. 지난 3월 27일 배관작업에 앞선 준비 작업을 담당한 최씨는 파이프를 들다 허리를 다쳐 수술했다.

최씨는 사고 당일 점심시간에 반장에게 말하고 치료를 받은 뒤 다음날 출근했다. 최씨는 다리가 저리고 통증이 심해 다시 병원을 찾아가 MRI 촬영을 했다. 병원측이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해서 4월 14일 수술했다. 15일 업체측 총무과 직원은 병원을 방문해 “처리 과정 신경쓰지 말고 치료하는데 집중하고 걱정하지 말라”며 최씨를 위로했다. 이후 4월 25일까지 업체로부터 아무 연락이 없자 최씨 가족은 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업체측으로부터 “아무것도 해줄 게 없고 하고 싶으면 법으로 하라”는 답을 들었다.

병원 MRI 진단 결과는 ‘수액이 터져 흘러내리면서 신경을 눌렀다“는 소견이다. 최씨는 퇴행성이면 수액이 터지지 않는다며 이는 외부충격에 의한 산재라고 주장한다.

최씨는 치료 걱정 하지 말라던 업체로부터 법대로 하라는 말을 듣고 여기 저기 산재 신청 절차에 대해 알아보다 노동조합에 연락했다.

물량팀은 1차 하청업체보다 열악
"사고 나면 물량팀이 책임진다는 약속 하고 업체와 계약"


최씨와 같은 병실을 쓰는 현대미포조선 하청업체 물량팀 박 모(52)씨는 블록 탱크에 들어가서 일하다 미끄러져 넘어졌다. 박씨는 비호테크로부터 물량을 받은 KOR 소속 물량팀이다. 그는 왼쪽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하고 있으나 공상처리도 산재처리도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우리 팀 소장이 말하기를 이런 사고가 나면 1차 하청인 비호테크는 책임을 안 진다는 계약을 했대요.”

박씨는 같이 일하던 물량팀 소장과 친하기도 하지만 평소 경제적으로 힘들어하는 걸 봤던 터라 마음이 편치 않다.

박씨는 근육파열로 4주 진단을 받았다. “물량팀으로 들어갔는데 일을 준 업체가 아무 책임도 안 지고 대책도 없으면 우리 같은 물량팀은 누구에게 말해야 할까요.”

그는 1차 하청업체가 책임지지 않으면 원청에서 산재처리를 해 줘야 되는 거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원청이 업체에게 산재사고가 나면 책임지라는 계약을 했다면 업체는 소속 노동자들 산재처리를 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돈도 돈이지만 불이익도 걱정된다는 지적이다.

지난 4월 7일 현대미포조선 선행도장부 (주)세현 소속 하청노동자 정 모(65)씨가 선각 5공장 야적장 S블록 위에서 테이핑 작업을 하다 추락해 사망했다. 현대미포조선은 산재사망사고 이후 사내 기관지인 미포뉴스(4월 11일자)를 통해 ‘안전한 작업장과 경영혁신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제목으로 사과문을 내고, “단납기선박, 특수선박 건조와 시장상황 악화에 따른 선박건조 및 인도 지연 등으로 과도한 인력 투입과 안벽의 부족 사태가 초래됐다”고 밝혔다. 안벽이 부족해 항만청으로부터 염포부두와 타사 부두를 빌려 사용한다고도 덧붙였다. 다르게 말하면 최근 일감이 늘면서 물량팀이 대거 투입됐다는 말이기도 하다.

현대중공업이나 현대미포조선의 사정은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원하청노조 모두 물량팀 규모마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답했다. 하청노조 관계자는 “물량팀은 안전교육도 받지 않거나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고 투입되는 사례가 많아 안전 안전 사각지대에 내몰린다"고 지적했다.

최근 현대중공업그룹 산재사망사고에서 보듯 재해자는 모두 하청노동자다. 노동부가 특별근로감독에 들어가 있으나 안전설비만의 문제로 볼 게 아니라는 지적이다. 노사는 노동자 안전과 차별을 없애기 위해 물량팀과 하청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등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산재 왕국' 현대중공업 근본 대책 마련해야

  최근 현대중공업에서 중대재해가 연속 발생해 노동계는 전면 작업중지를 요구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울산저널 자료사진

민주노총울산본부는 오는 13일 저녁 6시 현대중공업 정문 앞에서 '현중 산새사망사고 규탄 집회'를 연다. 지난 3월 25일부터 최근까지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에서 5건의 사고가 발생해 하청노동자 6명이 숨졌다. 민주노총울산지역본부나 금속노조 중앙, 현대중공업사내하청노조 등은 현대중공업 전체 공장에 대해 노동부에 작업중지를 요구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부산지방고용노동청은 4월 28일부터 현대중공업을 대상으로 산업안전 특별감독에 나섰다. 이번 특별근로감독은 지난 4월 21일 화재·폭발사고로 2명이 사망하는 중대재해가 발생함에 따라 실시되는 것이다.

현재 현대중공업에서 발생한 중대재해와 관련해 9곳에 작업이 전면 또는 부분 중지됐다. LPG선 화재와 폭발 사고로 해당 선박 1척에 작업중지, 동일 작업 선박 4척에 화기 사용이 금지됐다. 4안벽에서 신호수가 바다에 추락해 사망한 사고로 안벽 4곳에 대한 작업중지 명령이 내려진 상태다. 5건의 사고 내용을 정리해 본다.

3월 25일 하청노동자 1명 익사 - 안전 무시한 족장 철거중 무너져

3월 25일 오전 9시 20분께 현대중공업 14안벽 2622호선(드릴쉽)에서 일하던 협력업체 선일ENG(대표:최병수) 노동자 3명이 무너지는 족장과 바다에 빠졌다. 사고 직후 한 사람은 헤엄쳐 나왔고, 한 사람은 주변 동료들에 의해 구조, 고 김종현(52) 노동자는 숨졌다.

이날 사고는 배 위에서 족장을 철거하다가 일어났다. 사고 당일 해당 드릴쉽 족장 하선 작업은 안전을 무시한 채 진행됐고, 표준작업지도서가 없었으며 안전교육도 실시하지 않았다. 현대중공업노조는 회사와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해상사고 대비 특수구조대 설치를 합의했다. 원·하청 노동자에게 특별안전교육을 하고 해당 부서에는 특별안전교육(1시간)을 진행했다.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은 해당 선박에 대해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고 추락방지 조치를 안 한 문제를 지적했다. 현대중공업은 하중을 계산해 최대 적재하중을 이겨낼 수 있는 지지대(플랫홈)를 철판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서를 제출하고 4월 초 작업중지 명령은 풀렸다.

이 사고는 사고직후 대처도 미흡했다. 사내잠수부가 근처에 없었는데도 119에 곧바로 구조를 요청하지 않아 숨진 김씨는 1시간 20분이나 물 속에 있었다.

4월 7일 미포조선 작업중 추락사 - 안전난간대 없이 맨몸 작업하다 떨어져

4월 7일 오후 2시 17분 현대미포조선 선행도장부 (주)세현 소속 고 정경섭(65)씨는 선각 5공장 야적장 S블록 위에서 테이핑 작업을 하던 중 86미터 아래로 추락했다. 울산대학병원으로 후송했으나 3시 42분 사망했다.

당시 사고현장에는 추락을 방지하는 안전난간대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하청노조 관계자에 의하면 회사는 정씨가 안전설비를 갖추지 않고 일하는 등 개인부주의로 몰아갔다. 그러나 다음날 유족이 1시간여 공장 앞에서 현장 방문을 요구한 끝에 들어간 현장엔 안전난간대가 없었다. 원청 안전관리자는 그제서야 안전설비 미흡을 시인했다.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은 해당 선박 블록에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고 안전조치를 취할 것을 명령했다. 미포조선은 안전난간대를 설치했고 지청은 4월 중순께 작업중지명령을 해제했다.

숨진 정씨의 유족들은 사망 4일째 현대미포조선의 책임 있는 사람이 사과하길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유족은 회견 뒤 현대미포조선으로 들어가 책임자의 사과를 받으려 했으나 정문에서 제지당했다. 현대미포조선은 사고 5일째 사내소식지 미포뉴스(4월 12일자)에서 사과문을 싣고 원청의 관리자가 빈소를 방문해 유족에게 사과했다.

4월 21일 화재·폭발 하청 2명 사망 - 인화성 보온재 옆 수백명 용접작업

4월 21일 오후 4시 4분께 현대중공업 선박건조장에서 화재가 나고 폭발로 이어져 하청노동자 2명이 숨지고, 하청노동자 2명이 다쳤다. 사고 당시 해당 선박에는 모두 130여 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었다. 사고 원인은 화기 작업 중 용접불꽃이 불에 잘 타는 보온재에 옮겨 붙어 화재가 발생하고, 선박 내부의 유해가스로 2차 폭발이 이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4월 22일 울산고용노동지청은 사고선박에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고, 사고선박과 같은 종류인 LPG선 4척에 대해 화기작업중지 명령을 내렸다. 해당 5척의 LPG선은 현재까지 현장 조사와 안전 설비 점검을 진행하는 중으로 작업은 중단된 상태다.

4월 26일 에어호스에 목 감겨 사망 - 자살·산재 논란 속 자살 보도 먼저

지난달 26일 오전 11시 27분께 현대중공업에서 일하다 에어호스에 목이 감긴채 숨진 하청노동자 정모 씨(45)의 사망 원인을 놓고 자살이냐 산재사고나를 놓고 공방이 이어졌다. 현대중공업노조가 확보한 최초 현장 사진에는 난간에 에어호스가 걸쳐진 모습이 단순했으나 이후 누군가가 에어호스를 복잡하게 인위적으로 감아 놓은 모습이 확인됐다.

정씨는 현대중공업 선행도장부 13번 셀장 2626호선 S22 블록에서 블라스팅 작업을 하다가 송기마스크 에어 공급용 호스에 목이 감긴 채 발견됐다. 경찰은 “최초 목격자가 난간에 맨 에어호스 매듭이 자신이 만든 매듭이 아니다”라고 말해 “인위적으로 매듭을 짓고 목을 맨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했다.

반면 최초 목격자와 함께 있던 박모 반장은 “목에 감긴 호스는 인위로 묶은 게 아니고 얼굴과 몸에는 많은 양의 그리트(브라스팅용 강철볼)가 박혀 있었다”고 했다. 같은 현장에 있었지만 두 사람의 진술은 서로 다르다. 현대중공업노조는 “먼저 머리에 충격을 받은 사고의 원인이었을 것”이라며 “에어호스는 작업자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대부분 한 두 번 감아놓는다”고 말했다.

현미향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사무국장은 “당일 저녁 7시에 검안이 시작됐는데 일부 언론은 이미 오후 4시쯤 자살 의혹이 크다고 보도했는데 이는 경찰이 특정 방향으로 처음부터 사고를 몰아갔던 것 아니냐”고 말했다. 부검의 소견을 함께 들은 현대중공업 노조와 경찰의 말도 달랐다.

유족들은 사건을 수사중인 울산 동부경찰서를 방문해 현장검증을 다시 할 것을 요구했고, 증명되지 않은 자살 의혹을 경찰이 더 이상 언론에 흘리지 말라고 요구했다. 유족의 요구로 경찰은 5월 12일 작업환경과 동일 환경을 재현해 현장검증을 다시 할 예정이다.

4월 28일 신호작업 하청노동자 익사 - 안전장비 하나없이 야간 바닷가 작업

4월 28일 저녁 8시 40분께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김모 씨(38)가 제4안벽 트랜스포트 신호작업 바다에 빠져 1시간 반만에 숨진채 인양됐다. 당시 안벽 현장에는 구명조끼나 구명환, 지지대도 없었고, 랜턴만 하나 있었다. 숨진 김씨와 함께 일하던 신호수는 모두 4명이었다. 많은 비가 내리는 밤이라 주변은 어두웠다. 김씨는 선박 블록을 실은 트랜스포터 신호수 작업을 하며 뒷걸음치다가 바다로 추락했다.

함께 신호수 일을 하던 작업자 3명은 바다에 빠진 김씨를 발견했으나 현장에는 구명조끼나 구명튜브, 로프 등이 없었다. 이들이 로프를 가져와 바다까지 던지는 데는 8분이 걸렸다.

동료 A씨는 “비가 많이 내리는 밤이라 바다와 땅 색깔을 구별하지 못해 물에 빠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안전화에 안전모까지 착용해 그 무게 때문에 수영하기도 쉽지 않았다. 유족들은 바닷가에서 야간 작업하는 직원에게 휴대용 구명장비를 지급하고 일을 시켰어야 한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은 사고 현장인 제4안벽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고, 다음날 안벽 3곳에 추가로 작업중지명령을 내렸다.
덧붙이는 말

용석록 기자는 울산저널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울산저널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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