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교육감 선택한 서울, ‘가만히 있으라’는 교육에 혁신 열망

조희연 대반전 배경, 고비마다 보수 후보들 본질 드러나면서 가능

2010년 무상급식과 특권교육 폐지, 학생인권조례, 혁신학교 등 진보적 서울 교육을 선택했던 서울 시민들이 2년여 만에 다시 진보교육감을 선택했다.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 박수치는 조희연 후보와 지지자들[사진/ 김바름 기자]

서울교육감 선거는 항상 진보 교육감 후보에겐 어려운 선거였다. 서울시장 선거와 달리 교육감 선거는 보수적 투표 경향이 강했기 때문. 지난 2010년 동시 지방선거 당시 곽노현 후보는 34.34%를 받아 33.22%를 받은 보수 이원희 후보를 간신히 따돌렸다. 당시 보수는 단일화에 실패해 남승희 후보가 11.82%로 갈라치기 해 곽 후보의 당선이 어렵게 가능했다.

하지만 2012년 대선과 함께 치러진 서울교육감 재선거는 보수의 결집이 이뤄진데다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민주당 지지자들의 역투표 현상이 강했다. 결국 이 선거에서 서울은 압도적 지지로 보수 교육감을 선택했다.

과거 서울교육감 선거를 돌아본다면 두 명의 보수 후보가 출마한 이번 6.4 지방선거는 구도만 놓고 보면 어느 때보다 조희연 후보에게 좋은 환경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희연 후보는 선거 초기 지지율이 6-8% 사이를 기록했다. 현직 교육감 프리미엄을 가진 문용린 후보와 오랜 TV 출연과 고시 3관왕이라는 타이틀로 깨끗한 중도 이미지로 무장한 고승덕 후보 사이에서 인지도를 기대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특히 대다수 언론사 여론조사가 조희연 후보를 성공회대 교수로 소개하면서 지지율은 더욱 낮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희연 교수는 어떻게 극적 반전의 승기를 잡을 수 있었을까? 일단 선거 중반까지 부동의 1위를 달렸던 고승덕 후보 딸의 폭로가 큰 몫을 한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조희연 후보가 40%에 가까운 지지율로 가볍게 1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고승덕 후보 딸의 폭로 덕이다.

조희연 아들의 글에 나타난 진보학자 조희연의 성품 반향

하지만 조 후보는 고승덕 후보 딸의 폭로 없이도 곽노현 후보처럼 박빙의 승부를 펼치며 승리할 가능성도 컸다고 봐야한다. 조희연 후보를 가장 큰 터닝 포인트로 이끈 원동력은 조희연 후보의 둘째 아들이 작성해 SNS로 퍼진 다음 아고라의 글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글에는 평소 진보적 학자인 조 후보의 곧은 성품과 청빈한 삶, 공정한 중재, 학생들과의 소통 가능성이 모두 담겨 있었다. 그렇다고 이 글 자체가 터닝 포인트를 이끈 것은 아니다. 그 글을 통해 세월호로 드러난 교육 문제 혁신 열망을 담을 후보가 누구인지를 알릴 수 있었고, 이 지점이 민주진보 성향 유권자 결집의 계기가 됐다는데 의미가 있다. 여전히 조희연 후보는 낮은 인지도로 인해 기본적으로 자신을 지지했어야 할 새정치연합 지지자들과 민주진보 성향 유권자들의 표를 고승덕 후보에게 빼앗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조 후보 아들의 글을 터닝 포인트로 이끈 것은 바로 고승덕 후보의 극우성향을 드러낸 자책골 때문이었다. 애초 고승덕 후보는 정치성향 상 조희연 후보에게 가야할 표를 근 15-20% 이상 가져갔다. 실제 여론조사 공표 마지막 날인 5월 29일까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http://www.nesdc.go.kr) 홈페이지에 등록된 각 언론사별 서울교육감 여론조사 로데이터(원자료)는 이런 사실을 잘 보여준다.

고승덕에 쏠렸던 새정치 성향 표, 고승덕 극우성향 드러나자 이탈 조짐

거의 대다수 여론조사에서 보수 성향 유권자나 새누리당 지지자 30% 이상이 고승덕 후보를 지지했으며, 조희연 후보는 3-8%만 지지했다, 또 나머지 30% 정도는 문용린 후보를 지지했다.

반면 스스로를 진보 성향이라고 밝힌 유권자나 새정치연합 지지자의 30% 정도가 보수 후보인 고승덕 후보를 지지했다. 민주진보단일 후보인 조희연 후보 지지도는 30-40% 정도로 조희연 적극 지지층으로 분류 되어야 할 층에서 고 후보와 큰 차이를 벌이지 못했다. 이는 선거전이 진행 되는 양상에 따라 민주진보 성향의 표가 결집을 시작하면 조 후보에게 표가 흘러갈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했다는 의미다.

그런 불안정성을 갖고 있던 고승덕 후보의 표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극우성향의 한기총 회의에 참석해 전교조 발언을 하면서다. 이 사건으로 중도 이미지로 무장한 고 후보의 성향이 강경보수가 아니냐는 의구심이 새정치연합 지지자들과 젊은 층 사이에 급속히 퍼져 나갔다. 특히 한기총 회의에선 세월호 희생자들을 비하하는 발언까지 나와 파급력이 컸다.

이 와중에 고 후보는 각종 인터뷰에서 전교조에 대한 질문을 받아야 했고, 고 후보가 전교조를 언급할 때마다 경기의 조전혁 후보와 같은 다른 극우 성향의 보수 후보들과 별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 확인 돼 갔다. 또 네티즌들이 과거 YTN 돌발영상에서 고 후보가 이명박 대통령의 BBK 의혹을 무조건 감싸는 동영상을 찾아내면서 야권 지지층이 이탈할 조짐을 보였다.

문용린 정몽준과 박원순 물어뜯자, 박원순 파트너로 조희연 부상

여기에 선거를 5-6일 놔두고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의 농약급식 네거티브가 새로운 쟁점을 형성했다. 농약급식 논란은 근본적으로 학교급식을 책임지는 현직 문용린 교육감의 책임으로 돌아갈 여지가 컸다. 그런데도 문용린 후보는 정몽준 후보와 함께 박원순 시장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문용린 후보의 최대 실패는 압도적 지지율을 이어가던 박원순과 대립 전선을 만들면서 오히려 조희연 후보가 박원순 후보와 발걸음을 맞춰 갈 수 있는 교육감이란 인식을 만들어 준데 있다. 실제 서울시 기초단체장이나 시의원 선거에서 새정치연합이 압승한 점을 본다면 박원순 시장의 파괴력이 교육감 선거도 어느 정도 흔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시점에서 조희연 캠프가 박원순 시장의 대표적 공약인 친환경 무상급식을 전면에 내세우고 정책협약도 내세우면서 야권 표 결집의 토대를 만들었다.

민주진보 성향 표 결집의 징후는 문용린 교육감이 교육부장관 시절 광주 5.18 행사 차 내려가 룸싸롱 술판을 벌였다는 과거 기사가 네티즌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하면서도 나타났다. 재선에 도전하는 문 후보의 과거 행위가 대선과 함께 치러진 교육감 선거에선 전혀 나타나지 않았지만 이번엔 터진 것이다.

분노한 시민들, ‘가만히 있으라’는 한국 교육에 근본적 변화 요구

이렇게 민주진보 결집의 토대가 여러 개 만들어지자마자 터진 고승덕 후보 딸의 폭로 글은 조희연 아들의 글과 대비되면서 강력한 반전 포인트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조희연 후보가 근 40% 가까운 지지율을 얻은 것은 선거 막바지까지 지지자를 결정하지 못한 부동층을 확실히 흡수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고승덕 후보에 몰려 있던 민주진보 성향 표가 최대한 조희연 후보에게 결집하면서 가능했다.

또한 조희연 후보 승리의 선거 공학적 배경 외에 전국적으로 진보성향 교육감이 압도적으로 당선된 배경도 살펴봐야 할 주요 지점으로 꼽힌다. 세월호에 분노한 민심과 진보교육감들의 교육 혁신에 대한 신뢰가 잘 맞아떨어져 압도적 승리가 가능 했다는 것. 분노한 3-40대 엄마들의 표심이 ‘가만히 있으라’고 만 가르치는 학교에 근본적인 교육을 변화시킬 후보로 진보교육감을 선택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세월호로 안전 문제가 크게 부각되면서 새누리당과 가까운 보수 교육감들에 대한 심판론도 작동했다고 봐야한다.

한편 전교조는 이날 논평을 통해 “혁신교육과 교육복지, 평등교육을 표방한 진보교육감 후보들에 대한 지지가 높게 나타났다. 1기 진보교육감 당선자 6명의 2배에 달하고, 17개 교육감의 3분의 2에 달하는 대거 당선”이라며 “이른바 현 진보교육감 지역에서는 혁신적 교육정책의 안정적 정착을, 현 보수교육감 지역에서는 혁신적 교육정책을 추진할 인물을 기대한 결과로 해석된다”고 분석했다.

또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비호하고, 살인적인 입시교육과 특권교육을 키워온 박근혜 정권과 달리 혁신학교와 무상교육 확대, 자사고 등 특권교육 폐지 등 반경쟁 교육복지를 표방한 교육감들의 공약들에 대한 학부모, 교사, 시민들이 손을 들어준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교조는 이어 “세월호 참사로 교육에 대한 국민적 성찰도 교육감 선거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며 “입시위주의 학력을 강조하거나 철지난 색깔론을 앞세운 교육감은 외면 받은 반면, 경쟁이 아닌 협력교육을, 탐욕이 아니라 생명 등 교육의 본질적인 가치를 강조하고 근본적인 교육변화를 강조한 교육감들이 지지를 받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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