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파 세모녀 죽음 이후 100일, 빈곤문제를 진단한다' 토론회가 11일 늦은 2시, 조계종 노동위원회 주최로 조계사 템플스테이에서 열렸다. |
이른바 ‘송파 세모녀 사건’이 발생한 지 100일이 지났다. 두 딸은 신용불량과 건강 악화로 일을 할 수 없었고, 그나마 생계를 책임지던 어머니도 갑작스럽게 팔을 다쳐 일할 수 없게 되자, 생계 곤란에 내몰린 세 모녀가 결국 지난 2월 26일에 동반 자살하는 비극을 겪은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복지 사각지대 문제의 심각성이 사회적으로 크게 부각됐다. 이에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부랴부랴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각종 대책을 쏟아냈다. 복지부는 지난 3월 복지 소외계층 전국 특별조사를 진행했고, 새정치민주연합은 창당 1호 법안으로 ‘세모녀법’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이런 대책들은 과연 실질적인 효과들을 만들어 냈을까? 이에 조계종 노동위원회는 송파 세모녀 사건 100일을 맞아 이러한 정부 대책을 평가하는 토론회를 11일 늦은 2시에 조계사 템플스테이에서 열었다.
이날 토론회의 발표자들은 모두 정부의 사각지대 해소 대책이 실질적인 효과가 없는 미봉책에 불과했다고 입을 모았다. 나아가 정부가 빈곤을 사실상 방치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면서 빈민을 범죄 피해자로 몰아넣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 2012년 일제조사 홍보 포스터와 2014년 일제조사 홍보 포스터. 사용된 이미지와 문구까지 전혀 바뀌지 않았다. |
사각지대 일제조사, 2년 전 대책 ‘재탕 삼탕’
먼저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사무국장은 복지부가 3월에 실시한 ‘복지 소외계층 전국 특별조사’는 처음부터 한계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복지부가 이번에 내놓은 대책은 사실상 지난 2012년 이른바 ‘화장실 삼 남매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내놓은 ‘복지 사각지대 일제조사’ 계획과 거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김 사무국장은 2012년과 2014년 정책 홍보 포스터의 이미지까지 같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정부가 사실상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아무런 정책적 노력도 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올해 복지부의 일제조사 결과 발표를 보면, 7만 4천 명의 복지지원 신청 중 지원이 완료된 것은 전체의 33%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전체 지원 완료자의 70%에 달하는 1만 6천 명이 민간자원으로 연결되었다.
김 사무국장은 “민간자원은 사실상 지원이 한시적이어서 언제 끊길지 알 수 없는 것”이라며 “긴급복지, 기초생활보장 지원 완료자는 단 6천7백 명에 그쳤다. 홍보나 일시 민간지원 연계의 땜질이 아닌 안정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복지가 버린 빈곤, 범죄가 접수하다
홈리스행동 이동현 상임활동가는 “정부의 대책은 사각지대의 면적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사각지대를 구분 짓는 기준을 모호하게 하는 것”이라며 “대표적인 것이 이번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악 시도에 담겨 있는 최저생계비 개념 해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방식은 지난 2004년 신용불량자 수가 400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늘어나자 정부가 ‘신용불량자’라는 용어 자체를 폐지하고 개인채무 대책에서 사실상 손을 뗀 것에서도 볼 수 있다”라면서 “정부가 복지를 ‘빈곤 해결’이 아닌 ‘빈곤을 활용한 정치’의 수단으로만 삼고 있다”라고 성토했다.
이 상임활동가는 “빈민들에게 복지가 제공되지 않을 때 빈민들은 다른 줄을 찾게 되는데, 그 줄은 독지가의 선행이기보다 범죄의 시작점”이라고 지적한다. 즉, 요양병원 강제입소, 염전 등 섬 지역으로의 인신매매와 강제노동, 명의도용 범죄와 같은 각종 범죄의 피해자로 내몰린다는 것이다.
그는 요양병원 강제입소의 경우 의료적 필요도가 낮음에도 사회경제적 이유로 입원하는 현상이라며, 이는 사실상 “복지가 담보해야 할 것을 의료에 전가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특히 요양병원은 환자 수에 따라 수익이 보장되는 ‘일당정액제’에 의해 운영되므로 노숙인의 강제입소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숙인의 경우 이미 사회적으로 일탈자, 예비범죄자 등으로 낙인 찍혀 있는 상태여서 실제 자신이 범죄 피해를 당해도 피해를 호소할 기회조차 박탈당한 상태에 놓여 있다. 이 상임활동가는 “실제 홈리스행동이 지난해 조사해 본 결과 조사에 응한 홈리스 중 72%가 범죄피해 사실을 누구에게도 토로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상임활동가는 “이러한 문제가 홈리스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라면서 “지자체가 제공하는 생활안정자금도 없고, 서민금융을 위해 만들어진 새마을금고 같은 기관은 사실상 금리장사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다수 빈곤계층은 이런 범죄 피해자로 내몰릴 가능성이 농후하다”라고 지적했다.
▲ 홈리스행동 이동현 상임활동가(좌),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사무국장(가운데), 빈곤사회연대 장진범 정책위원(우). |
“‘일자리를 통한 빈곤 탈출’은 허구”
그렇다면 복지 사각지대 문제의 바람직한 대안은 무엇일까? 지금까지 정부에서 내놓는 대책은 대개 ‘일을 통한 빈곤 탈출’을 목표로 ‘일자리 창출’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빈곤사회연대 장진범 정책위원은 기존 통계자료 분석을 통해 이런 정책 목표가 허구라고 비판했다.
장 정책위원은 지난 2010년 국토해양부가 실시한 ‘주거실태조사’ 자료를 제시하면서, “(반)지하 거주자 중에서 가장 많은 비율인 28%가 월 평균소득 101~199만 원 사이 구간에 분포한다”라고 제시했다. (반)지하 월세방에 살던 송파 세모녀도 바로 이 구간에 속해 있었는데, 이들은 일반적으로 아무리 일을 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노동빈민‘(working poor)에 해당한다.
또한, (반)지하 가구의 연령분포는 지상 가구와 비교했을 때 연령별 분포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는데, 반지하·옥탑·고시원에 사는 인구 비중은 노동가능 연령대인 40대(27.2%)가 가장 높았고, 노인의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즉 주거빈곤에 한정해서 보면, 노동하지 않는 것과 가난은 직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장 정책위원은 “실상을 들여다보면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일을 해 왔다”라면서 “정부는 일자리만을 강조하는 복지 정책에서 벗어나, 송파 세모녀처럼 당장 주거비 문제에 허덕이는 이들의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해 줄 방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발제자와 토론자의 발표가 끝난 후 이어진 청중 토론에서 한국빈곤문제연구소 류정순 소장은 “이동현 상임활동가가 발표한 빈민들이 범죄 피해자화 되는 문제는 사실상 복지 영역에서 발생하는 세월호 참사라고 생각한다”라면서 “이러한 실태에 대한 심도 있는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며, 여기에 조계종 노동위원회 같은 단위가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면 한다”라고 제안했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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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철 기자는 비마이너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비마이너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