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27년간 일상적 주야맞교대로 얻은 질병 ‘산재인정’

“근로복지공단, 노동부 ‘고시’ 기준으로 협소하게 해석해 불승인”

법원이 27년간 주야 2교대 근무를 하다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노동자에 대한 산재를 인정했다. 일상적인 업무를 수행해 왔더라도 주야 2교대제는 신체에 부담을 주는 만큼, 업무와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는 판결이다.

앞서 근로복지공단은 해당 산재신청 건에 대해 고용노동부 고시를 근거로 불승인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법원은 고용노동부 고시와 비교해 야간노동에 대한 산재인정 범위를 넓히며 공단의 산재불승인이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단독 정지영 판사는 지난 17일, 기아자동차 노동자 박 모 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요양 급여를 지급하지 않기로 한 처분을 취소하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박 씨는 지난 1985년 기아자동차에 입사해 27년간 주야 2교대 근무를 해왔다. 1일 10시간 노동으로, 1주일씩 주간과 야간을 맞교대해 근무하는 방식이다. 그는 생산라인에서 부품 세팅과 용접 등의 일을 하다 이후에는 품질 문제 발생 시 대응 업무 등을 수행했다.

그러다 지난 2012년 9월, 공장 체력단련장에서 급성 심극경색으로 쓰러졌으며 같은 해 12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근로시간과 관련한 산재인정 기준인 고용노동부 고시에 미달해 ‘질병과 업무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며 불승인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재판부는 “27년 동안 해온 교대근무는 인간의 생체리듬에 역행하고 신체에 많은 부담을 주는 근무형태이며, 야간 근무는 스스로 업무를 조절하거나 수면시간을 확보할 수 없다”며 “업무와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므로 요양급여를 주지 않기로 한 근로복지공단의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로 근로복지공단과 고용노동부가 현실에 맞지 않는 협소한 산재인정 기준을 대폭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인 유성규 노무사는 18일, SBS라디오 [한수진의 SBS전망대]와의 인터뷰에서 “근로복지공단은 고용노동부 고시와 지침을 산재인정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데, 공단이 고시 내용 중 근로시간 중심의 개량화된 기준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하는 경향이 있다”며 “박 씨의 경우도, 공단이 1주 근무시간이 60시간, 4주를 평균으로 1주 근로시간이 64시간을 넘겨야 한다는 고용노동부 고시에 미달한다는 이유만으로 불승인 판정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근로복지공단은 고용노동부의 고시 내용을 합리적으로 해석해 유연하게 적용해야 하는데, 문구 중심의 계량화돼 있는 기준으로 협소하게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다. 때문에 이번 사건처럼 상식적으로는 과로에 해당하지만 고시의 획일적 기준에 미달한다며 잘못 판단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 노무사는 “근로복지공단의 과거 태도를 볼 때, 이번 사건도 항소할 거라고 판단하고 있다. 공단은 그동안 법원의 판례를 수용하지 않고 동일한 불승인 사례를 만들어내면서 산재 노동자와 가족들이 경제적, 정신적 피해를 당해왔다”며 “공단은 패소했을 경우 판례를 즉각 수용해 내부 지침을 판례에 맞춰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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