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평리에 건설 중인 북경남송전선로 23호기 송전탑. |
30분을 쉬지 않고 노래한 스카웨이커스 덕분에 할머니들은 웃음을 찾았다. 그리고 이들은 삼평리에 다시 평화가 찾아오길 바라며 장승 앞에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굽혔다. 근대의 산물인 전기와 송전탑 앞에서 전근대적이라는 이유로 사라져만 가던 장승과 이를 향한 시골 주민들의 기도는 근대적 국가 대 사람의 싸움을 드러냈다. 근대는 자연을 극복의 대상이라며 산과 들을 파헤치다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냈다. 반면 전근대는 자연을 두려워하고 함께 모시고 살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 어느 것이 발전인가.
고향땅인 시골마을로 들어온 삼평리 주민 빈기수 씨는 오늘만큼은 활짝 웃었다. 어쩌면 그가 이른 나이에 다시 고향땅으로 돌아가 농삿밥을 먹기 시작한 것은 제 입맛에 따라 노동에 가격을 매기는 근대자본주의에 어울릴 수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삼평리에서 할머니들의 싸움의 뒤를 지켰고, 묵묵하게 제 땅을 일구며 살아가고 있다. 송전탑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울리기 쉽지 않았을 노동운동 활동가들과 막걸리를 나누어 마시며 장승을 짊어졌다. 그의 뒤로 청년과 노동자들이 장승을 짊어졌다.
은사시나무는 23호 송전탑을 가리기 위해 잎을 파르르 떨며 애를 썼다. 그렇지만 송전탑은 가려지지 않았고, 은사시나무는 더 구슬피 울기 시작했다. 땅과 나무,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낸 퍼포머 성광옥 씨의 몸짓을 보던 이들은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감추었다. 실은 애초부터 23호 송전탑 공사를 막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삼평리 주민과 도시의 연대자들은 하나의 감정을 공유했다. 생명과 평화, 평등은 쉽게 오지 않겠지만, 불가능성에 대한 도전이라는 몸짓과 마음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할머니들의 투쟁에 가려 있었지만, 올라가는 송전탑을 바라보는 삼평리 주민 배성우 씨의 뒷모습을 보라. 그는 장승 앞에서 신나게 웃었고, 막거리를 단숨에 마셨다. 그는 눈물을 잠시 훔쳤지만,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주민 이억조 씨가 공사장 앞에서 '삼평리에 평화를'을 외쳤다. 근대적 폭력과의 싸움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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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용길 기자는 뉴스민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뉴스민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