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활동보조인노동조합이 23일 노들장애인야학 배움터에서 활동보조인 증언대회와 토론회를 연 모습. |
지난 6월 27일 최저임금위원회는 2015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7.1%(370원) 오른 5580원으로 결정했다. 임금이 오른다는데 마다할 사람은 없겠지만, 활동보조인에게는 이 소식이 반갑지만은 않다. 최저임금의 인상이 임금 저하, 노동 기회 박탈 등으로 이어지는 장애인활동지원제도의 문제 때문이다.
활동보조인노동조합(아래 활보노조)은 23일 늦은 1시 30분 노들장애인야학 배움터에서 활동보조인 증언대회와 토론회를 열고 현행 활동지원제도에서 활동보조인 노동조건과 최저임금의 관계 등에 대해 논의했다.
#최저임금 인상과 활동보조 수가 동결, 활동보조인 노동 조건은 악화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보장하는 활동보조사업은 시범 사업을 거쳐 2007년부터 시행되었고, 2011년 10월부터는 장애인활동지원제도로 제도화됐다. 장애인이 활동지원서비스를 신청하고 심사를 통해 시간을 받으면 등급별 시간만큼 바우처(사회복지서비스 이용권)를 받을 수 있다.
현재 보건복지부(아래 복지부)는 활동보조인의 고용, 활동지원서비스 제공 등을 장애인자립생활센터 등 중개기관에 위탁하고 있다. 따라서 복지부는 장애인 이용자가 바우처를 쓰면 활동보조 수가(酬價) 8550원(2014년 기준)에 활동보조인이 일한 시간을 곱한 금액을 중개기관에 지급한다. 중개기관은 수수료(법적으로는 25% 미만이나, 대부분 중개기관이 25%로 책정)를 제외하고 시간당 6412.5원을 활동보조인에게 준다.
또한 활동보조인은 중개기관 소속 노동자로 일하므로, 중개기관은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하는 주휴수당(유급 휴일에 받는 수당), 연장근로수당(하루 8시간 근무 초과 시 받는 수당. 시급의 1.5배) 등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각 중개기관은 활동보조인에게 시간당 6412.5원에서 최저임금만큼 기본급을 주고, 차액으로는 추가 수당을 지급하는 방식(포괄임금제)으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있다.
그러나 내년 최저임금이 인상되면서 중개기관이 활동보조인에게 수당을 지급하지 못하는 상황이 예상된다. 활보노조는 현재 활동보조인이 한 달에 휴일을 제외한 23일간 하루 9시간씩, 총 207시간 일하면 132만 7387.5원을 받는다고 밝혔다. 이는 현행 최저임금은 130만 5105원보다 높다.
그러나 내년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근로기준법상 최저임금을 계산하면 139만 7790원이다. 활동보조 수가가 동결된다면, 중개기관은 근로기준법을 지키기 위해 활동보조인에게 7만 402.5원을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표 1>)
따라서 활동보조 수가 이외에 수입원이 없는 중개기관은 활동보조인의 노동시간을 제한해 수당을 최대한 줄이게 된다. 이미 일부 중개기관은 지난해 8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복지부의 공문에 따라 활동보조인 노동시간을 월 208시간으로 제한한 바 있다. 올해 들어 재정 압박이 심해진 몇몇 중개기관은 160시간까지 노동시간을 제한한 상태다.
내년에는 주휴수당이 적용되지 않는 주 14시간까지 노동시간을 줄여야 활동보조인에게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지급할 수 있다. 이에 활동보조인들은 노동시간이 줄어들거나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친다.
▲ 2015년 최저임금을 적용했을 때 1일 근무시간별 실 월급과 최저임금의 차액 그래프. ⓒ활보노조 |
#활동보조인 노동권 보장 위한 장기적 대안 필요해
이날 토론회에서는 활동지원제도가 바우처 제도로 운용되면서 활동보조인 노동권과 중개기관의 열악한 운영 상황은 고려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또한 활동보조 수가 인상 등 단기적 해결책뿐만 아니라 활동보조인 노동권 보장을 위한 장기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발제자로 나선 활보노조 전덕규 조합원은 “활동보조인의 열악한 노동조건은 활동지원제도 운용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고려하지 않는 정부, 행위자들의 권리를 무시한 채 시간당 금액으로 (활동보조 수가를) 일괄적으로 지급하는 바우처 제도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전 조합원은 “예산을 짜는 정부 입장에서는 이러한 제도가 편리하지만, 중개기관의 운영상 문제나 활동보조인의 권리는 무시된다”라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기적 방편은 활동보조인의 수가를 올리는 것이나, 수가를 올려주는 것만으로 정부가 책임을 다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근본적으로 바우처만 지급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정부의 무책임한 사고방식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 조합원은 “장기적으로는 정부가 책임지고 중개기관을 직접 운영해야 한다. 활동보조인에게 안정적 일자리와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직접 고용 월급제를 시행해야 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활동보조인 또한 제도를 운용하는 데 중요한 주체임을 인정하고, 제도개선위원회에 활동보조인을 포함하는 등 제도적 창구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광진자립생활센터 김주현 소장은 “현재의 바우처 금액으로도 포괄임금제를 적용한다고 해도 연차수당 등은 지급하기 어렵다”라며 “중개기관은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중개기관을 날릴 수 있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정부의 지침에 순응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이용자나 활동보조인의 부정수급을 더욱 악랄하게 감시하는 것은 정부가 아닌 중개기관이 되어버리곤 한다.”라고 토로했다.
김 소장은 “내년에도 수가가 동결된다면, 중개기관은 장애인 이용자들의 반발로 활동보조인의 노동시간을 제한하긴 어렵다. 따라서 노동시간은 적당히 줄이면서 수당을 깎거나 없애는 식으로 갈 것”이라며 “정부는 이런 상황을 어느 정도 묵인할 것이며, 이는 중개기관에 더 큰 족쇄가 된다”라고 설명했다.
김주현 소장은 “수수료를 제외한 바우처 단가 전액을 기본급으로 하고, 연차수당을 포함한 나머지 수당은 별도로 지급해야 한다”라며 “한정된 예상으로는 대상, 시간 확대의 문제와 단가 인상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에, 예산 확보가 시급하다”라고 강조했다.
사회공공연구소 제갈현숙 연구위원은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수요자 중심주의에 입각한 바우처 제도다. 현 바우처 체계에서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의 임금, 고용 형태, 고용조건을 고려할 수 없다.”라며 “서비스 제공 노동자들은 서비스 제공 단가만을 급여로 받게 된다. 더욱이 이러한 노동자들을 공적 네트워크로 관리하기보다 중개기관을 설치해 시간당 단가의 일부는 중개기관 운영비용으로 충당하는 구조가 된다.”라고 설명했다.
제갈현숙 연구위원은 “사회적 돌봄서비스의 공공성을 강화하려면 노동자를 어떻게 대우할 것인가가 중요할 것”이라며 “수가를 올린다고 해도 불용 예산이 많다면 쓸모가 없다. 활동지원제도는 관리가 편한 바우처 제도를 고수할 것이 아니라, 근본적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복지부 장애인서비스과 임예슬 사무관은 활동지원제도 개편 방안으로 △중개기관 수익금 활용 선순환(노동 환경 개선을 통한 서비스 질 향상) 유도 △상근직 활동보조인 확보 △수급자 맞춤형 다수 활동보조인 연계 △활동보조 수가 단계적 인상, 수가 체계 개선 방안 연구 △서비스 난이도에 따른 가산금 지급 △이용자 교육 강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임 사무관은 “복지부의 방안 중 제일 핵심적인 것은 활동보조 수가의 단계적 인상"이라며 “활동보조인이 요양보호사와 임금차이가 있는데, 인건비와 운영비 단가를 분석하고 예산 근거를 튼튼히 할 생각이다. 또한 다른 돌봄 사업과 형평성을 고려해 수가 인상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활동보조인 “활보 노동 과도하게 감시”, 복지부 “부정수급 막기 위한 방책”
한편 이날 토론회 질의응답 시간에는 복지부가 활동보조인을 과도하게 관리, 감시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활동보조인들은 복지부에서 중개기관에 활동보조인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공문을 수차례 발송하고, 노동시간 초과 시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의 사유서를 제출하도록 했다며, 임예슬 사무관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임 사무관은 “복지부에서 노동시간을 제한하라는 공문을 내린 적이 없다. 다만 이 공문이 노동시간 제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은 알고 있었다.”라며 “하지만 중개기관에서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민원이 많았다. 고용노동부에 문의한 결과 근로기준법을 지키도록 안내하는 게 맞다는 회신이 와서 그렇게 했던 것”이라고 답변했다.
의정부에서 활동보조를 하는 ㄱ조합원은 “활동보조 노동 문제가 갈수록 좋아져야 하는데, 항상 더 감시를 받는 느낌이다”라며 “지금은 일지(활동보조서비스 소급결제 제공 기록지)에 뭘 했는지 다 쓰게 하는데, 왜 이렇게 감시하는 데만 그렇게 열을 올리는지 모르겠다”라고 토로했다.
이에 임 사무관은 “원래 소급결제는 인정돼야 한다. 하지만 소급결제에서 이상 결제 비율이 높은 것도 사실”이라며 “예산은 한정돼 있는데 부정수급이 발생하면 올바른 제도 발전에 무리가 있다. 일지를 쓰는 것은 현장에서 부정수급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의견이 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전덕규 조합원은 “자기가 일했던 것을 기록해서 수당을 받는 것과 잠재적으로 범죄자 취급받으며 부정수급 안 했다고 증명하는 건 또 다르다”라며 “또한 평가기준으로 여겨질 만한 것들을 복지부에서 자꾸 제공하는데, 중개기관은 복지부에 열심히 일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지침에 없는 것까지 기록하라고 한다”라고 비판했다.
임 사무관은 “복지부가 중개기관을 평가해 예산을 주는 건 사실이 아니다”라면서도 “다만 현장에서 일지를 지나치게 자세히 작성하게 하는 건 바로잡겠다”라고 밝혔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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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홍식 기자는 비마이너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비마이너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