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장애인들, '시외 이동권 보장!' 버스 탑승 시도

고속버스 1875대, 시외버스 7643대 중 저상버스 0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2일 서울, 대구 등 전국 10개 주요 버스터미널에서 동시다발로 버스 타기를 시도했다. 사진은 서울 지역에서 버스 타기를 시도하는 모습.

추석 연휴를 앞두고 전국에서 장애인들이 국토교통부, 버스운송사업자 등에 시외 이동권을 보장하라며 '버스 타기'를 시도했다.

지난 2005년 제정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아래 이동편의증진법)에는 장애인 등 교통약자들이 모든 교통수단을 차별받지 않고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동편의증진법이 제정된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장애인 이동권은 아직도 열악하다.

그중에서도 장애인의 시외이동을 위한 환경은 절대적으로 열악한 실정이다.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에 의하면 올해 6월 현재 고속버스 1875대, 시외버스 7643대가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이 중 저상버스 또는 휠체어 리프트를 장착한 버스 등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버스는 단 한 대도 없다.

이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2일 서울, 광주, 대전, 대구 등 전국 10개 주요 버스터미널에서 고속버스 및 시외버스 장애인 접근권 보장을 위한 전국 동시다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동시다발 기자회견에서는 장애인들이 서울 30매, 수원 20매, 대구 50매 등 전국에서 146매의 버스표를 구매해 탑승을 시도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장애인도 버스를 타고 전국 각지를 이동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하며, 국토교통부와 버스운송사업자에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버스를 도입하라고 촉구했다.

  늦은 2시 서울남부터미널 승객 대기실에서 열린 시외버스 이동권 보장 촉구 기자회견

서울 지역에서는 늦은 2시 서울남부터미널에서 시외버스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장애인 활동가 등 5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최강민 사무총장은 “이동편의증진법에 의하면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게끔 되어있으나, 아직도 장애인들이 리프트 차를 빌리지 않으면 지방에 자유롭게 가기 어렵다”라며 “그나마 기차가 다니면 이동할 수는 있지만, 기차가 다니지 않는 곳이 더 많다. 버스로 3시간이면 갈 길을 기차 타고 6시간 걸려 가는 경우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강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박현 소장은 “남부터미널을 처음 와 봤다. 시외버스와 고속버스를 타지 못하니 터미널에 올 일도 없다.”라며 “2001년부터 장애인 이동권을 외쳐왔지만, 왜 아직도 장애인은 시외버스 타는 것을 고민조차 못 하는가”라고 성토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김재왕 변호사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의하면 운송사업자들은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정당한 편의제공을 할 의무가 있다. 국토교통부와 지방자치단체도 저상버스 도입을 위해 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배정해야 한다.”라며 “저상버스는 시내버스뿐 아니라 시외버스, 마을버스, 광역버스에도 모두 도입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서울 지역 참가자들은 늦은 2시 40분께 버스 승차장으로 이동해 늦은 3시께 서산, 태안, 청주 등 6개 행선지로 향하는 버스를 탑승하려 했다. 몇몇 전동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참가자들은 휠체어 채로 탑승을 시도했고, 한 장애인 참가자는 휠체어에서 내려 버스 계단을 기어 올라갔다.

그러나 참가자들은 장애인 탑승 설비가 갖춰지지 않아 버스에 탈 수 없었다. 이에 남부터미널 관계자가 나와 “현재 탑승 설비가 없어 여러분들의 탑승이 어렵다. 죄송하다.”라고 사과하기도 했다.

40여 분 동안 버스 타기를 시도하던 참가자들은 늦은 3시 20분께 정리 집회를 끝으로 버스탑승 행사를 마쳤다. 이어 늦은 3시 30분경 전장연 대표단이 서울남부터미널운수사운영회(아래 운수사운영회) 관계자들과 20여 분 동안 면담을 진행했다.

면담 결과 전장연과 운수사운영회는 대폐차 시외버스 전부를 저상버스 등 장애인 탑승 가능한 버스로 도입하는 등 버스운송사업자들이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국토교통부에 건의할 것을 합의했다.

한편, 경기도 수원에 70여 명, 충북 청주 50여 명, 대구 100여 명 등 전국 각지의 버스터미널에서도 장애인들이 모여 시외 이동권 보장을 요구했다.

이들도 기자회견을 마친 후 지역 버스운송사업자 대표들과 만나 면담을 가졌지만 대체로 저상버스 도입은 유지비가 많이 들어 힘들다는 등의 이유를 내세우며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전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 타기 행사를 한 장애인 참가자들은 전북버스운송사업조합 측에 면담을 요구했지만, 이들은 터미널에서 약 5Km 떨어진 사무실에 직접 와서 이야기하자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들 조합 사무실은 입구가 비좁고 4층에 위치하고 있어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전장연은 오는 4일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와 고속버스, 시외버스 저상버스 도입 등을 두고 면담을 진행할 예정이다. 또한 오는 5일에는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추석을 맞아 고향으로 가는 장애인들이 재차 버스 타기를 시도할 계획이다.

  휠체어를 탄 채로 버스 탑승을 시도하는 최진영 소장.

  이규식 소장이 시외버스 계단을 기어올라가고 있다.

  전장연 대표단과 운수사운영회가 늦은 3시 30분경 면담을 진행했다.
덧붙이는 말

갈홍식 기자는 비마이너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비마이너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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