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몸집이 작아서 일을 정말 잘해요.”
체구가 자그마한 최도섭 씨는 조선소에서 일을 한다. 마르고 아담한 몸이라 일을 하기 좋다는 것은 조선소의 특징을 반영한 말이다. 거대한 배는 작고 큰 철 구조물인 ‘블록’을 연결해 만든다. 작업자들은 블록이 만들어낸 크고 작은 공간에 들어가 일을 한다. 사람 하나 비집고 들어가기 힘든 공간도 많다. 몸이 작은 그가 다른 작업자들보다 유리한 건 그 때문이다.
더불어 조선소 하청 일만 십여 년 째. 현대중공업으로 와서는 신화ENG라는 하청업체에서 9년을 일하고 있다. 숙련공이다. 그 자신의 표현대로라면 ‘기량’이 높다.
“보면 어떻게 자세를 취하면 되겠다가 나오거든요.” 일 잘하는 그가 배에서 내려오면 하청업체 반장이 엄지를 치켜든다. ‘최고다.’ 그럼 그는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고 엄지와 검지를 맞붙여 동그랗게 만든다. 우리가 흔히 ‘돈’을 표현할 때 쓰는 손 모양이 그의 대답이다.
‘일 잘한다고 말만 말고 돈을 올려 줘.’
시급 8천원짜리 기능공인 도섭 씨는 동그라미를 만든 손을 두어번 흔들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그는 ‘죄인’이기 때문이다. 2010년, 그에게 큰 사고가 있었다.
죄인으로 사는 까닭
원청인 현대중공업에서 손이 모자란다고 해서 파견을 나간 날이었다. 날짜도 기억한다. 3월 15일. 일을 하는데 커다란 고철덩어리 블록이 그를 치고 갔다.
“크레인으로 블록을 옮기는 데 신호수가 관리를 잘못한 거고, 대형물을 옮길 때는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하는데 안 한 거고. 크레인하고 자재를 연결하는 와이어 훅이 있어요. 블록이 들어올리다가 한 쪽이 많이 들려서 훅이 풀려버린 거죠.”
균형을 잃은 블록이 그에게 날아왔다. 골반 아래쪽 뼈가 으스러졌고, 장이 파열됐다.
“황당한 것이 뭐냐면, 중공업 안에 구급차가 있잖아요. 구급차를 안 불러주고. 자재 싣는 포터가 있어요, 화물트럭. 거기에다가 저를 족장 판때기 위에 싣고 그것도 정문으로 안 나가고 다른 문으로 빠져나간 거죠. 정문으로 나가면 안전관리과에서 알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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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민주노총 울산본부] |
현대중공업 안전관리과에서 아는 순간, 산업재해로 기록이 된다. 원청은 산업재해 문제를 싫어한다. 하청업체는 다음 계약도 현대중공업에서 따내어야 한다. 원청에 인원투입하는 일이 전부인, 파견업체와 다를 바 없는 업체에게 원청과의 계약 여부는 존폐의 문제다. 그러니 산재를 숨기려 했다.
“부상이 너무 심해서 대학병원으로 갔는데, 업체 관리자가 유도를 하더라고요. 집 2층에서 굴러 떨어져서 다쳤다고 해라. 저는 너무 아프니까 혀가 굳어져서 말이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도 욕을 했어요. 그 상황에서 의료처치는 아무것도 안 하고. 내가 장에서 피가 흘러내리는게 느껴지는 상황인데, 30-40분 동안 아무것도 없어요”
그가 “살려달라”고 굳어가는 혀로 외치는 옆에서 신화ENG와 현대중공업 관리자는 한동안 수군거리더니, 담당의사와 이야기를 나눴다. ‘집에 가보니 그가 다쳐 있더라’. 도섭 씨는 작업복을 입고 있었고, 시커먼 얼굴에는 마스크를 쓴 자국이 선명했다.
“담당과장이 한참을 가만있더만, 이건 안 된다. 회사에서 다친 거 분명한데 왜 거짓말을 하냐. 우리 병원에서 못 받는다. 그러니까 회사에서 솔직히 이야기를 하고. 그러자마자 의사들이 달려 들어가지고 진통제 준 거예요.”
그렇게 그는 살았다. 보름의 수술기간 동안 ‘누워 똥오줌을 다 뺐고’ 그러고도 2년 가까이 병원 신세를 졌다. “골반 쪽 4번 신경이 끊겼다면서 장애등급을 받았죠. 19개월 동안 병원에서만 계속 생활을 했습니다. 그럼 살림을 누가 했겠습니까. 자녀를 둘이나 키우고 있는 상황에서 안 되잖아요. 빚이 늘어나더라고요.”
산업재해의 결과였다.
죄인으로 사는 까닭2
끔찍했던 날. 피 흘리는 자신을 두고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했던 관리자들 얼굴을 제대로나 볼 수 있을까 했는데, 그럼에도 도섭 씨는 회사로 돌아오고자 했다. 그에게는 가족이 있었다. 다친 몸으로 새로운 일을 찾는 것은 어려웠다. 그러나 회사는 말했다. “당신은 다쳤기 때문에 조선소 일에 적합하지 않다. 나가서 맞는 일을 해라.”
해고였다. 일을 계속 할 수 있다는 의사 소견서까지 받아 보여주었지만, 업체는 단호했다. 아무래도 그의 부상이 ‘산업재해’로 등록된 까닭인 듯했다.
“이거는 저 뿐만이 아니고, 현대 중공업 안의 재해자들이 다 겪고 있는 문제예요.”
원청도 하청도 산재를 싫어했다. 법대로 산업재해를 신청하게 두었다가는 감당할 수가 없을 것이다. ‘살짝 스쳐도 전치 2-3주, 넘어지기만 해도 중대재해’인 곳이 조선소라 했다. 온갖 고철과 용접불꽃, 흄과 유독 연기, 몇 십 미터 지하작업과 고층작업이 공존한다. 그런 곳에 각기 작업을 하는 하청업체들이 난립한다. 게다가 이곳의 최대 목표는 제 시간 안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사고가 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지경이다.
그럼에도 산재는 용인되지 않는다. 사고를 없애기 힘들다면, 사고를 숨겨라. 도섭씨는 이러한 조선소의 법칙을 어겼다. 그가 해고 통보를 받은 이유이다.
“너무 억울하고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출근을 했습니다.”
그는 무작정 현대중공업으로 갔다. 출입증이 가지고 있지 않으니 문 앞에서 붙잡혔지만, 곧 공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의 출입증이 ‘살아있던’ 터였다.
“내 출입증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준 거죠. 산재요양 기간 동안 다른 사람이 쓰고 있었던 거예요. 그게 들통날까봐 회사가 4일 만에 저를 부르더라고요.”
약속한 ‘공기(공사기간)’ 내 작업을 끝내는 것이 최대 목표인 조선소는 ‘물량팀’이라는 단기 기능공들을 들인다. 일정한 분량의 일을 외부에서 팀을 꾸려와 하고, 그 일이 끝나면 사라진다. 이들은 정식으로 채용된 것이 아니니 출입증이 없다. 안전관리는커녕 인원파악도 되지 않는 그들이 현대중공업에 들어오는 일 자체가 불법이다.
그러나 아침이 되면 조선소로 가는 길목에 쪼그려 앉은 무리들을 본다. 업체가 ‘가라(가짜) 출입증’을 들고 오길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조선소 내 불법은 암묵적이고 만연하다. 두섭 씨가 다쳐 요양을 받던 2년 동안 그의 출입증도 물량팀 누군가의 ‘가라 출입증’이 되었다.
“최도섭 씨는 근태도 좋고 일도 오래 했으니 봐준다.” 문제가 될 것 같으니, 업체는 해고를 없던 일로 했다. 그렇게 업체에 들어갔다. 일당도 깎였다. 이것이 그가 ‘죄인’으로 살게 된 과정이다.
저를 두 번 죽이는 겁니다
“잔업을 시킬 때, 못 한다 그러면 그 말이 꼭 나와요. ‘형님은 산재했기 때문에 다른 데 갈 수 없다. 그러니까 시키는 대로 해라’.”
관리자도 하고, 동료들도 한다. 농담 섞어 하는 말이지만, 아프다. 그나마 회사로 돌아온 후, 해고, 왕따, 협박은 있지 않으니 다행이라 생각해야 한다. 조선소에서 산업재해자들이 발붙일 수 있는 곳은 별로 없다.
회사로 인해 장애를 가지게 된 것은 두섭 씨인데, 죄인도 그이다. 그와 가족의 밥줄인 고용을 회사가 쥐고 있는 터다. 하지만 말로 표현되지 않는 마음은 이러하다.
“저는 신화ENG에서 한 번 죽은 거예요.” 그런 그의 업체가 이번에 폐업을 한다고 했다. “저를 두 번 죽이는 겁니다.”
어느 날, 사장이 직원들을 모아놓고 자기가 늙어 몸도 아프고 회사 경영도 어려워 폐업을 한다고 발표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회사를 청소하고 다니는 사장이었고, 월급 한 번 밀린 적 없는 회사였다. 납득할 수 없는 폐업조치에, 짚이는 것은 하나였다. 동료들은 그를 힐끔거렸다.
도섭 씨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조합에 속해 있었다. 노동조합의 요구로 신화ENG는 사내하청 노동조합과 하는 단체교섭 자리에 두 차례 나오기도 했다. 교섭 기간 중 폐업.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으나 빤한 일이었다.
“사람들이 말은 안 해도 어느 정도 인식을 하는 거예요. ‘아, 저 사람 때문인가 보다.’ 시선 자체가 그렇죠.” 그래도 그는 형편이 낫다. 다른 업체에 있는 조합원은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직원들에게 불려갔다고 한다. “네가 노동조합을 하면 우리 업체가 폐업된다. 너 때문에 여기 사람들 일자리를 다 잃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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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민주노총 울산본부] |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들 사이에서 노동조합 활동은 곧 업체폐업과 해고를 의미했다. 이러한 인식을 만든 것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10년 전부터 현대중공업은 조합원이 있는 업체에 숱한 폐업을 강행하며, 보여주었다. 노동조합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조선소 노동자 10명 중 6명이 사내하청인 현실이지만, 노동조합에 가입된 하청노동자는 손에 꼽는다.
이런 사정을 아니, 주변에서는 두섭 씨가 답답하다. 산재를 입어, 더 이상 다른 업체로 갈 수도 없으면서 노동조합을 놓고 있지 않는 게다.
“친척들도 그래요. 하지 마라. 이거 해서 형님이 남는 게 뭐가 있냐.” 내가 보아도 그를 기다리는 것은 생활의 고단함이다. 그도 안다. 빚은 늘어만 간다. 늘 살 궁리를 해왔다. 그만치 살아가는 것이 위태로웠다.
“하청노동자는 자본가들에게 모래 알 하나 밖에 안 되잖아요. 손가락 까닥만 해도‥‥‥”
손가락 한번 튕기면 모래알은 흔적 없이 날아간다. 올해 산재로 사망한 9명의 조선소 하청노동자가 그랬고, 지난 10년 업체폐업·해고·폭력으로 인해 조선소를 떠난 노동조합 사람들이 그랬다.
“그 모래알 같은 우리 하청노동자들은 억울해도 어디 가서 하소연 할 수도 없어요. 그런데 하청노조가 제대로 있다면, 이 억울한 하청노동자들이 여기 다 모일 거라고 생각해요. 투쟁, 이런 거 잘 몰라요. 아는 딱 한 가지는 내가 하청노동자라는 거. 그래서 ‘언젠가는 당한다. 언제까지 당할 수 없다’.”
언젠가는 날아갈 모래알의 운명이라, 지금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당한다. 언젠가는 당할 일,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신화ENG는 노동조합이 요구한 경영실적 공개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건강악화라는 사장은 여전히 회사를 청소하고 다니고, 심지어 신입사원 2명을 더 뽑았다. 도섭 씨와 노동조합은 ‘위장 폐업’을 주장하며 아침 선전전과 지역 집회 등을 치러나가고 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조합은 몇 해 째 출근하는 하청노동자들을 상대로 아침 선전전을 진행해 왔다. 이에 그가 합류한 것이다.
언제까지나 당할 수는 없어
그가 맞서 싸운 덕분인지 업체폐업이 한 달 뒤로 연기되었다. 어쩌면 현대중공업이 정규직 노동조합과의 임금단체협상을 끝내고 업체폐업을 추진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유가 실제 무엇이든, 그는 싸우며 때로 웃기도 한다. 그러다 말한다.
“제가 웃고 있지만 머릿속 반은 늘 걱정이죠.”
머릿속은 늘 걱정인 사람들이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조합에 무수히 존재한다. 정범식이라는 하청노동자는 에어호스에 목이 감겨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산재를 인정받지 못했다. 자살이라고 했다. 그의 유족들이 진실을 밝히라며 싸우고 있다. 최근에는 한 조합원이 산재요양 이후 복직을 거부당하고 있다. 별스러운 일이 아니다. 언젠가는 당할 일들이다.
그리고 언제까지 당할 수 없어,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조합은 ‘노조활동 보장’ ‘근로기준법 준수’ ‘비정규직 노동조건 차별 금지’ 등의 요구를 내걸고 조합원이 소속된 10여개의 하청업체와 단체교섭을 진행 중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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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울산저널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