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이 글을 재게재한 <립컴>은 세계적 반자본주의 사회운동을 조명하는 온라인 매체며 이 글에 대해 홍콩 “우산 운동”에 대한 직접 조사에 기초하여 배경과 한계 그리고 맑스주의적 전망을 분석한 글이라고 전했습니다. “나오”는 <립컴>에서 중국에서의 계급투쟁을 전하고 있고 “몰수, 착취와 배제에 맞선 소농, 노동자들과 실업자들의 반란을 위한 프롤레타리아 문제아들을 옹호한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1편:[홍콩 우산운동] 미래 없는 세대의 등장(바로가기 클릭)
2편:[홍콩 우산운동] 포스트 천안문, 반중국 감정과 계급운동의 굴곡(바로가기 클릭)
두 번째, 현재ㅡ우산을 들자4
이 항구 파업은 “우산 운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선례다. 현재 점거 시위대는 의심할 나위 없이 똑같은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파업노동자들처럼, 그들은 시민사회에 호소하느냐 아니면 경제적 방해를 심화하느냐라는 질문 사이의 교착 상태에 있다. 운동 내부의 분열이 이를 나타낸다. 보다 젊은 시위대 다수는 “사랑과 평화의 오큐파이 센트럴” 지도부 그룹을 반대한다. 찬킨만 교수는 렁춘잉 행정장관이 사퇴하면 봉쇄를 끝내자고 했다가 강한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그들[센트럴 지도부]과 동일한 젊은 사람들은 아무런 재산상의 손실도 일어나지 않아야 하고 경찰이 공격할지라도 맞서지 말아야 한다면서 민주주의, 보통 선거권과 비폭력에 관한 대중적 언어를 앵무새처럼 흉내낸다.
▲ 비폭력을 행사하고 민주주의를 위해서만 싸우자고 제안하는 벽보 [출처: Ultra-com.org(이하 같음)] |
굽실거리는 “예의 바름”의 정신은 시위대를 불모지에서 오가지 못하도록 위협한다. 경제적 방해가 운동에 힘을 부여할 수 있지만 - 많은 이들이 사유 재산을 해하는 것을 무례하다고 간주하기 때문에 시위는 결국 아무 것도 이뤄낼 수가 없다. 결국 이런 방식의 시위는 정부의 방관 속에서 고사되거나 행정관 사퇴와 같은 작은 양보만 이루게 될 것이다. 다수가 이 난제를 알고 있지만, 이들은 동일하게 깡패 선동가들5이 이 섬을 군사 점령하는 데 편리한 구실을 만들어 베이징으로부터의 명령을 도발할 목적으로 이 상황을 고조시킬 수 있다는 (소문이 있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여기에는 흥미로운 모순이 있다. 시위에 잠재된 민족주의는 “홍콩인”으로서의 경찰은 동맹이자 잠재적인 미래 참여자들로서 간주하는 반면, 군사 개입은 - 그것이 경찰과 동일한 전술을 사용하더라도 - 일반적으로 거부한다. 이는 결국 베이징의 군사적 간섭이 문제라기 보다는, 군대 자체가 베이징의 직접적 명령 아래 있는 본토인들로 구성될 것이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시위대에게, 이는 어떠한 종류의 논리적인 모순도 나타내지 않는다. 많은 이들은 확고히 경찰과 싸우거나 체포에 저항하는 것은 역효과를 낳는다는 입장인 반면, 군대에 저항하기 위해 폭력 전술을 사용하는 것은 완전히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 몽콕의 한 바리케이드 |
▲ 몽콕 시위대가 방치된 대중교통버스에 메시지를 적어 붙이고 있다. 이 버스는 1978-1981년 중국 민주화 운동의 '서단민주장'과 관련해 '민장(민주주의 벽)'이라고 불린다. |
▲ 몽콕의 또 다른 바리케이드 전면에는 현재 경찰의 진입을 막기 위한 용도로, 2대의 차량이 주차돼 있다. 지난 3일 추가된 차량 1대는 쉽게 치워지지 못하도록 바퀴를 아예 빼놓았다. 당시까지, 점거자들은 구급차와 소방차가 지나가야 할 때마다 이 바리케이드를 열었었다. 하지만 지난 2일 애드미럴티에서 경찰은 시위대가 구급차를 위해 바리케이드를 개방하자 이를 이용해 점거 공간에 진입해 고무탄과 최루가스를 투입했고 이후 시위대는 이 차량의 바퀴를 빼버렸다. |
포퓰리스트의 관점은 모든 충돌의 기원을 인종, 민족적 기원 또는 단순히 이민자 신분 등 외부의 문제로 뒤바꾸면서 민중의 내부적 적대에 대한 인식을 가로 막는다. 그러한 포퓰리즘이 우세하면, 그들은 시위대 일부의 반란, 재산 파괴 그리고 심지어는 “무례함”이 “외부인”의 - 이 경우에는 본토인 - 소행이라고 언제나 처럼, 최소 그들이 일반화할 때까지 계속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파업은 즉시 기존 사회 내부의 계급적 적대를 가시화하기 때문에 그러한 포퓰리스트의 논리를 깨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몽콕의 또 다른 바리케이드 전면에는 현재 경찰의 진입을 막기 위한 용도로, 2대의 차량이 주차돼 있다. 지난 3일 추가된 차량 1대는 쉽게 치워지지 못하도록 바퀴를 아예 빼놓았다. 당시까지, 점거자들은 구급차와 소방차가 지나가야 할 때마다 이 바리케이드를 열었었다. 하지만 지난 2일 애드미럴티에서 경찰은 시위대가 구급차를 위해 바리케이드를 개방하자 이를 이용해 점거 공간에 진입해 고무탄과 최루가스를 투입했고 이후 시위대는 이 차량의 바퀴를 빼버렸다.
현재의 이 운동만이 전진을 향해 난 드문 길이다. 많은 경로는 패배로 이어질 것이다. 행동을 하지 않으며 나타나는 전술적 정체로 인해 시위대는 보다 우연히 참가한 이들의 눈앞에서 물러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새로운 참가자들은 운동이 힘 없이, 단순히 표류하는 것 같다고 불평한다. 기껏해야, 반란은 한 번의 “사회 운동”으로 실패할 수 있다 - 불모의 광경은 가난한 사람들 보다는 장차 NGO 지도자나 정치인들을 잉태하는 시민사회의 판이 된다. 최악의 경우엔, 홍콩 민중 자신은 어떠한 통제력도 없이 인플레이션, 불평등과 궁핍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고 지속되는 체제에서 참여만 허용되는 일반 투표권을 얻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다6.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또 패배는 우익의 부활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극우가 이 시위를 회전시킬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경우, 이 운동 전체는 민족주의의 행로로 계속해서 미끌어져 들어갈 것이다. 현 “반란의 시대”에서 우익은 일반적으로는 대중에 잘 나타나지 않았지만, 현재는 활동력 없는 “레프티스트 프릭스7”를 공격하는 전단지와 말들을 뿌리고 다니고 있다. 이 운동 초기부터 노멀코어가 된 시민의 열정과 같은 그룹은 인종주의에 대해 다수가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들은 최근 몽콕 바리케이드를 지키는 조직원들을 “청색 리본[친중국시위대]”이 해산하려고 하면서부터 나타나고 있다. 이 상황은 우크라이나의 경험과 비참하게 유사하다. 극우는 서구 성향의 자본가 동맹을 위한 돌격대로 행동하고 있다.
▲ “청색 리본”이 지난 2일 해산을 시도하자 몽콕 바리케이드에 보강된 시민의 열정 회원의 작은 그룹. 경찰은 이들 간 다툼을 해결하도록 요청받았다 - 이 경우 바리케이드를 지키려고 한 세력은 주로 시민의 열정 회원들. 그들의 셔츠에는 영어로, “프롤레타리아”라고 쓰여 있었다. 극우 또는 “제3 위치자(third positionist)” 그룹[맑스주의나 자본주의 반대를 강조하는 혁명적 민족주의자. 네오파시즘, 민족아나키즘, 민족볼셰비즘 등을 말한다]가 좌파 용어를 일반적으로 찬탈해 쓰는 말과 같다.(ii) |
▲ 레프티스트 프릭스를 믿지 말라(iii) 해산(하게 하는 요청)에 바짝 경계하라 우리는 파티가 아니라 시민 불복종을 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우리가 원하는 것은 실제의 보통선거권이다!!! 노래방 반대 단체 촬영 반대 우리는 여전히 승리하지 않았다. 지도자 반대 소규모 토론 반대(iv) |
이것은 “민주주의”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패배는 결코 필연적이지 않다. 홍콩의 젊은이들은, 요즘 도처에서처럼, 그들의 미래가 약탈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들이 어떻게 이 위치에 처하게 됐는지 그리고 어떻게 반격할 수 있을 것인지를 알기 위해 애쓰고 있다. 작은 도시국가가 엄청나게 큰 본토 이웃으로 점점 더 통합되면서, 중국은 홍콩의 “미래”로 성큼 다가왔다8. 이는 청년세대에게 중국 또한 불길한 미래를 직감하게 하는 근원 중 하나라는 것을 의미한다.
젊은 많은 시위대는 운동사회가 활동하지 않는 것에 좌절하고 있지만 스스로를 위해 무언가를 하기에는 고립돼 있고 무능력하다고 느낀다. 이는 특히 밤에 그런데, 분노한 그리고 헌신적인 젊은 사람들은 보다 많은 규모로 나오지만 이들이 함께 협력하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인다. 보다 중요하게는, 이 시위대는 그들의 분노를 “민주주의”와 “보통선거권”의 언어로 번역하는 경향은 있지만, 경계를 넘어 주강델타 공장 노동자들과의 동맹을 찾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범민주파의 전문용어가 이 운동의 공통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 자체는, 많은 이들에게 자유 “민주주의”와는 거의 관련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 사실, 대부분의 토론에서 실제로 원하는 것은 빠르게 다른 지형으로 점프해 들어갔다. 만약 그들의 목표가 무엇이냐고 질문한다면, 많은 이들은 앵무새 같은 대답을 말할 것이다 - 이는 사회적 계층과 다양한 연령을 가로질러 믿을 수 없는 정도로 한결같다. 하지만 그들이 이러한 것들을 왜 원하는가라고 강조해서 물으면, 많은 시위대는 즉시, 단순히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인 문제로 점프해서 말한다.
사람들은 천정부지의 임대료와 비인간적 수준의 불평등, 식료품비와 교통비 인플레이션 그리고 사회의 기층에 있는 방대한 이들은 간단히 무시하는 정부에 대해 한탄한다. 자유발언대에 선 한 사람은 “왜 홍콩에 부자는 한 줌이고 가난한 사람은 그리 많은가? 우리에게 민주주의가 없기 때문이다!”라며 공통된 - 그러나 간단하게 잘못된 - 주장을 했다. 많은 이들은 - 자유민주주의가 사실 그리스 또는 미국과 같은 곳에서 어떻게 기능했는지에 대해 지독하게 빈곤한 지식으로 - 언젠가 그들은 자신의 지도자들을 “선출”할 수 있을 것이고 이들은 인플레이션, 빈곤과 금융 투기의 광범위하게 퍼진 문제들을 해결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민주주의는 그 결과 일반 투표 제도를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를 고안하기 위한 논의 보다는 모든 사회적 질병을 낫게 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의 한 종류로 다뤄지고 있다.
▲ 중년의 한 남성(원래 홍콩 출신이지만 수십 년 동안 해외에서 살다가 친척을 방문하기 위해 돌아온)은 코즈웨이 베이 바리케이드 앞에서 사진 촬영을 했다. 그의 좌측에는 “민주주의”라는 말이 있다. (그의 뒤에는 “레프티스트 프릭스”에 반대한다고 경고하는 또 다른 포스터가 있다.) 그는 시위대가 교통과 사회 질서를 방해하는 데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지만 경찰이 시위대에 대해 너무 많은 최루가스를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지금 1989년 스타일의 유혈사태가 뒤따를 것이라고 걱정한다. |
하지만 포퓰리스트와 민주주의에 관한 환영 모두는 불안정하게 될 수 있다. 점거운동이 보다 포괄적인 사람들에게로 확산되면서, 새로운 참가자들은 그들 자신의 요구를 바리케이드로 가져오고 있다. HKFS 대표단을 포함해 원래 자유주의적 학생들 일부는 점점 더 이것 때문에 불만스러워 하고 사람들에게 보통선거권 요구에 집중하라고 독려하는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인터뷰 참가자들은 이 운동이 “혼란”스러워 지고 선거개혁을 위해 투쟁하기 보다는 학생들을 공격하는 경찰에 맞서 저항하는 새 시위대의 많은 이들에 “잠식”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새 요구들은 선거 요구의 범위를 넘어서도록 밀어붙이며 실제로 이 운동을 다시 점화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 운동을 발의한 이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계급 계층이 합류하기 시작하면, 이는 잠식이라기보다는 이 운동을 나아가게 하고 힘을 증폭시키는 일종의 위상 변화에 관한 신호다.
▲ 사람들에게 “한 지점”에 머물 것과 선거 개혁을 넘어서는 것들에 대한 요구 중단을 촉구하는 벽보 |
한 가지 주목해볼 사실은 증가하는 노동자들의 참여다. 상대적으로 작은 홍콩노총은 1일(중국 “국경일”) 총파업을 주관했고, 최소 일부 노동자들이 이 제안에 따랐다. 항구 파업에 참가했던 여러 명의 항구 노동자들도, 또 다른 항구 파업은 “불가능”한 것처럼 나타나지만, 시위대를 지지하며 시위에 참가했다9. 하지만 거리 점거 운동이 계속 성장하면서, 몽콕 같은 주거지에서는, 다른 노동자 참가의 개연성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총파업으로의 점거의 확대는 포퓰리스트의 공론에 의문을 제기할 뿐 아니라 운동의 배타적인 정치적 요구 둘 다를 본질적으로 불안정하게 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예를 들면, 항구 노동자들이 2번째 파업을 발의한다면, 노동자의 일상과 젊은 세대의 미래를 약탈하는 데 대한 리자청과 다른 홍콩 자본가들의 역할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이 갈등을 본토 중국인들에게로 미루는 것은 단순히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홍콩 내부의 이 계급 적대는 점점 더 부정할 수 없게 될 것이며 시위는 미래를 향해 보다 위험하고 동시에 희망적으로 그들 자신의 저항을 향한 길을 찾아 나설 수 있을 것이다.
태풍
침사추이는 현재 점거됐지만 우익 세력이 강하다는 소문이 있다. 바리케이드는 쇼핑몰 밖에 세워졌고 군중은 어렴풋한 크루즈 유람선의 형상 아래로 이 운동의 미래를 토론하면서 우산 아래에서 옹송거리며 모여 있다. 우익은 크루즈 선박이 이제 본토 자본가들로 꽉 찼다고 과장하지만 좌익은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한다. 광둥어로 사랑노래를 부르는 그 소녀는 이제 사라졌고 아마도 어딘가에서 관광객 안내 가판과 교통 표지판으로 바리케이드를 짓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노래는 이제 사람들의 희망의 형태로 빈 버스들과 비에 젖은 정부 청사들을 감아 도시 전체로 확대되고 있다.
태풍이 도래하고 바다는 격정적으로 출렁인다. 이제 이 크루즈 유람선이 얼마나 더 오래 꿈쩍하지 않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어 보인다. 유람선의 부유한 사람들, 본토 등 다른 이들은 보이지는 않지만 경찰의 저지선과 흰 벽 뒤에서 조용히 앉아 있을 것이다. 부두가 점거된다면 이 항구는 어떻게 될까? 예의라는 홍콩의 비참한 노예근성, 이 운동의 근시안적 요구와 격렬한 포퓰리즘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이것[우산운동] 뒤에, 홍콩은 이제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현재의 상황을 지탱할 가능성은 더 이상 없다. 이 사실은 오히려 이 운동에 잠재성이 있다는 것을 확신시킨다. 이 운동이 패배할지라도 말이다.
태풍은 본디 혼돈 상태의 존재다. 이 섬이 범람되면, 상황은 더 악화될 수 있다. 하지만 이 혼란은 또 특정한 약속을 지닌다. 현 상태의 파괴는 순전히 파멸 이상은 아닌 이 수평선 위 한 가닥의 가능성을 사멸시킨다. 아마도 사람들은 비 속에서도 어떻게 앞으로 항해해 나갈 것인지 배우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비가 심지어 수년 간 계속 온다 해도, 사람들에겐 우산이 있다.
- 한 미국의 과격파와 몇몇 익명의 친구들
[각주][4] 마지막 몇 부분에 있는 정보 다수는 인터뷰 및 정치 분파를 조사한, 우리가 현장에서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직접 조사를 통해 구성됐다. 우리가 만났던 사람들 중 일부는 초기 학생 휴업에 참가했었다. 다른 이들은 경찰의 진압 후 참가하기 시작했다. 직접 조사로 취합한 정보의 우수함으로 인해, 이들 섹션은 종종 링크나 인용구 없이, 인터뷰 인용부호만을 포함해 제공될 것이다.
[5] 홍콩에서, 조직된 갱 중 많은 이들은 현재 홍콩 정부와 협력하며 베이징의 이해에 기여하는 “애국적”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는 일반적으로 진실이 아니다. 베이징이 후원하는 폭력배 선동대에 관한 소문은 바리케이드를 세우기 위해 시위대와 협력한 몽콕 갱단에 대한 보도에 맞서 급증했다.
[6] 물론 향후 홍콩 민주주의가 궁극적으로는 개혁주의 정치의 한계를 넘어서는 한 방식을 통해 계급 적대가 소생될 수 있을 정치적 공간을 만들 것이라는 주장에 뭔가 있을 수 있다 - 이는 본질적으로 (우리가 모을 수 있는 한) 레프트21[홍콩의 한 좌파조직]과 같은 일부 그룹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솔직하지 못한 입장이다. 기본적으로 망상을 좀 더 지속하도록 하고 적대에 대한 인식을 무한정 연기시키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적당한 시간”으로 행동을 연기하는 것은 단순히 전적으로 행동을 반대하는 한 방법이다.
[7] 이는 문자 그대로 “좌교(左膠)”, “레프트 페니스”라는 광둥어로 (거의 볼 수 없는) 소규모 좌파 그룹들 보다 범민주파 지도부에 대한 것이다. 膠은 문자적으로 플라스틱을 의미하지만 또 膠와 음경에 대한 보다 공통된 완곡어인 구(鳩) 간 발음의 유사성 때문에 음경을 의미하는 데 사용된다(문자적으로는 멧비둘기를 의미하지만). “레프티스트 프릭”이란 말은 지난 하루 또는 이틀 만에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이 도시의 모든 주요 점거 지역에서 반복적으로 들을 수 있다. 심지어 좌파들도 범민주파에 대해 좋은 의미의, 짧은 욕으로 이를 사용하고 있다. 이 용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본질적으로 나쁜 것은 아니다 - 일부 민감한 좌파들은 필연적으로 잔뜩 화를 내지만 - 문제는 보다 우익 스스로가 이 운동의 전체에 의해 수용된 슬로건을 주조하고 알리고 있다는 데 있다. 이 슬로건이 (또는 미학이거나 전술 등 무엇이든) 일반화되면, 이는 우익을 사실상의 지도적 위치에 앉히게 되는 것이다.
[8] 1997년 중국 정부에 대한 영국 식민정권의 홍콩 반환은 아시아 금융위기와 동시에 일어나면서, 중국 또한 이 위기가 홍콩에 일으켰던 경제 침체에 불합리하게 연결됐었다.
[9] 그것은 애매모호하지만, 그러나 “1만 파업 노동자”라는 주장이 어떤 현실적인 근거를 지니든, 국경일은 우선 전국적인 휴일이어서 노동자들은 일하러 갈 필요가 없다. 쉬는 날이었기 때문에, 휴일에 많은 이들은 단순히 점거운동에 참가했다. 하지만 이는 “파업”은 아니다.
[나오의 주](i) 이 버전에서 누락된 출처와 배경 정보 일부는 Ultra-com.org 이 링크를 참조하라. 우리는 이 버전의 사진 캡션 중 일부를 수정하고 완성했다.
(ii) 비슷한 사건이 좌파, 아나키스트와 다른 지역 주민들이 바리케이드들을 지켰던 곳에서 발생했다. 몽콕의 일부 급진파는 이러한 종류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지역의 소규모 상인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고자 하는 캠페인을 추진했었다. 그들은 시민의 열정의 접근을 문제적으로 생각한다.
(iii)어디에나 있는 벽보의 또 다른 버전: “레프티스트 프릭스”를 “비밀요원(臥底)”이라는 용어로 바꿔 기록했다.
(iv)“소그룹토론”은 많은 홍콩 시위와 사회 운동 내의 특정한 우파와 좌파에 의해 조직된 합의를 모색하는 토론 서클을 말한다.
[원문]Ultra-com.org
http://libcom.org/blog/black-yellow-hk
[게재]2014년 10월 3일
[번역]정은희 기자
[기타]:[]는 번역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