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법재판소 최후변론에 나선 황교안 장관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이날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오후 2시에 열린 최후 변론엔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직접 나섰다. 또 양측 대리인인 검찰과 변호인단 역시 치열한 법리 논쟁을 벌였다.
황교안 장관은 주로 보수 언론과 보수단체들이 주장하는 종북 색깔론 정서에 기반한 통합진보당 활동을 부각했다. 반면 이정희 대표는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활동이 헌법정신의 민주와 평등의 가치 실현을 위한 것이었다는 데 초점을 맞추며 논리를 전개했다.
황교안, “평양 원정출산, 김정일 애도 방송 하던 사람 비례 후보 내세워”
황교안 장관은 “통합진보당 해산은 헌법을 파괴하려는 세력으로부터 국민의 안전과 국가의 존립을 지키기 위한 헌법적 결단”이라며 “우리 선조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절부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보장되는 나라를 꿈꾸어 왔고, 분단과 전쟁의 모진 시련 속에서도, 북한 공산세력에 굴하지 않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굳건히 지켜 냈으며, 자유민주주의는 대한민국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생래적 DNA”라고 밝혔다.
이어 “'진보적 민주주의', '민중주권주의'라는 미명하에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세력이 정당의 탈을 쓰고 활동하고 있다”며 “과거 주사파 지하조직에서 출발한 이들은, 정당에 침투하여 불법과 거짓으로 조직을 장악하였고, 마침내 통합진보당을 북한 추종세력의 본거지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황 장관에 앞서 최후 변론을 진행한 검찰 측은 통합진보당의 전.현직 주요 당직자 대부분이 주사파 지하조직인 민혁당 잔존 세력으로 여전히 폭력혁명을 꿈꾸며 통합진보당을 치밀하게 장악해 왔다고 주장한 바 있다.
황교안 장관은 특히 어린 시절, 매일 국기에 대한 경례를 했던 기억을 거론하며 감정적 호소를 이어갔다. 그는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다가도 국기에 대한 경례 방송이 나오면 차렷 자세를 하고 경례를 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자유 대한민국, 늘 생각해 왔습니다. 국제경기대회에서 태극기가 게양되고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 느끼는 가슴 뭉클한 감동은 우리 모두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태극기가 우리 국기가 아니고, 애국가가 우리 국가가 아니라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정통성이 없다고도 합니다. TV 토론에서도 북한의 3대 세습체제가 옳으냐고 물으면, 대답하지 않습니다. 왜 사상을 검증하느냐고 말합니다. '이제는 태극기가 우리나라 국기가 맞고, 애국가가 우리나라 국가가 맞다' 이렇게까지 설명해야 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라고 했다.
이어 “초등학교 반장 선거에서도 하지 않는 대리투표가 통합진보당에서 벌어졌다”며 “그런데,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들 한다. 대리투표가 잘못되었다고 지적당하자, 멱살잡이를 하고 집단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기까지 했고, 신성한 국회의사당 한가운데 최루탄이 등장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통합진보당 대리투표나 한미 FTA 국회 비준 저지를 위한 최루탄 가루 투척은 통합진보당 위헌성과는 큰 상관이 없다. 통합진보당이 주요행사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는 것도 국기에 대한 경례에 담긴 전체주의적 요소에 대한 상징적 반대이지만, 보수세력은 색깔론을 자극하는 양념처럼 버무려왔다. 보수단체들은 최종변론 기일이 진행되는 동안 헌법재판소 앞에에서 “통진당은 국기에 대한 경례도 거부하는 집단”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 보수단체들은 헌법재판소 앞에서 집회를 열고 통합진보당 해산을 촉구했다. |
심지어 황 장관은 “조직에 있어서도, 헌법가치 부정세력들이 비민주적인 방법으로 주요 당직과 당내 의사결정 기구를 장악한 상태”라며 “평양에서 원정출산을 하고, 상복 차림으로 김정일 애도 방송까지 하던 사람을 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내세웠다”고 말해 전날인 24일 조선일보가 색깔론을 자극하며 대서특필한 황선 당원 사례를 적극 소개했다.
황 장관은 “통합진보당의 해산과 관련해 반드시 고려할 점은 북한 공산집단의 위협과 도발에 노출되어 있는 우리의 냉엄한 안보 현실”이라며 “간첩으로 처벌받은 자를 핵심간부로 세우고 투사로 미화하는 정당, 북한 공산집단의 핵무기를 용인하고, 3대 세습 독재에 눈을 감는 정당, 해산위기에 직면하여 급조한 당대회에서 조차 태극기와 애국가를 끝내 거부하는 정당, 이것이 지난 1년 동안 헌법재판관 여러분과 저희가 이 자리에서 함께 확인한 통합진보당의 충격적인 실체”라고 강조했다.
황 장관은 “통합진보당의 '진보적 민주주의'가 실제로 추구하는 것은 용공정부 수립과 연방제 통일을 통한 '북한식 사회주의'의 실현이며 강령도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한 북한의 대남혁명전략을 그럴 듯하게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시대착오적인 북한 독재세습 정권을 추종하는 세력들로부터 대한민국과 헌법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라고 호소했다.
황교안 장관은 마지막으로 작은 개미굴이 둑 전체를 무너뜨린다는 뜻인 '제궤의혈(堤潰蟻穴)'을 소개하며 “통합진보당이 정당으로 존재하는 한, 국가와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으며, 정당해산의 방법이 아니고서는 종국적인 국가안보의 확보가 불가능하다”며 “이 사건은 단순히 한 정당을 해산하느냐 마느냐의 차원을 넘어 우리의 국가 미래를 결정할 분수령이 될 것이며 우리 후손들에게 자유와 번영의 미래를 물려줄 것인지, 억압과 굶주림의 고통을 짊어지게 할 것인지가 달려 있다”고 호소했다.
이정희, “헌법에 대한 신뢰가 진보정치의 버팀목”
황 장관이 색깔론에 기반한 반 통합진보당 감정에 주로 호소한 반면 이정희 대표는 헌법에 대한 신뢰가 진보정치의 버팀목이라는 취지의 변론을 진행했다.
이정희 대표는 “저는 헌법을 우리 사회 다양한 의견의 공통의 출발점이자 구성원 상호간에 토론과 합리적 해결을 가능하게 하는 기준자로 본다”며 “헌법은 민주주의의 확장, 사회적 다원성과 정치적 다양성의 보장,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결사의 자유의 확대라는 방향을 제시하고, 이 방향으로 해석 적용됨으로써 헌법은 더욱 발전하며 권위를 높여간다”고 밝혔다.
이정희 대표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2항은, 노동자라는 이유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빨갱이라는 이유로, 온갖 배제와 소외, 차별이 버젓이 벌어지는 사회에서는 공문구에 지나지 않았다”며 “‘함께 살자,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절실하고 소박한 꿈을 가진 사람들이 민주노동당과 진보당을 만들고 지탱해왔으며, 이들의 꿈의 바탕에는 못 배우고 가진 것 없어도 빨갱이라고 손가락질 받아도 국민 모두가 다 같은 대한민국의 주인이라는 헌법 정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 최후변론을 앞둔 이정희 대표와 피청구인측 소송 대리인단 |
이정희 대표는 통합진보당 해산을 반대하는 노동자, 농민, 서민의 목소리가 담긴 영상을 상영하고, “영상에서 보신 것처럼, 진보당은 한국정치에서 소외되었던 사람들에게 있어 꿈을 실현할 통로이고 소망의 집결체”라며 “정부의 진보당 해산청구는 진보당의 존립이나 의원들의 지위를 좌우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닌, 노동자 농민 서민들의 정치적 의사표현의 권리와 투표의 권리를 완전히 빼앗겠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정희 대표는 정부의 위헌정당 주장엔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민주노동당과 진보당 국회의원으로서 제 의정활동의 원칙이자 출발점은 헌법정신의 구현이었다”며 “노동3권과 집회 결사의 자유를 비롯한 국민의 기본권 실현, 경제주체들의 조화롭고 균형잡힌 성장을 위한 국가의 경제정책 시행과 같이, 헌법규정을 법률과 정책에 실현시키는 일이 제가 한 일”이라고 소개했다.
기본권 관련 분야에서는 야간집회처벌조항 폐지를 담은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내는 등 기본권의 원칙적 보장을 주장했고, 경제 관련 분야에서는 헌법 제37조 2항의 비례원칙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법안과 정책을 고려했다는 설명이다.
이어 이 대표는 “민주노동당이 처음 등장할 때는 다소 파격적인 주장으로 관심을 모았다면, 이제는 그 법안과 정책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받아야 할 때가 왔고 그러자면 37조 2항 비례성 심사를 통과해야한다고 판단했다”며 “2008년 종합부동산세법 위헌판결 이후에도 저는 헌법재판소가 비례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한 요소만을 종합해 기존의 세수를 회복하는 개정안을 제안했다”고 강조했다.
이정희 대표는 “제가 정책위의장과 당 대표를 맡은 5년여 기간 동안 민주노동당과 진보당 의원의 이름으로 대표발의 된 법안은 모두 제 검토를 거쳤다”며 “그 과정에서 언제나 헌법 37조 2항을 잊은 적이 없고, 정당의 가장 중요한 활동인 법안 발의에 있어 법안이 위헌이라는 지적을 단 한 번도 받은 바가 없다”고 헌법 정신을 강조했다.
또 “오히려 헌법 11조 평등권 조항 정신에 따라 재벌 대기업에게 주어지는 과도한 세제감면을 없애 조세형평성을 높이자는 법안 등이 정부의 일관된 재벌 대기업 위주 경제정책에 밀려 무시당하는 위헌적인 상황을 감내해야했을 뿐”이라며 “위 기간 당의 모든 토론은 법안과 정책, 공약, 현안 대응, 통합과 연대방침문제로 채워졌을 뿐,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이니 식민지반자본주의론이니 그 어떤 혁명이론도 토론의 주제가 된 일이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정부는 현실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당이 낸 법안과 공약, 당이 벌인 선거운동에 대해서는 그 어느 것도 위헌이라고 하지 못하면서, 왜 당이 정립하지도 않은 혁명론에 의해 북의 조종에 따라 활동하는 위헌정당이라고 근거 없이 단정하는 것이냐”며 “당의 가장 중요한 활동을 총괄해온 제가 폭력혁명은 단 한 번도 시도도 준비도 논의도 한 적이 없는데, 왜 이 당이 폭력혁명을 벌일 것이라고 무단으로 추측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이어 “국정원의 위법한 정당사찰의 결과 만들어낸 내란음모조작사건이 무죄판결을 받았는데도 정당해산청구를 철회하지 않고 해산판결을 압박하는 정부의 행동은, 정부 스스로 민주주의와 헌법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정부는 정당해산을 청구하면서 진보당에 대한 온갖 의혹을 쏟아냈고 언론은 이를 증폭해 보도해 이것만으로도 상당수 국민은 진보당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되었고 당에 대한 지지와 신뢰는 크게 떨어졌다”며 “정부가 이에 더해 위헌정당해산판결을 얻어내려면 적어도 의혹과 추측, 추론이 아니라 확정된 증거에 근거해야 하지만 이 법정에서 나온 정부의 주장을 아무리 뜯어보아도 의혹과 추측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 주장의 핵심은 진보당이 연방제 통일을 이루고 나면 북한식 사회주의를 채택할 것이라는 데 있지만 근거 없는 추측”이라며 “'진보적 민주주의'의 연원이 김일성에게 있다고 주장하나, 누가 그 말을 먼저 썼는지 거슬러 올라가면 대한민국임시정부 김구 주석과 의정원이었음이 확인된다는 사료와 현대사연구자의 증언이 이 법정에 증거로 제출됐으며, 헌법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정부는 대한민국임시정부마저 김일성의 사주를 받은 집단으로 매도하려는 것이냐”고 반박했다.
이정희 대표는 종북공세를 기반으로 하는 색깔론에 대해서도 “보수언론과 종편은 진보당은 종북이라는 왜곡된 인상을 국민들에게 주입시켰고,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의 주요 수단도 역시 종북공세였다”며 “급기야 정부가 종북공세로 만들어진 그릇된 인상을 기반으로 삼아 강제해산청구까지 감행했다”고 꼬집었다.
이정희 대표는 “진보당의 지향인 자주 민주 평등 평화통일은 우리 자신보다 더 귀한 존재인 우리 아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길”이라며 “모든 국민이 나라의 주인으로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자는 이 지향은 헌법정신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고, 헌법은 이 방향에서 더욱 발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마지막으로 “개개인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것을 믿는다”며 “헌법재판소가 정부의 정당해산청구를 기각함으로써, 한국 민주주의의 진전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시고, 분단의 고통과 적대의식마저도 더 이상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해달라”고 호소했다.
▲ 최후변론에 앞서 통합진보당과 사회 원로로 구성된 시민사회단체들이 통합진보당 해산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