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전해투 방송차를 마치 공용차량이나 된 것처럼 사용해 왔습니다. 전해투 사람들이 없는데도 ‘차량은 어떻게 하죠?’하면 ‘전해투 차량 쓰죠’라는 말이 누구의 입에서나 자연스럽게 튀어나왔습니다. 전해투의 전설 같은 선배들은 그때마다 후배들의 무례한 청을 거절하지 않고 묵묵히 차량 지원을 해주셨습니다. 새벽이건 늦은 밤이건 가리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기륭전자가 중심이 된 ‘비정규직 법제도 전면폐기’ 오체투지 행진에서도 하루만 연대해 달라는 것이 꼬박 전 일정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전해투 백형근 동지가 그 방송차를 지키다 차 유리를 깨고 들어온 경찰들에 연행되어 구속되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해투 동지들은 이런 희생에도 단 한번도 우리를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전해투를 지키는 이들이 가야 할 길이라고 담담히 이야기합니다. 이어진 2차 쌍용차 오체투지 행진 때도 전해투 방송차와 동지들은 6일 내내 우리 곁에 함께 계셨습니다.
유성 희망버스의 진행차도, 현대차비정규직 투쟁 당시 지원차량도, 밀양 희망버스 지원차량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만민공동회 등 가두행진을 진행하던 때도 전해투 차량은 경계 없이 함께해 주었습니다. 일반 차량과 다르게 방송차량은 늘 고착과 연행을 각오해야 하는 길이었습니다. 2012년 대한문 분향소를 만들 때도 기습적으로 천막을 싣고 현장으로 뛰어들어 준 것은 전해투 방송차였습니다.
이렇게 알려진 투쟁에만 다니는 차가 아니었습니다. 한남운수, 롯데마트 주엽점 등 한 명, 두 명만 남아 투쟁하는 외로운 사업장 집회를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외롭고 처절한 현장을 다녀야 했고, 앰프 하나 없는 그곳을 지켜주었습니다. 며칠이 멀다하고 지역 투쟁사업장 연대를 다녀야 했습니다.
그렇게 십수 년 우리를 지켜준 전해투 방송차를 이제 그만 쉬게 해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합니다. 생각하면 수십 년 해고자 생활을 해 온 우리 전해투 선배님들께 잠깐의 휴식이라도 드려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데, 그것은 못하고 새로운 방송차가 다시 그분들을 태우고 씽씽 투쟁의 현장을 다닐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현대차 노조나, 기아차 노조나, 지엠대우차 노조에서 한 대 턱 내놔 주면 좋겠지만, 그렇게 손쉽게 구할 차가 아니라는 생각이랍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이 바퀴 한 짝, 전조등 하나가 되어 달리는 차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전해투가 그런 사람들의 조직으로 우뚝 서라는 참여와 관심, 응원의 과정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런 차를 한가롭게 내버려두면 되겠느냐고, 이제 다시 우리 노동자들의 소리가 필요한 곳으로 어서 가자고, 슁슁 달리는 노동자-민중 투쟁의 힘찬 엔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방송차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간 전해투 사무실은 모든 노동자-민중 연대 투쟁의 소중한 공간이 되어주었습니다. 2011년 한진중공업 희망버스를 시작하던 시절. 경찰들의 체포영장 발부 시기는 가까워 오는데, 희망버스 일을 하는 이들에겐 사무실 하나 따로 없었습니다.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에 얘기를 했지만, 안타깝게도 일상적으로 내줄 남은 공간이 없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나마 나온 이야기는 그때 막 꾸려져 민주노총 13층의 공간 하나 전체를 쓰던 ‘민중의 힘’ 사무실 책상 하나를 쓰면 어떻겠냐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반상근 근무만 하는 이의 책상이니 번갈아 써보라는 얘기였는데 잠깐 서럽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누구의 일인데 라는 서운함도 있었습니다. 거의 일상적으로 수십 명이 오가고 생활해야 하는 사무실이었습니다.
그때 마침 민중의 힘 사무실 건너편에 있는 전해투 사무실 문패가 보였습니다. 무작정 부탁했었습니다. 희망버스 공간이 필요하다고, 잠깐만 쓸 수 있게 해주면 안되냐고. 전해투에서는 무엇이든 써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5년여 동안 우리 모두는 무법의 세입자들이었습니다. 어느 때는 누가 공간의 주인인지도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그때마다 전해투 동지들은 그것이 전해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우리가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이곳에서 <비정규직 세상만들기 네트워크>의 온갖 사업이, 현대차, 밀양, 유성, 쌍용차, 재능, 보건복지개발원, 세월호 투쟁, 사이버사찰대응투쟁 등 온갖 투쟁들이 논의되고 준비되었습니다. 늘 조그만 사무실이 발 디딜 틈도 없었습니다. 컴퓨터도 서로 번갈아가며 써야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단 한번도 부딪치는 소리 없이 서로가 서로를 지키며 함께 살아온 5년여였습니다.
그 전해투가 다시 우리 모두의 앞에서 먼저 달려주는 전해투가 될 수 있도록 함께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투쟁하는 모든 노동자-민중의 선도 차량 하나를 우리가 함께 만들었다는 기쁨을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