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아닌 ‘잡무’, 무임금 강요당하는 ‘과도기 노동’ 청년 인턴

상시적 업무 인턴, 수습으로 대체...‘과도기 노동’ 제도 없어 악용만 빈번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청년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는 ‘과도기 노동’이 확산되고 있다. 상시적 업무를 인턴이나 수습으로 고용해 무급이나 저임금을 강요하는 형태다. 명목은 현장 교육을 통해 역량과 경력을 쌓고자 하는 것이지만, 교육은커녕 잡무를 강요하거나 정직원의 업무를 대체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28일 오전, 청년유니온은 국회의원회관에서 ‘과도기 노동의 청년착취 실태 증언대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 참여한 A씨는 전공을 살리기 위해 미술관 인턴을 경험했지만, 교육의 90%가 청소 업무였다며 울분을 토했다. A씨는 “미술관 인턴 경험이 전공을 살리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식대만 제공하는 2개월 무급인턴을 지원했다”며 “하지만 교육프로그램은 없었고, 청소와 설거지만 했다. 전공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교육적인 업무가 하나도 없었다. 90%이상 청소만 했다”고 밝혔다.


영화제 인턴을 경험했던 B씨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B씨는 “관련학과를 전공하지 않아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지원했다. 지원모집공고에 ‘임금 차후 협의’라고 기재돼 있었고, 면접이 끝난 뒤 40만 원을 준다고 했다”며 “인턴 당시 홍보팀에서 실습을 했는데, 사전에 교육도 없고 가르쳐 줄 사람이 없었다. 또한 계약직이나 정규직이 해야 할 일을 재정적 어려움 때문에 적은 임금의 인턴을 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2000년대 이후부터 ‘스펙 노동’의 일환인 청년 인턴십은 꾸준히 증가해 왔다. 청년 일자리 감소와 기업의 경력직 채용 현상 때문이다. 하지만 과도기 노동의 유형상, 인턴십과 관련한 명확한 제도가 없어 전체 규모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인턴 경험이 고용 효과를 높이는지도 확실치 않다.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인턴 경험과 고용 효과의 상관관계는 분명치 않은 반면, 스펙 제공을 명목으로 제대로 된 교육, 훈련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정직원이 수행해야 할 업무를 무급, 저임금으로 대체하는 성격의 인턴이 확산되는 추세”라고 지적했다.

‘정규직 전환’을 빌미로 인턴, 수습에 저임금을 강요하며 희망고문을 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는 소셜커머스 업체 ‘위메프’가 신입사원 11명을 ‘수습기간 종료’라는 명목으로 2주만에 일괄 해고해 논란이 일었다. 2013년에는 동부생명에서 영업 업무를 담당하던 최 모 씨가 정규직 채용 연계형 인턴과정을 수행하다 업무스트레스로 자살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특히 디자인이나 영화, 예술 등의 분야의 도제식 교육 시스템은 청년들을 저임금과 빈번한 해고로 몰아넣고 있다. 올 초, 패션노조가 (주)이상봉 디자인실에서 견습생 및 인턴에 10~30만 원의 임금을 지급하고 잡무를 강요하는 사례를 폭로해 사회적 논란이 일었다. 미용산업분야 역시 교육생이라는 명분으로 최저임금의 60%에 불과한 시급을 청년노동자에게 강요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민수 위원장은 “현장 전문가를 따라다니며 일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견습생, 스텝, 시대, 인턴 등 각 분야마다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교육생’들에게 잡무를 강요하는 양상은 영화, 예술, 디자인, 미용 분야 등 이른바 ‘도제식 교육’의 관행이 남아 있는 분야에서 특히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고등학교 실습생을 상대로 높은 노동 강도를 강요하면서 빈번한 산재사망 사고가 일어나고 있고, 대학 현장실습생 역시 최저임금의 36%정도에 불과한 임금을 강요당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연방대법원 판례와 노동부 고시를 통해 무급인턴 사용 기준을 마련해 놨다. 프랑스도 수습(인턴)노동자의 권리보호를 위한 법률을 제정했지만, 한국은 인턴과 같은 과도기 노동에 대한 제도가 갖춰져 있지 않다. 노무법인 동인의 이상훈 노무사는 “인턴과 현장실습생은 개념상 노동자로 보지 않는다. 경력 쌓기의 일환으로 교육과 연수, 훈련을 목적으로 하며, 장기간 근로를 목적으로 일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서 “하지만 현실은 인턴, 훈련생, 교육생, 현장실습생이라는 외피를 쓰고 수습계약처럼 실 근로를 시킨다. 사용종속관계에서 사업주의 업무 지시를 받고 회사에 근로를 제공한다”며 “이들과 같은 과도기 노동의 경우에도 최저임금 적용은 물론 노동자로서의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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