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뉴스민] |
‘게이’라는 이유로 부당해고, 체불임금 미지급...각종 폭력에 시달려
한 지방 대도시에 사는 이 모(23)씨. 그는 지난해 10월, 아르바이트를 하던 식당에서 해고를 당했다. 회식자리에서 한 동료가 그의 성정체성을 폭로한 것이 발단이 됐다. 동료는 이 씨가 지난해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했다는 사실과 그가 ‘게이’라는 것을 강제로 알렸다(아웃팅). 동료의 이야기를 들은 사장은 회식을 하다말고 뜬금없이 이 씨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내일부터 나오지 마. 게이랑은 일 못해” 식당 사장 부부는 특정 종교를 가진 교인이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민망해질 만큼, 사장부부는 원색적인 혐오를 드러냈다.
사장은 이 씨에게 5개월간 밀린 체불임금도 주지 않겠다고 했다. 체불임금과 성적지향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 알 수 없으나 사장은 완강했다. “그 때부터 계속 식당을 찾아갔어요.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을 함부로 해고할 수 있느냐고 항의했고, 사과와 체불임금 해결 등을 요구했어요. 하지만 사장은 못 하겠대요. 사과든 뭐든 다요” 이 씨의 성적지향을 강제 아웃팅 한 동료는 이 씨에 대한 유언비어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동료는 식당에 한 남성을 데리고 와 ‘이 씨와 부적절한 관계 때문에 에이즈에 걸린 사람’이라고 소개를 했다. 그 남성은 이 씨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전혀 근거가 없는 얘기였고, 허위사실 유포였어요. 그 남자는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그 후로 저를 향한 사장의 혐오는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이 씨를 향한 사장의 언어폭력은 날이 갈수록 극심해졌다. “사장은 ‘변태성욕을 즐길 거면 자기 혼자만 즐기지 왜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느냐’, ‘면접 볼 당시 동성애자인 것을 이야기 했다면 너를 고용하지도 않았을 거다’, ‘이 일은 네가 자초한 일이다’ 등등의 언어폭력을 쏟아냈어요” 사장은 단골손님들에게 까지 이 씨가 게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했다. 소문은 소문을 낳았다. 결국 일이 터졌다.
어느 날 이 씨는 시내 한복판에서 식당 단골손님과 맞닥뜨렸다. 그 손님은 느닷없이 이 씨에게 돌멩이를 던졌다. 먹다 남은 생수를 뿌리고 병을 던지기도 했다. 북적이는 시내에서, 그는 이 씨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어떻게 그런 추악한 행동으로 에이즈에 걸릴 수가 있느냐’고. 당시를 회상하며 말을 이어가던 이 씨의 목소리가 얕게 떨렸다.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내가 뭐 하러 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물론 한 사람 한 사람 다 고소해 명예훼손으로 처벌 받게 하고 싶죠. 하지만 그만큼 시간과 비용이 들 수밖에 없어 대체로 대응을 안 하거나 무시를 해 왔어요.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가만두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씨는 지난해 12월, 한 집회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단체를 통해 소개 받은 노무사가 그의 체불임금문제 해결에 나섰다. 해당 지역 인권단체들의 도움도 받았다. 그제서야 이 씨는 사장 부부로부터 체불임금 일부인 200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200만원을 주면서 사장부부는 핸드폰 번호도 바꿨어요. 그런데 지난 주 금요일 경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어요. 사장이었어요. 갑자기 6월에 열리는 퀴어문화축제를 언급하며 ‘아직까지 정신을 못 차리고 사회에 악을 끼치고 있느냐’는 둥 ‘추태를 부리며 세상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둥 폭력적인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이 씨는 사장으로부터 부당해고와 언어폭력 등에 대한 사과를 받아낼 때까지 싸움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역의 노동조합과 이 씨가 가입한 알바노조, 지역 인권단체 등도 연대와 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성소수자들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전무한 조건에서, 그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싸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기자회견도 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내 정체를 드러내는 것이 아직 걱정스럽더라고요. 많은 사람들에 시선을 받는 것이 아직 두렵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부모님은 아직 제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계시거든요. 그리고 저도 노동자인데, 일을 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잖아요. 하지만 트라우마가 있다 보니 일을 못하고 있어요. 이 지역을 떠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직장 동료가 ‘호모포비아’...고용불안과 언어폭력 두려워
성소수자(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LGBT)도 노동을 하는 노동자다. 노동 현장에는 여성 노동자도 있고, 남성 노동자도 있고, 게이 노동자도 있으며 바이섹슈얼 노동자도 있다. 하지만 남성/여성이라는 전통적 젠더규범에 사로잡힌 노동현장은 성소수자도 노동자라는 사실을 지워버린다. 심지어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온갖 차별과 멸시, 해고, 폭력 등이 스스럼없이 가해진다.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은 전혀 갖춰진 것이 없다. 갖춰진 게 없으니 피해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숨어드는 것뿐이다. 성소수자들은 ‘LGBT노동자 차별 철폐’라는 구호한 번 외치는데도 큰 용기를 내야만 한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바이섹슈얼 노동자인 윤수(24)씨는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현재 6개월 정도 일을 했는데, 중간에 한 번 퇴사를 한 경험이 있다.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 성향의 동료들과 섞여 일하기가 힘들었던 까닭이다. 두 달간 무직상태로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알아보다, 결국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재입사를 했다. 사실 성소수자들은 일자리를 고를 때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윤수 씨도 그랬다. “일자리를 선택할 때 최우선은 혼자 일하는 곳이고, 그 다음은 남성들이 적은 곳 이예요. 아무래도 남성들이 많으면 포비아도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서비스직은 상대적으로 여성이 더 많잖아요. 혼자 일하는 직업은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여성이 많은 서비스직 일자리를 찾게 되죠”
하지만 이 같은 기대는 매번 산산조각나기 일쑤다. 입사 직후 신입생 교육 시간에 직원들은 윤수 씨에게 ‘남성 아르바이트 생 중 외모 TOP3’를 꼽으라고 했다. “매번 해 왔던 전통이라면서 남성 아르바이트생 외모 순위를 매기라는 거예요. 무조건 타인을 이성애자로 규정을 짓고, 외모로 순위를 매긴다는 것 자체가 거북스러워 안하겠다고 했더니 한 달 내내 쫓아다녔어요. 남성 아르바이트 생 중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러는 거 아니냐면서요”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내뱉는 동성애 혐오적 발언에 상처를 입기도 한다. “우리끼리 손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동료들이 ‘게이 같은 사람이 왔는데 징그럽다. 왜 밖으로 나다니는지 모르겠다’라던가 ‘레즈비언은 여자들 꼬셔서 그런 쪽으로 유도하는 애들’이라던가 하는 발언을 해요. 퇴사를 했던 것도 그런 포비아적 발언 때문이었고요”
윤수 씨는 동료들에게 호모포비아적 발언의 문제점을 지적하곤 한다. 주변에 게이, 레즈비언 친구들이 많다는 점과, 그런 발언을 들을 때 마다 불편하다는 심경을 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 마다 윤수 씨를 바라보는 동료들의 눈빛이 곱지 않다. 우리와는 다른 유별난 사람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만 같다. 윤수 씨는 갈수록 자신을 커밍아웃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 “포비아적 발언이 가장 심한 오빠가 있는데 아무래도 (내가 바이섹슈얼이라는 것을) 눈치 챈 것 같기도 해요. 그가 아웃팅을 하지 않을까 불안함이 있어요. 그 오빠는 제 앞에서 교제했던 여성들과 했던 행위를 자세하게 묘사하기도 하고, ‘여자는 북어 때리듯 때려야 한다’는 등의 말을 하기도 해요. 일부러 그러는 건지, 아니면 원래 그런 사람인건지 잘 모르겠어요”
대학 휴학 중인 윤수 씨는 공무원시험 준비도 고려하고 있다. 일반 회사에서 아웃팅 당할 경우 해고의 위험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생계를 유지하면서 비교적 고용이 안정돼 있는 직장을 찾다보니 공무원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동조합 유무도 중요한 고려대상이다. “고용 안정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경험을 해보니 서비스직도 안전한 곳이 아니더라고요. 사실 저는 성소수자라는 것이 자랑스러웠고, 커밍아웃도 하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커밍아웃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어요. 퇴사해서 알바가 구해지지 않을 때는 ‘그냥 이성애자인 척 참고 살걸. 정체성이 뭐가 중요한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그래서 노동조합에 대한 기대가 매우 높아요. (노조가 있으면) 가입을 하고 싶어요. 노조가 제 문제에 대해 같이 싸워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죠”
‘성소수자’와 ‘노동운동’, 차별받은 사람들이 만드는 공감대
노동현장에서 차별을 받는 성소수자들은 노동조합 투쟁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있다. 외국계기업의 외주업체에 근무 중인 비정규직 게이노동자 형태(33)씨는 누구보다 노조 투쟁현장에 긴밀히 연대하고 있다. 2011년 한진중공업 희망버스를 시작으로 쌍용차, 유성기업, 재능, 보건복지정보개발원 등의 투쟁현장을 찾았다. 노동계 안에서도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 수준은 천차만별이지만 차별을 경험한 노동자들과의 연대는 분명 공감과 위로가 된다. “물론 일반조합원들도 다 같은 생각일 수는 없겠죠. 그렇지만 부당하게 해고되거나 차별을 당해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차별’이 무엇인지 분명히 느끼고 있어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같이 살아가는 존재로 서로를 인식하고 있는거죠”
▲ 무지개깃발을 들고 집회에 참여한 형태(33) 씨. [출처: 형태] |
형태 씨는 고객센터에서 일하는 서비스직 노동자다. 이전 직장에서는 총무팀 소속 사무직 노동자로 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군대와 같은 남성중심의 직장 문화를 견디지 못했다. 직장 동료들은 그에게 ‘남성성’을 강조했다. “정장과 넥타이를 착용해야 했고, 빈번한 회식자리에서 분위기를 맞춰야 했어요. 제 말투를 지적하며 남자처럼 말하라고 하기도 했고, 행동이 왜 이렇게 여자 같으냐고 지적하기도 했어요. 컵을 집을 때 새끼손까락이 올라가는데, 그게 놀림거리가 되니까 항상 신경 써야 했어요” 과거에는 정규직으로 고용돼 회사에서 부팀장을 달기도 했다. 오래 회사를 다니고 싶은 마음에, 용기를 내 팀원들에게 커밍아웃을 한 적도 있다. 동료들은 ‘네가 제대로 된 여자를 못 만나봐서 그렇다’, ‘징그럽다’, ‘그런 얘기 나한테 하지 마라’는 등의 반응을 쏟아냈다. 형태 씨는 커밍아웃 이후, 동료들과 미묘한 거리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들과 자신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긴 기분이었다.
“그 회사를 나오고 난 뒤로는 커밍아웃에 앞서 내가 더 준비되어야 겠구나, 내가 더 나를 보호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 다니고 있는 외국계 회사를 선택한 것도 부당한 차별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회사 내규에 차별금지조항이 있어,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폭력은 직장 뿐 아니라 일상 곳곳에 존재한다. 그 역시 성소수자가 차별, 공격당하지 않을 수 있는 사회적 기반과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사실 거창한 것 보다는 동료가 ‘지난 주말 뭐 했냐’고 물었을 때 ‘성소수자혐오반대의 날이어서 문화제에 갔다 왔다’고 자연스럽게 말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성소수자들은 노동현장 곳곳에서 아슬아슬하게 발을 딛고 서 있다. 그들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전무한 탓에, 그들은 자신을 숨기는 것 밖에는 달리 대응할 방도가 없다. 해고를 당한다고 해도 자신의 성정체성을 드러내놓고 싸우기에는 너무 큰 용기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사측이 해고 사유를 ‘근무 태도’ 등으로 교묘히 우회할 경우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이 씨와 같이 성정체성을 이유로 해고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지만 많은 피해자들은 ‘포기’를 선택한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관계자는 “지난해 한 남성 캐디 역시 성적지향이 알려지면서 컨트리클럽으로부터 퇴사를 종용 당했다. 부당해고여서 문제제기를 하려고 했지만 결국 계약이 종료됐다”고 설명했다.
성적지향을 이유로 가해지는 노동현장에서의 차별도 빈번하다. 하지만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아 피해자의 적극적인 대응도 쉽지 않다. 곽이경 민주노총 대협부장은 “설문조사에 의하면, 성소수자들은 가장 두려워하는 공간으로 직장을 꼽는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권리보장을 요구하기가 쉽지 않다”며 “성적지향에 의한 차별과 관련해서는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유일하지만 구속력이 없다. 고용 상 차별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차별금지법은 2007년와 2012년을 거치며 지금까지 표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노동조합 차원에서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에 성소수자 차별금지 조항을 넣는 방안을 고민하기도 한다. 곽이경 부장은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성소수자 차별금지 조항이 포함된 모범 단협안을 만들어 제안하는 것”이라며 “영미국가의 경우 노조에서 LGBT대의원을 배정해 위원회를 만들고 정책을 생산하는 구조가 가능하다. 이를 당장에 시행할 수는 없지만 우선 성소수자 조합원들이 각 사업장 노조에서부터 커밍아웃을 할 수 있는 분위기와 교육 등이 이뤄진다면 구체적인 변화도 시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 날인 오는 17일, 서울역에서는 ‘혐오를 멈춰라, 광장을 열어라’ 공동행동이 열린다. 수많은 성소수자들은 혐오와의 싸움을 넘어 ‘LGBT노동자 차별 철폐’ 라는 깃발을 꽂을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다 맞는 것이라 할 때, 나만 아니라고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페이스북에 적은 적이 있었어요. 그 때 기아차 사내하청노동자 윤주형 열사가 글을 남겨 주셨어요. 많은 사람들이 다 맞다고 해서 모두다 정답은 아니라고. 작은 소리를 내는 게 때로는 더 가치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요” 비정규직 게이노동자 형태 씨가 인터뷰 말미에 전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