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하면 지키고 불리하면 안 지키는 삼성

[인터뷰] 스스로 목숨 끊으려 한 서비스기사 정씨

충남 천안 모 병원서 입원치료 중인 삼성전자서비스 천안센터 기사 정우형 씨는 삼성 사측에 대해 “유리한 것은 다 지키고 불리한 것은 모두 안 지킨다. 이제근 사장은 현장에서 ‘노조원 모두 죽이고 나도 죽겠다’고 말하고 다녔다”면서 “남을 해코지하진 못하겠고, 나는 너무 화가 났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수없이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지난 달 27일 아침 사측이 노조를 탄압하고 노동자에게 불리한 취업규칙을 일방 변경한 직후 볼펜을 두드리며 20여분 가량 사내 책상에 가만히 앉아있었다고 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하는 생각만 들었단다. 울분을 참지 못한 그는 28일 새벽 2시께 천안센터 계단 입구에서 자결을 시도했다. 건물 청소노동자가 새벽 6시께 발견해 병원으로 옮겨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9일 병원서 만난 정씨는 숨이 차 말하는 게 불편해 보였다.

“쉽게 해고, 노동자 감시, 노사 합의 미이행, 일감 줄이기...
묻고 싶습니다. 삼성의 노조 깨기가 정상인가요?”


이제근 씨가 사업주인 삼성서비스 하청업체 천안센터와 인근 아산센터, 쌍용센터 등은 최근 취업규칙 변경을 시도했다. 회사 내부 문건을 외부로 유포시킨 경우, SLA(Service Level Agreement) 기준 업무성적이 월 하위 10% 미만으로 연중 월 3회 연속 평가된 경우, 3회 이상 불친절로 인해 고객의 클레임 제기로 회사의 업무에 지장을 주는 경우 등이 취업규칙 개정안 가운데 일부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측은 1개 항을 삭제하고, 15개 항을 신설하는 취업규칙 개정안은 사업주가 노동자를 쉽게 해고할 수 있고, 노조를 탄압하는 안이라고 했다. 지회의 김기수 천안분회장은 “해고를 쉽게 하고, 삼성의 부당노동행위를 밖으로 알리거나 정당한 노조활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개정안”이라며 “노동자의 삶과 일자리를 빼앗으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씨도 “노조원보다 비노조원이 많으니까 사측은 이를 노려 노조원은 배제하고 동의도 얻지 않고 일방적으로 취업규칙을 개정했다”면서 “사측은 노조원에게 ‘이미 1/2 동의 사인을 받아놨기 때문에 바로 효력이 있다. 사인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고 협박했다”고 말했다.

노측은 취업규칙 개정 철회와 사측 책임자(팀장급) 처벌, 정씨에 대한 치료비 등 비용 부담과 재발방지책 마련 등 노조탄압 중단을 촉구하는 5개 요구안을 지난 9일 사측에 보냈다. 11일 노측과 사측은 관련해 처음 교섭을 했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천안분회는 9일 오후 6시30분 삼성서비스 천안센터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노조는 취업규칙 개정 철회와 사측 책임자(팀장급) 처벌, 정씨에 대한 치료비 등 비용 부담과 재발방지책 마련 등 노조탄압 중단을 촉구했다. 이날 김기수 천안분회장은 정우형 씨 건강상태를 전하며 "더 이상 삼성에 의한 학살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천안분회는 9일 오후 6시30분 삼성서비스 천안센터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노조는 취업규칙 개정 철회와 사측 책임자(팀장급) 처벌, 정씨에 대한 치료비 등 비용 부담과 재발방지책 마련 등 노조탄압 중단을 촉구했다. 이날 김기수 천안분회장은 정우형 씨 건강상태를 전하며 "더 이상 삼성에 의한 학살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 사측에 대한 정씨의 불만과 분노는 누적된 것으로 보인다. 정씨는 최근 사측이 동료이자 노조 간부였던 이모 씨를 노조와 일체 협의 없이 단체협약을 어기고 부당하게 해고했다고 주장했다. 또, 부당한 주유비 공제와 월급명세표 조작, 노동자 감시, 일감 줄이기 등 노조를 탄압한다고 했다. 정씨의 말을 종합하면, 서비스기사 최종범, 염호석 열사 투쟁 이후 지난 해 6월 체결한 임단협을 삼성 측이 지키지 않고 내부적으로 노조 깨기 작업을 계속할 뿐만 아니라, 노조원에게 일감을 주지 않으며 생계를 압박한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정씨는 작년부터 노동자 감시가 계속됐다며, 경찰과 노동부도 비판했다. 노사합의로 제공된 서비스 업무차량은 GPS가 부착돼 노동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으며, 약속과 달리 출퇴근용으로 사용한 부분이 월급에서 차감되거나 주유비조차 실비 지급되지 않는다고 했다. 정씨는 사측의 부당 조치에 작년부터 매일 열쇠를 반납하며 출퇴근용으로조차 사측 차량을 사용하지 않고 있단다. 그의 차 안엔 경찰과 노동부 등을 찾아다니며 노동자 감시에 대한 부당함을 알리고, 업무상 재해로 허리를 다쳐 처방받은 문서 자료가 뭉치로 있었다.

정씨는 “지난 해 월급 120만원 가운데 느닷없이 듣도 보도 못한 ‘개인용도유류비’라며 25여만원 떼 갔다. 그 뒤로 계속 떼 간다. ‘차량 이용해도 된다고 하더니 이게 뭐냐!’고 항의하자, 사측은 GPS로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추적한 자료를 내밀었다”면서 “경찰과 노동부에 몇 차례나 가서 ‘감시는 불법이다. 못하게 막아 달라’고 했지만 ‘회사의 고유 권한’이라고 했다. 경찰과 노동부가 사측의 불법에 대해 제대로 된 조치만 했어도 막무가내로 노조원을 탄압하는 일을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사측은 노사 합의 이후 월급명세표에 있지도 않았던 주유비를 ‘사실은 지급하고 있었다’는 거짓말까지 하며 합의조차 지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천안센터 소속 서비스기사 최종범 씨가 삼성 측의 부당한 대우와 노조탄압에 항거해 2013년 10월 31일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노사 양측은 업무 차량에 대한 리스 차량 제공과 유류비 실비 지급, 생활 임금 보장 등에 합의한 바 있다. 당시 사업주인 이제근 씨가 최종범 씨에게 욕설과 폭언 등을 한 녹음파일이 폭로돼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었다.

정씨는 또, “서비스 업무를 하다 허리를 다쳤는데 회사에서 산업재해 신청하라고 해서 ‘신청서 달라’고 했더니 사측은 ‘산업재해 신청되면 중량물 수임을 안 주겠다’고 했다. 외근직 서비스기사의 업무 90%가 세탁기, 냉장고 등 중량물이다. 산업재해 신청도 못하게 하고 일감 안 준다고 협박하는 것”이라면서 “어처구니없는 사측의 대응에 당시 아무 말도 못하는 내 자신이 한심스러웠다”고 했다.

정씨의 고등학생 딸은 아직 아빠의 상황을 모른단다. 정씨의 아내가 병간호를 하는데, 그는 “멍청한 생각이지만 아내를 믿는 마음이 너무 컸다. 죽어서 미안한 것 보다 살아서 미안한 마음이 더 큰 현실이다”고 속마음을 전했다.

인터뷰 말미에 심경을 전하던 그는 꼭 묻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양심이 있고, 똑똑한 모든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노동자 감시는 문제가 안 되고 사업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가. 직원 동의 없이 월급을 마음대로 조작하고 비용을 공제하는 사측의 행동이 적법한가. 노사 단체협약이 있는데 무시하고 노동자를 멋대로 해고할 수 있는 취업규칙을 회사가 일방적으로 개정해도 되는 건가’라고 말이다.”
덧붙이는 말

정재은 기자는 미디어충청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미디어충청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정재은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