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병 잡고, 치료 받고, 현장 바꾸는 유해요인조사

2016년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대응 워크샵

“현장이 너무 아픕니다.”

금속노조의 한 지회 노동안전보건부장이 조합원들의 건강 상태를 묻는 질문에 내뱉은 첫 마디다. 십수년을 현장에서 일한 조합원들은 허리며 어깨, 손목 등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한마디로 골병이 들대로 들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근골격계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사업주에게 예방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근골격계부담작업을 하는 노동자가 있는 사업장은 3년마다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아래 유해요인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유해요인조사는 2004년 시작해 다가오는 2016년 다섯 번째를 맞는다.

금속노조는 2016년 유해요인조사를 앞두고 9월2일 충남지부 갑을오토텍지회 회의실에서 ‘2016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대응 워크샵’을 열었다. 금속노조는 이날 워크샵에서 각 사업장에서 진행한 유해요인조사 과정과 성과, 문제점을 파악하고 내년 조사를 준비하기 위한 의견을 모았다.

  9월2일 '2016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대응 워크샵'에서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가 노조 사업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유해요인조사 관련 설문조사와 면접조사를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아산=강정주 [출처: 금속노동자]

금속노조는 앞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일과건강, 대구산업보건연구회, 울산 산재추방운동연합,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 등 단체와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제대로하기 TFT’를 꾸려 90개 지회 조합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면접조사를 진행했다.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한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회사나 노조가 유해요인조사는 형식적으로 진행하는 사업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유해요인조사에 대한 전체 만족도가 낮은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유해요인조사 사업을 시행하는 사업장 노조 간부가 사업 목표를 설정하지 않는 경우가 절반 가까이 됐다. 노조 담당 간부가 준비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답변도 21%나 됐다.

현장 만족도 낮다

최민 상임활동가는 “유해요인조사는 현장을 바꿔 질환을 예방하는 목적과 증상자를 찾아내 빨리 치료받을 수 있게 하는 목적이 있다. 현재 조사는 질환자를 제대로 찾지 못하거나, 찾더라도 검진·치료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근골격계 증상 설문조사를 전체 조합원 대상으로 하지 않는 사업장은 20%였다. 검진을 했지만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답변도 10%를 차지했다.

조사 과정과 개선안을 만들 때 노조가 적극 참여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민 상임활동가는 “조합원이 조사에 직접 참여하는 과정이 부족했다. 조사 자체를 노조 담당자 혹은 해당 기관에 맡겨 전체 지회의 사업으로 진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러다보니 ‘회사가 조사를 주도한다. 주도권을 뺏겼다’는 답변을 하는 간부들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설문조사 결과 개선안을 만드는 과정에 노조가 참여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21%, 개선안을 만들더라도 검토 회의를 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30%에 달했다.

이런 상황은 실제 현장 문제를 개선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한 지회 노안 담당자는 “조사를 하고 개선안 보고서를 내도 조합원들이 거부할 때가 있다. 기관에서 조사를 하는데 조합원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으니 현실과 동떨어진 개선책을 내놓는다”고 지적했다. 결국 현장에서도 ‘매번 조사하면 뭐하냐. 달라지는 것도 없고 좋아지지도 않는다’는 불만이 쌓이고, 유해요인조사에 관심이 떨어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9월2일 워크샵에서 정현철 충남지부 현대제철지회 노동안전보건부장이 현장 실태에 대해 어려움을 얘기하고 있다. 강정주 [출처: 금속노동자]

설문조사에 응한 지회 노안 간부들은 유해요인조사의 어려움으로 △담당자 역량 부족 △비전임으로 인한 활동시간 부족 △집행부 임기로 인한 사업 단절 △일부 담당자만의 사업으로 치부하는 인식 등을 꼽았다.

이날 워크샵에 참석한 노안 간부들도 비슷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 노안부장은 “노안 담당자라고 하지만 처음 맡으면 법 내용도 제대로 모른다. 회사가 하자고 하는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신임 간부에게 임기 초 집중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담당자만 알아서 하는 사업?

또 다른 노안부장은 “지회, 지부 모두 유해요인조사나 노안 사업은 노안 담당자 업무로만 생각한다. 알아서 하라고 하거나 관심도 없다”며 “한 두 명 담당자가 전체 사업을 관장하고 준비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워크샵에서는 유해요인조사 과정의 문제 뿐 아니라 근골격계 질환을 공상으로 처리하는 현장 상황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최민 상임활동가는 “설문조사 결과 산재 신청을 하기보다 공상 처리를 하는 사업장이 두 배 이상이다. 산재 신청은 한 건도 없고 공상으로만 처리한다는 사업장도 11곳이나 된다”며 “불승인에 대한 부담, 개인이 치료받는 문제로 치부하는 인식이 산재를 은폐하고 공상이 만연한 상황을 만들었다. 결국 노동자들이 제대로 치료받을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고 조사 결과를 분석했다.

산재 발생시 현장 문제점을 분석하고 개선하기 보다 당장의 치료와 임금 손실 등에 집중하다보니 공상 처리를 선택하는 조합원이 많다고 워크샵에 참석한 노안 간부들이 덧붙였다. 산재 신청을 하도록 지도하는 지회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반성이 있었다.

워크샵 참가자들은 2016년 진행한 유해요인조사에 똑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안을 토론했다. 참가자들은 노조 차원의 종합 대응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 참가자는 “유해요인조사, 노안 사업 중요성에 대해 노조가 의무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 노조 핵심요구로 설정하고 개별 실, 담당자의 사업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전체 사업장의 조사 시기를 동일하게 맞춰 공동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9월2일 워크샵에 참가한 광주전남지부 비앤비성원지회 조합원이 유해요인조사를 제대로 하기 위한 대안을 토론하고 있다. 강정주 [출처: 금속노동자]

한 참가자는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현장 인식을 바꿔야 한다. ‘일하다 어깨 아프다고 무슨 산재 처리 하느냐. 다 아픈데’라거나 근골격계 질환으로 산재 신청한 동료를 좋지 않게 보는 시선이 있다”며 “유해요인조사 준비, 조사 과정, 이후 개선책 마련과 이행까지 조합원들이 참여하고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시간, 예산, 인원 확보해야

집행부 임기가 끝나도 노안사업을 연속해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 참가자는 “지회에서 노안부장만 선임하지 말고 노안위원회, 실천단 등 임기와 상관없이 꾸준히 사업을 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회에 유해요인조사 관련 특별위원회를 설치해 지회 전체 사업 계획에 반영하고 예산과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지역 공동 조사단을 구성해 같이 논의하고 내용을 점검, 대응하는 사례를 공유하기도 했다.

담당자가 현장 조사 전에 준비 기간, 개선안 검토, 실행 여부 점검을 할 수 있도록 단체협약과 노사협의회 등을 통한 활동 시간 확보가 사업을 제대로 할 수 있는 필수 요건이라는 의견도 밝혔다. (기사제휴=금속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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