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세계를 꿈꾸는 세계인 모두에게 일찍이 겪은 적 없는 거대한 위험이 엄습하고 있다. 가장 강력한 군사력과 가장 오만한 대외정책을 한꺼번에 지님으로써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로 부상한 미국이 온 인류를 향해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테러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테러와 아무 관련이 없는 무고한 생명을 대량 살육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불길을 세계 도처에 확산하고 있다.
그 무서운 불길의 맨 앞에서, 다음 과녁을 지목하고 살인과 파괴를 명령하는 당사자가 바로 부시 미국 대통령이다. 우리는, 북녘을 '악의 한 축'이라 일컫고 "모든 대응 수단을 강구할 것" 이라고 공식 언급한 부시 미국 대통령의 행동이 전쟁의 불길을 한반도로 옮기려는 사전 준비작업일 수 있다는 국내외의 우려를 경청하며 커다란 분노와 걱정을 지닌다. 또한 우리는, 타국의 경제 주권을 빼앗아 미국식 자본주의(신자유주의)를 강제하는데 한층 부산한 부시 대통령의 정책이 노동자 농민 등 지구촌 민중을 기아와 절망에 떨어뜨리는 사실을 직시한다.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류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갈구하는 칠 천만 겨레, 그리고 국민의 생존과 나라의 번영을 바라는 온 민중의 이름으로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반대하며, 기자회견을 통하여 우리의 단호한 뜻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는 동시에 우리 국민의 엄중한 요구를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강력히 전한다.
1. 전쟁 확대 중단하고 한반도 전쟁 정책 중지하라
지난 20년 역사에서 가장 크게 군사비를 증액한 점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미국은 살인과 파괴에 사용할 전쟁 무기를 대대적으로 증강하고 있다. 또한 요격미사일제한협정(ABM)을 파기한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미국은 지금 대량살상무기를 포함, 가공할 전쟁 무기를 제한 없이 사용하려 한다. 더구나 미국은 지난 9.11테러에서 획득한 '테러 대응'이라는 명분을 휘두르고 있다. 바야흐로 세계는 미국의 군사력에 굴복하거나, 그 군사력에 짓밟히거나, 양자택일을 강요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폭력이 세계 평화를 실현할 수는 없다. 전쟁 선언은 전면 취소되어야 하며. 이란, 이라크, 북한 등을 겨냥한 전쟁 확대 기도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취임 후 첫 국정연설에서 '불량국가'로 지칭한 이래로 기회 있을 때마다 북을 헐뜯던 부시 미국 대통령이 마침내 지난 1월 29일 두 번째 국정연설에서 북녘에게 '악의 한 축'이라는 극언을 사용했으며 이어서 2월 1일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한 북한, 이란 이라크 등은 미국의 심판을 받을 것" "모든 대응 수단을 강구할 것" 등 공개 협박에 나섰다. 이는, '빈 라덴'에서 '대량살상무기'로 전쟁의 명분을 전환하고, 그리하여 아프가니스탄에서 한반도, 이란, 이라크 등으로 전쟁터를 옮기려는 검은 속셈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이 지구에서 대량살상무기를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가 다름 아닌 미국, 바로 그들이라는 점, 그리고 미국이 북녘보다 무려 250배나 많은 국방비를 사용하는 점을 우리는 지적한다.
북과 미국의 전쟁은 곧 우리 모두의 파멸, 죽음과 완전히 일치한다. 따라서 북을 향한 협박과 위협, 전쟁 분위기 고조는 우리 국민 모두의 고귀한 생명을 무참히 짓밟는 행위로 간주, 온 국민의 힘으로 강력히 저지할 것임을 우리는 부시 대통령에게 분명히 전한다.
미국은 북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제네바 합의, 북미 공동성명 등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호혜평등의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는 기본 바탕을 이미 합의했다. 거기에 따르면 미국은 북을 군사적으로 위협하지 않고, 경제봉쇄를 점차 해소하는 동시에 국교를 정상화하며, 북은 그러한 절차가 진행되는데 따라 미국의 여러 가지 요청을 함께 해결하는 노력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부시 미국 대통령은 오히려 군사 위협과 경제 봉쇄를 강화하고 있다. 북을 '테러 지원국'으로 규정하는 한편 '철저한 검증' '엄격한 상호주의' 등을 주장하는 부시 대통령의 행동은 북미 합의 그 어디에도 없는 독선적인 것이며 북미 관계를 악화시키는 근본 요인이다. 우리는 부시 대통령이 북미 사이의 약속으로 속히 돌아가기를 강력히 권고한다.
2. 한미투자협정, 신자유주의 세계화 중단하라
자본의 무한 이윤추구를 무한히 보장하는 새로운 자본주의가 세계를 휩쓸고 있다. 자본의 탐욕 앞에서는 노동법, 노동조합, 각종 복지제도, 민주주의, 심지어 국가 권력까지 가을날의 낙엽처럼 뒹굴고 있다. 모든 국가권력이 맥없이 고개를 숙이는 가운데, 그러나 단 하나의 국가권력은 더욱더 막강해지고 있다. 무기를 더욱 충당하고 전쟁을 더욱 확산하면서 세계를 누비고 있는 미국이 바로 그들이다.
세계적 추세로 정착된 국가권력의 약화, 그것은 곧 미국의 국가권력이 세계를 장악하는 과정이며 결과이다. 이로써 미국 자본은 국경을 넘어 노동자, 농민 등 다른 나라 민중을 상대로 마음껏 이윤추구에 나설 수 있다. 그 결과 노동자들은 구조 조정되고 정리 해고되며, 농민들은 밀려드는 수입 농산물에 파산하고, 그리하여 도시 빈민은 급속히 양산된다. 아이엠에프(IMF) 이래로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의 만성적 침체는, 국민들의 고통은 미국식 자본주의(신자유주의)를 이 땅에 강제하는 미국의 경제침략에서 연유하는 것임을 우리는 분명히 지적한다. 따라서 우리는 불평등한 한미투자협정 체결 강요를 포함하여 미국의 경제침략과 간섭, 구조조정과 신자유주의 강요를 단호히 반대한다.
3. 엠디(MD) 강요, 전쟁무기 강매를 중단하라
미국의 유일 선제공격능력과 군사적 패권을 보장해주고 무한정한 군비 경쟁을 초래할 엠디(MD)는 한반도를 강대국들의 군사적 각축장으로 만듦으로써 한반도 평화는 물론 세계평화를 파괴하고 우리민족의 생존을 크게 위협하며, 겨레의 통일을 결정적으로 가로막을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번 방한에서 100여 대의 F-15K 전투기를 비롯하여 PAC-3, 이지스함 등 모두 수 백억 달러에 달하는 자국산 무기를 강매할 것이다. 일년 국방비가 고작 15억 달러에 불과한 북녘을 향해서는 ‘군비 축소’를 외치면서 왜 우리에게는 한꺼번에 100억 달러 어치나 되는 무기를 강매하는 것인지, 우리 국민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 우리에게 대북 전쟁의 선봉을 감당하라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에게 자국 무기자본을 살찌우는 재물을 강요하는 것인지, 참으로 참담할 따름이다. 또한 동북아 힘의 균형을 근본적으로 파괴하고 북미, 남북 군사대결을 고조할 엠디(MD)체제에 편입하라는 것은 우리에게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들라'는 것이며 동시에 자기들 군사 목적을 위해 천문학적 규모의 국민 세금을 내 놓으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기 강매, 엠디(MD)강요를 강력히 반대한다.
4. 용산 미군기지를 포함한 전국의 모든 미군기지를 전면 반환하라
미군기지는 온갖 흉악 범죄와 점증하는 환경파괴의 온상이며 주권 침해의 아픈 상징이다. 수도 서울의 한 가운데를 점거한 용산 미군기지를 비롯하여 전국 주요도시의 요충에는 어김없이 미군기지가 버티고 있다. 그들은 온 국민의 반환 요구를 묵살할 뿐 아니라 그곳을 근거지로 각종 범죄를 일삼고 있다. 미군기지는 흉악 범죄를 저지르고 도주하는 안전한 피난처이며, 독극물과 폐휘발유 등을 마구 버리고도 공무 중의 행동이라거나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는 방패막이가 되고 있다. 미국과 미군들의 이익을 위해 우리 국민에게 고통과 슬픔을 주는 전국의 모든 미군기지는 즉각, 전면 반환되어야 한다.
5. 양민학살에서 한강독극물사건까지 미군범죄 사과하고 소파협정 개정하라
최근 국내외의 보도들이 새삼 알려주는 것처럼 한국전쟁 기간동안 미군은 의도적이고 체계적으로 이 땅의 양민을 학살했다. 그러나 그 참혹한 전쟁범죄의 실체는 역사의 쓰레기통에 버려졌으며 희생자와 그 가족들의 슬픔은 역사의 뒷골목을 배회할 뿐이었다. 미군은 그 어두운 역사 위에 군림하여 살인, 강간, 강도, 절도 등 각종 범죄를 저질렀다. 한강 독극물 사건 등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들끓는 점에서 알 수 있듯 우리 국민의 주권의식이 매우 높아진 요즘에도 미군 범죄는 줄어들지 않는다. 그것은 미국이 우리를 하찮게 여기는 때문이며 동시에 미군 범죄자를 철저히 보호하는 소파 조항 때문이다. 소파는 한국에서 자행하는 범죄의 경우 사법적 처벌을 면제하는 안전판이며, 따라서 미군들 모두에게 범죄를 부추기는 직, 간접 범죄 유발 요인이다. 한미간 진정한 동반자 관계는 미군범죄를 사과하고 소파를 전면 개정하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6. 6.15남북 공동선언 실현을 위한 우리의 노력을 간섭, 방해하지 말라
6.15남북공동선언은 칠 천만 겨레가 다함께 이룩한 통일 약속이다. 남북공동선언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 나아가면 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가 있고, 겨레의 통일이 있으며, 동북아의 안정과 세계평화의 귀한 밑거름이 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공동선언을 이행하려는 남북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언동을 일삼고 있다. 지난 해 한미정상회담에서 "북의 지도자를 신뢰할 수 없다." "한국 정부의 대북 협상은 모두 한미간 협의를 거쳐야 한다." 등을 공언한 것, 그리고 우리 정부의 대북 전력공급을 여러 가지 압력으로 금지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 모든, 참을 수 없는 내정간섭과 견딜 수 없는 민족분열 책동이 중단될 때까지 우리 국민과 우리 겨레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7. 김대중 정부는 아프가니스탄 파병 철회하고 굴욕적 한미공조 중지하라
부시 미국 대통령이 북녘을 향해서는 전쟁을 협박하고, 남녘을 향해서는 내정간섭, 경제침략, 신자유주의 강요를 더욱 강화하는 것은 그가 오만하여 우리 국민의 위대한 저력과 우리 민족의 거대한 단결을 보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미국과 마주하는 모든 곳에서 종속적 태도를 거듭하는 우리 정부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며 우리는 주권국의 당당한 모습을 김대중 정부에 강력히 촉구한다. 아프가니스탄 파병 무력을 속히 철수하는 것은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동시에 나라의 주권을 높이세우는 매우 귀중한 일임을 우리는 새삼 강조한다.
2002년 2월 6일
부시 미국대통령 방한반대 사회단체 합동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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