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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자회견] 정부는 스크린쿼터 축소/폐지 음모를 즉각 중단하고 실효성 없는 한미투자협정을 철회하라!
번호 18 분류   조회/추천 897  /  15
글쓴이 운영자    
작성일 2002년 02월 17일 10시 12분 00초
기 자 회 견 문

스크린쿼터 축소/폐지론이라는 '유령'이 또 다시 우리 주변을 배회하고 있
다. 3년전 통상교섭본부장의 이름으로 거만하게 등장했다가 국민적 여론의 철
퇴를 맞고 사라졌던 이 유령이 이번에는 재정경제부의 이름을 빌려 되살아나
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재정경제부는 그간 유보되어온 한미투자협정의
핵심 쟁점이던 스크린쿼터 문제 해결을 위한 여건이 성숙했다고 주장하면서,
외교통상본부와 문화관광부 등 관계부처와의 의견 조율을 거쳐 상반기 중 한미
투자협정 체결을 마무리할 방침이라고 한다. 한국영화 시장점유율이 40% 선을
크게 상회한 현 상황에서는 스크린쿼터 현행유지론을 계속 고집할 이유가 없으
므로 "폐지는 어렵더라도 98년 문화관광부가 제안하고 미국 측이 동의했던 연
73일이 최저선이 될 수는 있을 것"이라며 구체적 수치까지 거론되고 있다. 또
미국 무역대표부 존 헌츠먼 부대표에 의하면 미국 측은 "한국정부로부터 다음
달쯤 스크린쿼터제 일부를 개정하겠다는 의사를 전달받았고 그 결과를 지켜보
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근거가 박약한 허
장성세에 불과할 뿐 아니라 국익에 반하는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1) "스크린쿼터 문제는 전체 국익을 위해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대안을 모색
하도록 정부 차원에서 관련 부처에 촉구해 두고 있다"며 재정경제부는 혼자
서 '북 치고 창구 치며' 자신만만해 하고 있지만, 이는 실상 "김치국 부터 마
시는" 격이다. 스크린쿼터제를 개정하려면 관련법을 개정해야 하나, 정작 법개
정의 주무부서인 문화관광부의 경우 스크린쿼터 현행유지 입장을 확고부동하
게 천명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국회는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스크린쿼터 현행
유지 결의안을 채택한 바 있고, 며칠 전(1월 22일) 다수당인 한나라당의 정책
위원회가 스크린쿼터 축소 절대 불가를 밝히는 성명서를 발표한 바도 있어 쿼
터 축소를 전제로 한 한미투자협정 체결의 국회비준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
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정경제부가 쿼터 축소론을 재론하는 것은 3년전과
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데에 의거하는 것 같다. 그러나 재정경제부가 지난해 한
국영화 시장점유율이 40% 선을 넘었으므로 이제는 쿼터제 현행유지가 불필요해
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항을 곡해한 것이다. 97년 대선 당시 김
대중 후보가 "시장점유율 40%가 될 때까지 스크린쿼터제를 유지하겠다"고 발표
했던 공약을 근거로 40%라는 수치를 한국영화산업의 안정성을 가늠하는 지표
로 보려는 것인데, 이는 40%라는 수치가 스크린쿼터제의 문화적, 경제적 의미
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상징적 수치로 제시된 정치적 구호일 뿐이
라는 점을 간과하는 것일 따름이다. 설령 이 수치를 인정해 준다고 해도 모든
통계적 수치가 그렇듯이 장기간에 걸친 평균지표로서 산출되었을 때에만 그 수
치가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영화의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처음으로 몇 편의 '블럭버스터'에 힘입어 40% 선을 넘었지만, 매년 그런 결과
가 반복된다는 보장은 없다. 따라서 통계적 수치로서 유의미하려면 평균지표
산출에 필요한 상당 기간을 더 기다려 보아야 하는 것이 논리적일 것이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해 40%선을 넘었으므로 이제 쿼터를 축소해도 좋다고 주
장하는 것은 이치에 벗어나는 일이다. 게다가 스크린쿼터제는 헐리우드 영화
의 독점에 대응하여 문화정체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이므로
근본적으로는 시장점유율이라는 산업논리의 잣대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이 아니
라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3) 그런데 재정경제부가 왜곡되게도 수치문제로 환원하려는 상황변화의 진
정한 의미는 오히려 다음과 같은 것이다. 우선 스크린쿼터제도는 한국영화 발
전의 걸림돌이라는 당시 경제관료들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스크린쿼터 일수를
그 어느 때보다 철저하게 지킨 지난 3년간 한국영화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
다. 당시 쿼터 철폐론자들은 '한국영화에 대한 지나친 보호가 영화산업의 발전
을 가로막고 있다며 스크린쿼터제의 폐지를 통한 자유로운 경쟁체제의 도입이
한국 영화산업을 발전시킬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한 바 있다. 그러
나 그들의 기대를 벗어나 현재 우리 영화는 스크린쿼터 일수를 철저히 준수함
과 동시에 국내 흥행의 성공은 물론 칸느 영화제를 비롯한 저명 해외영화제에
서도 높이 평가받고 있으며, 좁은 국내시장을 넘어 해외진출에서도 상당한 성
과를 보이고 있다. 또한 46개국 문화부문 장관들이 참여하는 "문화정책에 관
한 국제네트워크"(INCP)와 52개국의 300여개 문화단체들이 참여하는 "문화다양
성을 위한 국제네트워크"(INCD)에서도 한국의 스크린쿼터제도는 본받아야 할
모범 사례로 칭송받고 있다. 나아가 작년 년말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된 "세
계문화 다양성 선언문"에서는 문화다양성의 보호는 윤리적 의무이자 인간존엄
성과 분리할 수 없는 것이며, 문화를 일반 경제상품이나 소비품으로 간주해서
는 안되며(7조), 세계 각 국은 문화정체성 보호를 위해 현실에 맞는 다양한 규
제나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8조)고 천명함으로써 한국의 스크린쿼터 시스템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재삼 확인해준 바 있다. 반면 미국의 안하무인식 패권
주의는 부시정권의 출범과 함께 절정에 달한 상황이며, '테러와의 전쟁'이라
는 공포분위기 조성 하에 세계 각국에 대한 시장개방 압력을 강화하고 있다.
결국 스크린쿼터제의 백해무익성을 주장하던 경제관료들의 주장은 철저히 논거
를 상실한 반면, 미국의 개방압력은 점점 더 강압적인 쪽으로 바뀌는 식으로
상황이 변했다고 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 보면 쿼터제를 반대했던 경제관료들
은 자신들의 무지를 겸허하게 반성해야 할 것이며, 특히 경제적 관점에서 보더
라도 이런 강압적 상황에서 미국과 투자협정을 체결하는 것은 일종의 자살행위
에 다름 아니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재정경제부는 뻔뻔스럽게도 이
런 상황 변화의 의미를 정반대로 해석하면서 한미투자협정 체결을 위한 여건
이 성숙했다고 혹세무민하고 있다.

4) 그러나 정작 문제거리는 스크린쿼터제가 아니라 한미투자협정 자체이다.
그동안 한국에서의 성공 사례를 통해 스크린쿼터제의 실효성은 세계적으로 입
증되고 있지만, 반면 미국과의 양자간투자협정(BIT)은 그 실효성이 지속적으
로 의문시되어 왔기 때문이다. 미국이 체결해온 양자간투자협정의 기본 틀은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은 허용하나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은 허용하지 않는, 거
대자본의 이익만을 보호하는 데 초점을 둔 철저하게 불평등한 조약이다. 국제
적으로 보면 미국과 양자간투자협정(BIT)을 체결한 나라들은 지난 10년간 40여
개국에 이르지만 모두가 외자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불평등조약
을 감수한 결과 미국에 대한 경제종속이 심화될 수밖에 없었던 개발도상국이
나 저개발국가들이었다. 그중 10여개국 이상이 국회비준을 받지 못했으며, 투
자협정 체결로 미국의 투자가 실질적으로 늘었다거나 고용증대 효과가 높아졌
다는 증거가 없고, 아르헨티나와 같이 국제투기자본의 노름판이 되는 경우라든
가, OECD 국가 중 단 한나라도 미국과 양자간투자협정(BIT)을 체결하지 않았다
는 사실 등을 종합해 볼 때 그 실효성이 없음을 국제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반면에 미국의 입장에서는 WTO 전체 차원에서의 협정은 포괄적이기 때문에 유
럽의 저항 등으로 시장개방 속도가 지연되는 것에 대응하여 일단 약한 고리를
돌파하여 미국의 이익을 관철할 수 있도록 개별국가와 양자간투자협정을 체결
하는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98년 당시 한미투자협정 체결의 필요성은 외환위
기로 빚어진 경제환란의 급한 불을 끄자는 명목으로 제기된 것이었지만, 대부
분의 경제학자들과 경제관료들조차도 실효성은 없는 반면 위험성은 높다는 이
유로 반대했던 것이다. 게다가 99년 하반기에 들어 외환위기가 진정되면서 한
미투자협정 체결의 시급한 필요성도 사라지고 말았다. 또한 조만간 뉴라운드
협약의 세부시행계획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서 년내에 한미투자협정을 체결하
게 되면 우리는 향후 미국에 대해 최혜국 대우조항을 적용해야 하는 불리한 위
치에 놓이게 된다. 그렇다면 실효성이 입증된 스크린쿼터제를 버리면서까지 현
실적 필요성이나 실효성도 없는 한미투자협정을 조속히 체결해야 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미국의 53주로 편입하겠다는 발상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나 노동
의 자유로운 이동이 배제된 53주란 새로운 경제식민지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
렇다면 우리 재정경제부는 미국 정부와 거대자본의 하수인인가?

일부 경제관료들은 스크린쿼터제의 현행유지를 주장하며 한미투자협정의 실
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우리의 입장을 '신쇄국정책'으로 매도하기도 하나, 이
는 쇄국 대 개방이라는 낡은 이분법으로 우리의 입장을 비열하게 왜곡하는 것
이다. 우리는 개방과 경쟁, 세계화 자체를 반대한 적이 없다. 우리가 반대하
는 것은 '불평등한 일방적 개방'과 '자유롭지만 불공정한 경쟁', '신자유주의
적 세계화'이며, 우리가 대안으로 제기하는 것은 '호혜적인 개방'과 '자유롭고
도 공정한 경쟁', '상호발전과 문화다양성을 촉진하는 세계화'이다. 스크린쿼
터제는 수입규제제도와는 달리 헐리우드 직배영화의 자유로운 비즈니스를 전
면 허용하는 가운데 거대자본의 독점 병폐를 막기 위해 공정 경쟁의 최소 조건
(29.5%의 의무상영일수)을 보장하는 제도이므로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이라
는 WTO의 기본 정신에 합당한 것이다. 이를 두고 보호주의 시대의 폐쇄적인 낡
은 제도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사실파악을 못한 시대착오적인 허위주장이라 하
겠다. 세계영화시장의 85%를 독점하고 있는 골리앗과 같은 헐리우드 영화와 스
크린쿼터제 없이 자유롭게 경쟁하라는 것은 사실상 "자유롭지만 불공정한 경
쟁"을 강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반면에 헐리우드 영화에 대해 인도나 중국
과 같이 수입규제 정책을 채택한다면 이는 "공정하기는 하나 자유롭지 못한 경
쟁"이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경쟁원리'를 우상처럼 신봉하는 사람들의 문
제점은 바로 이와 같은 '경쟁의 여러 유형'을 고의로 무시한 채, 약육강식의
무한경쟁만을 자유경쟁이라고 강변한다는 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쇄국
정책에 반대한다는 명분으로 특정 국가에 대한 개방전략에 매몰된 결과 조일수
호통상조약으로부터 한일합방으로 이어졌던 1세기전 악몽의 교훈을 망각한
채, 이들 이데올로그들은 놀랍게도 우리의 경제와 문화의 미래를 지금 당장 미
국의 손에 맡기자고 역설하고 있다. 미국의 강압적 패권주의에 짓눌려 식민주
의의 유령이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태는 명확하다. 재정경제부는 세계적인 기대와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우리의 스크린쿼터제에 공연한 시비를 걸게 아니라 차제에 한미투자
협정 자체의 실효성 없음을 솔직히 시인하고 무리한 추진을 반성해야 할 것이
다. 한미투자협정이나 한일투자협정은 향후 국가 경제와 문화의 운명을 좌우
할 중대사이나 그동안 정부는 협정의 기본 문안조차 공개한 바 없으며, 협정
의 중장기적 경제적 파급효과 등에 대한 타당성 검토 결과조차 공론화 과정에
부친 바 없다. 실제로 우리는 재정경제부와 외교통상부를 포함한 정부 전체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어떤 것이 진정으로 장기적 국익에 기여하는 것인지를 고
민하면서 국민에게 실상을 공개하기를 바라며, 다음과 같은 사항을 요구하는
바이다. 만일 우리의 요구가 충족되지 않을 시, 영화인들은 물론 문화예술인
과 지식인, 시민사회단체들 및 다양한 국제기구들과 연대하여 스크린쿼터 현행
유지 및 한미/한일투자협정 체결 반대를 위해 총력을 다해 투쟁할 것이다.

첫째, 재정경재부는 스크린쿼터제 축소 음모를 즉각 중단하고 스크린쿼터제
현행유지라는 국민적 합의에 적극 동참하라!

둘째, 외교통상부는 한미/한일투자협정, 한일자유무역협정 등 밀실협상을 즉
각 중단하고, 그간 협의된 협정서 내용과 관련 정보, 향후 계획 등을 국민 앞
에 낱낱이 공개하라!

셋째, 정부는 국민 여론의 동의절차 없이는 어떤 형태의 양자간투자협정이나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해서는 안되며, 국제투기자본과 거대독점자본으로부터 국
익을 보호해야 하는 정부 본연의 책임을 준수하고, 문화 다양성을 옹호하기 위
한 세계 각 국의 움직임에 적극 동참하라!

2002년 1월 28일

영 화 인 일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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