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는 2월 19일 부시 미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한미투자협정을 연초에 체결하고, 한미자유무역 협정도 상반기까지 마무리짓겠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가 지난 98년부터 4년을 끌어온 한미투자협정 체결을 위해 그간 논란이 되어온 스크린 쿼터 등 민감한 쟁점사안 처리에 나설 것이라고 한다. 이미 정부는 헐리우드라는 거대 영화자본으로부터 한국 영화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인 스크린 쿼터를 크게 줄일 계획을 발표한 상태다. 한국 영화는 다시 한번 크나큰 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러나 한미투자협정의 문제는 스크린쿼터를 폐지하여 미국 영화자본의 이윤을 보장하 고 한국의 문화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투자협정은 말 그대로 초국적 자본의 자유로운 투자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현재 정부는 한미투자협정의 전체 내용을 기밀이라며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공개된 내용만을 살펴보더라도 '투자협정=초국적 자본의 이익 보장을 위한 권리헌장'이라는 등식이 성립함을 쉽게 알 수 있다. 한미투자협정에 따르면 초국적 자본이 국내에 투자를 하더라도 기술을 이전할 필요도 없고, 내국민을 고용할 의무도 없으며, 투자를 통한 이익을 자유롭게 해외로 송금하게 함으로써 국내에 재투자를 할 이유도 없게 된다. 따라서 해외 투자를 유치하면 기술도 이전받고, 고용도 창출할 수 있다는 정부의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다. 이런 판에 정부는 해외투자 유치를 위해 각종 세금을 감면해 주고, 저가의 부지 임대를 보장해주고 있다.
또한 투자협정은 '투자'의 개념을 단기 수익과 배당금을 위해 주식과 채권을 매매하는 소위 포트폴리오라는 단기성 투기에까지 확대 적용함으로써 단기투기자본을 규제하고 통제할 수 없도록 만든다. 우리는 1997년 한국의 금융위기뿐만 아니라 최근 많은 나라들에서의 경제위기가 단기투기자본의 고삐풀린 이동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단기투기자본을 통제하고 규제해야 마땅한 판에, 투자협정을 통해 투기마저 정당한 투자로서 보장해주려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일뿐만 아니라, 초국적 자본에게 이윤을 보장해 주기만 하면 투자가 늘어나고 나라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너무도 안이하고 무책임한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최근 국제적인 투자의 추세는 고용을 창출하고 생산성을 보장하는 중장기적인 직접투자라기보다는 기업의 인수합병을 통한 단시일내의 기업 몸값 불리기, 단기적인 주식매매를 통한 이윤확보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2001년 현재 직접투자가 30%인데 반해 증권투자는 70%에 이르며, 직접투자라 하더라도 대부분은 IMF 위기 이후 헐값으로 나오는 국내기업들의 지분을 사들이거나 인수합병을 위한 투자이다. 결국 초국적 자본의 국내 투자를 통해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정부의 선전은 현실을 속이고 국민의 눈을 가리는 거짓말이며, 오히려 공기업 등 국내의 알짜배기 기업을 헐값에 팔아치우고, 주식시장을 초국적 자본에 개방시킴으로써 경제를 항상적 인 불안정 상태로 몰아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한미투자협정은 최근 공기업의 민영화 및 해외매각 추진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한미투자협정의 협상 과정에서 미국은 한국통신, 한전, 포항제철, 가스공사 등 4대 공기업의 민영화 및 외국인 주식지분 제한의 완화를 강력하게 요구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이에 따라 포항제철은 2001년 5월 현재 외국인 지분이 54% 에 이르게 되었으며, 가스공사는 1999년 2월에 해외 개방시 내국인 대우를 적용하겠다는 입장이 제출되었으며, 한국통신은 현재 외국인 지분의 제한을 49%에서 51%로 완화하려 고 하고 있다. 미국의 강력한 시장개방 요구와 이에 대한 화답이라고 할 수 있는 '외자 유치 제일주의'의 발상에 따라 민중의 기초적인 삶을 보장해주고 국가 경제의 버팀 목으로 구실하는 기간산업마저 외국 자본에게 빠르게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투자협정은 투자자에게 정부를 제소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 함으로써 초국적 기업이 노동권을 침해하고 환경을 파괴하더라도 국내법을 통한 제재가 어려워지고, 제재를 가했을 경우에는 오히려 투자와 기업활동의 자유를 침해한 다는 명분으로 투자자가 정부를 상대로 국제적인 분쟁해결기구에 제소할 수 있게 된다. 일개 기업이 우리 정부를 상대로 국제기구에서 소송을 벌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미국은 투자협정을 통해 지적재산권을 50년이나 보장받도록 요구함으로써 기술과 정보 독점권에 따른 배타적 이윤을 확보하려 하고 있으며, 인체에 해를 끼치는 유전자변형식품(GMO)의 규정완화도 적극적으로 추진중이다.
한미투자협정은 교육시장의 개방을 빠르게 진행시켜서 우리의 교육환경을 크게 바꾸어 놓을 것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의 지구화와 이에 편승하는 잘못된 교육정책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교육이 이미 심각한 위험상태에 놓여 있다. 재단에게 교육에 관한 전권을 위임하는 사립학교법의 문제가 이미 큰 문제를 낳고 있는 상황에서 교육부는 교수 계약제와 연봉제를 강행하려 하고 있다.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교육에 그대로 적용하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시장이 개방된다면, 우리의 교육제도는 말 그대로 위기에 빠지고 말 것이다.
일단 투자협정이 체결되면 그 효력이 10년 이상 동안 발휘되기 때문에, 정부는 투자협정을 근거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더욱 빠르고 넓게 진행시키려 할 것이고, 투자협정으로 인한 심각한 사회, 경제적 피해들이 나타나더라도 이에 맞서서 싸우기가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그 동안 정부가 추진해 온 신자유주의 개혁정책은 이미 여러 면에서 많은 문제들을 낳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낳은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해 반성하기는 커녕 한일, 한미 투자협정을 체결해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더욱 강화하고자 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정부의 근본적인 반성을 촉구하며, 또한 사회 안전망의 강화에 바탕을 둔 새로운 사회경제정책의 입안과 실천을 촉구한다.
-김대중 정부는 한미 투자협정 체결 기도를 즉각 포기하라!
-김대중 정부는 밀실협정인 한일투자협정의 원문을 공개하고, 체결을 즉각 무효화하라!
-문화자율성을 침해하고 미국 문화자본의 이익을 위한 스크린쿼터제의 축소■폐지를 반대한다!
-한미투자협정 강요하고, 경제종속 심화시키는 미국을 반대한다.
2002년 1월 28일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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