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국제아동(혼혈아동) 문제에 관하여
■ 글 / 마르고 오카자와 레이(Margo Okazawa-Rey) :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 사회사업학과 부교수
나는 현재 캘리포니아 주의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으며, 그곳에 있는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의 사회사업학과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리고 교수라는 직업 이외에도 연구자로 그리고 운동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난 15년간 나는 샌프란시스코와 이곳으로 오기 전에 살았던 보스톤 그리고 워싱턴에서 그 지역 내에 산재해 있던 인종적인 폭력과 성적인 폭력에 대한 문제와 일반적인 억압들에 관해 중점을 두고 일해 왔으며, 항상 모든 사람들을 위한 사회경제적 정의에 목적을 두고 그것을 위해 적극적으로 관여해 왔다. 나는 1994년 3월, 풀부라이트의 선임연구자로서 서울에 도착했다. 사실 내가 한국에 온 주요한 목적은 아프리카 미국인(흑인)들에 대한 한국인들의 태도와 인식에 대해 연구를 실시하고자하는 것이었다. 이 문제에 대한 나의 관심은 워싱턴에 살 때 그곳의 한국상인들과 흑인들 사이의 관계를 개선시키기 위한 일을 하며 노력하던 중 자라나게 되었다. 나는 ‘아시아인과 흑인 관계 위원회’라고 불리는 지역사회조직의 발기인 중의 한 사람이었는데, 그 조직의 목적은 “흑인사회와 한국인 사회 모두를 교육시켜서 갈등을 중재하며, 인종 상호간의 폭력 문제 전반에 대하여 대중교육을 실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지내게 된 처음 한달 동안 나는 거대한 문화적인 충격을 경험했으며, 많은 날들을 지적, 정서적, 그리고 정신적인 어지러움 속에서 보냈다. 그 당시 나는 그러한 충격에 대해 저항하기 위해서 무언가 매우 확고한 것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흑인들에 대한 이미지를 알아보기 위해 서울을 여행하면서 며칠을 보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한국인들이 아주 유난스럽게 흑인들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선입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부정적인 이미지만을 찾으리라고 기대했었는데, 공교롭게도 몇 가지 좋은 이미지만을 보게 되었다. 베네통, 티피코시, 한국방문의 해 등등의 광고를 말이다. 그리고 이즈음에 나말고도 또 한 사람이 같은 주제에 관해 연구를 하느라고 한국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 두 가지 사실이 연구를 계속할 수 있도록 나를 격려해 주었던 것이다. 그러한 발전은 매우 뜻밖의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의 마음과 영혼에 더 가까운 일 -가난한 여성들과 흔히 혼혈아라고 불리는 미국계 아시아인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 을 하도록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 나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있어서 이러한 관심거리들, 특별히 혼혈인에 대한 문제들이 연구를 해야 할만큼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내가 얼마나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지! 한국의 혼혈인 특정한 혼혈인 단체에 관해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현재 한국에 살고 있는 혼혈인을 몇 가지 범주로 나누어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범주는 사회·경제적 계급, 가족구조, 그리고 세대에 근본적인 기반을 두고 있다. 첫 번째로 분류될 수 있는 한국의 혼혈인 집단은 초기 미국이 한국을 점령하고 있던 기간과 제 2차 세계대전 직후, 그리고 한국전쟁이 끝날 때까지 미군과 한국 여성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로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태어난 혼혈인들의 연령 은 현재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이며, 그들 자신이 제 2세대 혼혈아들의 부모이기도 하다. 또 하나의 집단 역시 미군과 한국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들의 연령은 25세 이하이며, 주로 베트남 전쟁시기에 태어났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집단은 중층, 혹은 중상층의 생활수준에 있는 부모를 둔 자녀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젊고 어린 혼혈아들이다. 이 아이들은 경제·사회적으로 가장 특권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은 두 분의 부모와 함께 살고 있고, 그 부모님들 중 한 분은 대학교수나 외교관과 같은 전문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집단에는 미군부대나 그 주변에 살고 있는 인종이 다른 부모를 둔 군인 가족의 아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 세 번째 집단에 대해서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데, 왜냐하면, 많은 한국인들은 모든 혼혈인의 아버지는 GI들이며, 그들에 의해 혼혈아들이 버림받는다고 잘못 믿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연구는 처음 두 집단, 즉, 아버지로부터 버림받고 인종적인 특성과 사회·경제적인 지위로 인하여 혹독한 고난을 겪어 오고 있는 처음 두 집단의 성인이 된 혼혈인들과 어린 혼혈아들의 삶에 초점을 두었다. 지난 12월 펄벅재단에 등록된 혼혈아들의 수는 대략 625명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65%는 백인계이며, 28.5%는 흑인계, 그리고 나머지 6.5%는 기타의 혼혈아들이었다. 이러한 수치는 펄벅재단에 등록되어 있는 사람들의 수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인데, 내가 만난 다른 사람들의 주장에 의하면, 다만 많은 혼혈아들이 펄벅재단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 이보다 더 많은 수의 혼혈아들이 있다고 한다. 게다가 혼혈인을 위해 혼혈인들 스스로 만든 조직인 한국 혼혈인 협회에 따르면, 한국에 살고 있는 성인 혼혈인은 약 400명에서 500명 사이라고 한다. 기지촌의 아이들 내가 연구를 위해 만나본 사람들의 연령범위는 5∼46세에 이르는데, 이들 혼혈인들은 아프리카 미국인이나 라티노 혹은 백인들의 피와 한국인의 피가 섞인 사람들로 그들이 살아가는 생활환경 또한 다양하다. 아이들의 대부분은 홀어머니와 살고 있으며, 그것은 경제적 인 문제, 차별대우, 교육의 문제,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들이다. 이 집단에 속하는 혼혈아들이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황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펄벅재단에 등록되어 있는 혼혈아들은 혼혈아 1인당 35,000원의 수당과 중학교나 고등학교의 수업료를 받을 수도 있는데, 이러한 재원은 한국 정부와 펄벅재단이 함께 기여한 것이다. 혼혈아들의 어머니들 중 몇 명은 파출부나 보모 혹은 가게의 점원으로 일을 하기도 하지만 그 나머지는 계속 빠(bar)에 나가서 일을 한다. 인터뷰를 했던 어머니들 중 대다수가 방세와 학비, 그리고 의료보호에 대한 원조가 필요하다고 강하게 표현했는데, 그 이유는 그 들의 수입만으로는 아이들과 자신들의 입에 풀칠하기도 빠듯하기 때문이다. 그 어머니들과 아이들은 그들 가정이 직면하고 있는 비참한 경제적 상황 이외에도 한국인 아이들과 어른들로부터 받는 부당한 대우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혼혈아들은 더 자주 그리고 더 심하게 모욕을 당하는데, 이러한 모욕은 욕설과 비난으 로부터 시작해서 한국 아이들은 혼혈아들과 같이 놀면 안된다는 식으로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사람처럼 취급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고 한다. 그리고 흑인 혼혈아들은 더욱 심하게 무시당한다고 한다. 5살짜리 흑인 여자아이를 둔 한 어머니는 “우리 애가 어릴 적에 사람들은 걔보고 귀엽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 애를 놀리기 시작해요”라고 말한다. 혼혈인들은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소위 ‘정상적인’ 삶을 살고자 노력한다. 한 응답자에 따르면, 대부분의 혼혈인들은 한국인 배우자와 결혼한다고 한다. 또 다른 응답자에 의하면, 그들이 구할 수 있는 직업에는 한계가 있고 일을 하면서도 그들이 어렸을 적에 받았던 것과 똑같은 차별과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한다. 예를 들면 30대의 한 남자 혼혈인은 다른 한국 남자들로부터 어떻게 비웃음과 모욕을 받았으며, 그리고 어떻게 때대로 신체적인 위협도 받는지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단지 혼혈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연구를 위해 만나본 사람들은 한국에 있는 학교는 혼혈아들에게 특별히 어려운 장소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선생님에게조차 차별을 받기 때문이다. 그들은 외모 때문에 쉽게 특징이 잡혀지고 일단 특징이 잡혀지면 지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열등하다는 꼬리표를 달게 된다. 이 아이들이 그나마 위안과 위로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스포츠에서 재능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부정적인 경험에 단 한가지 예외는 ‘슈퍼스타’인 아이들, 즉, 지적으로 예술적으로 그리고 신체적으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일지도 모든다.(물론 그런 사람들은 어떤 인종집단에도 존재하지만) 비록 이러한 아이들이 정상적이라고 하는 평범한 다른 모든 아이들보다 더 나아져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느낄지라도 말이다. 왜냐하면 학교에서의 어려움 때문에 많은 혼혈아들이 고등학교를 끝마치기도 전에 학교를 그만둔다. 나는 9∼10살쯤 됨직한 어린 소년을 만났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그 나이에 벌써 학교를 그만 두었다. 교육은 한번쯤 검토되어야할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인종차별주의와 계급차별주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있는 현실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분야이다. 왜냐하면 한국의 교육제도는 계급구조에 기반한 불평등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특권을 가지고 있고, 사회적으로 빽을 가지고 있는 가정의 아이들은 학업을 계속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를 가지게 된다. 그들의 부모는 더 좋은 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키려 하고, 비싼 돈을 주고 과외를 시키고 방과후 특별한 교습을 시킬 수 있을 만큼의 경제적 여유를 가지고 있다. 혼혈아들은 한국사회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낮은 계급에 속해있기 때문에 어떤 것도 그들에게는 가능하지 않다. 한국인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좋은 교육 없이는 심지어 보통의 한국인이라고 할 지라도 사회·경제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에는 한계가 있다. 긍정적인 인종적, 그리고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있어서의 문제점은 혼혈아들의 생활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 50년동안 한국의 이데올로기와 미국의 서구 이데올로기 사이의 긴장은 한국 내에서 삶의 모양을 여러 가지로 형성해 온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은 미국을 잘 해야 원치 않는 침입자로 여기고, 최악의 경우에는 한국인들의 대적(사탄)으로까지 여긴다. 이와 같이 혼혈인들은 국가 내에서 정치적인 갈등에 대한 희생양들이다. 두 번째로 혼혈인 여자, 남자, 그리고 아이들은 한국사회의 정치·사회적 대립의 구체적인 정형이며, “순결한(?) 한국사회”의 헤게모니 이데올로기에 도전하는 것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미국에 있는 사람들은 한국의 혼혈인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다시 말하면 그들에게 있어서 한국의 혼혈아들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일 따름이다. 미국에서 우리는 종종 베트남의 혼혈인에 대해서는 듣는다. 그러나 한국의 혼혈인에 대해서는 전혀 들어본 적이 없다. 혼혈인은 두 국가와 두 문화사이에서 잡혀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혼혈인이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그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많은 한국인, 심지어 몇몇 어머니들과 사회사업가를 포함하여 혼혈인들에 대해 선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 조차 혼혈인을 위한 최선의 역할은 오락이나 운동이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혼혈인을 위한 여러 차례에 걸친 노력과 지원은 학구적으로 뛰어난 소질을 장려해주는 것을 제외한 음악적인, 그리고 스포츠적인 재능만을 개발시켜 주는데 투자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아 는 것처럼, 연예인이나 스포츠로 성공할 수 있는 기회는 매우 적다. 그런데 왜 이 아이들이 이런 길로 나가도록 장려되어야 하는가? 비판적으로 이해해야 할 것은 혼혈인은 두 가지 인종이며 두 문화를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중들이 그렇게 생각하건 아니던 간에 그리고 그것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간에 혼혈인은 인종적으로 한국인임 동시에 흑인이며, 백인이며, 라틴인이기도 하다. 즉 그들은 문 화적으로도 한국인이며 미국인이다. 그리고 사회와 더 나아가 세계에 그들의 존재는 문제가 될 것이다. 혼혈인이 하나의 혹은 다른 하나의 정체성을 개발시킬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방법중의 하나는 혼혈아로서 사회사업가, 목사, 선생님과 같은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 람들, 그들 자신과 같은 보통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많은 혼혈아들은 성인이 된 혼혈인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고립되어 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가난한 상황들과 한국인들에 의한 심리적이고 육체적인 학대와 사회적인 차별이 결합되어 있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결과적으로 혼혈인이 사회적으로 낙오되거나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그러나 심지어 이러한 조건하에서도 많은 혼혈인들이 이성적으로 잘 해나가고 있다. 내가 만난 아이들과 어른들은 정말로 똑똑하고 열망적이고 강하고 그리고 친절하다. 그들은 또한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매우 잘 투시하고 있다. 그들에게 주어진 기회는 절반이지만 그들은 확실히 성공할 것이다. 한가지 성공사례가 있다. 동두천에 살고 있는 흑인계 혼혈인 강영철, 그는 그곳에서 미취학 아동들을 위한 선교학교에서 혼혈아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모든 것은 당당히 맞서고 참아내야 할 싸움이며 고통일 뿐만 아니라 그가 그의 일에 들이밀어야 할 가벼운 존재와 희망으로 보일 수 있다. 또 다른 성공사례는 이태원에 살고 있는 혼혈인 가족 -아버지, 어머니, 아이들 모두 혼혈인- 인데, 그 가족은 어떻게 해서든지 가족들의 시간을 만들어 유지하려 하고, 한국혼혈인 협회의 일을 하면서 그들의 가정과 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해왔다. 정치·경제·사회적 배경 : 군국주의, 계급주의, 성차별주의 내가 연구하고자 하는 혼혈인 집단의 경험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더 큰 배경들도 알고 이해해야 한다. GI들과 한국 여성들 사이의 사회적인 관계는 개인적인 차원, 지역사회적인 차원, 그리고 제도적 차원에서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서 작용 하는 정치, 경제, 사회적인 요인들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들을 이들에서는 모두 다 얘기한다는 것은 힘들고 훨씬 더 완전하게 논의되어야 할 것들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그 요점들만 간단하게 요약하고자 한다. 군대의 주둔과 기지촌 미국은 한국 내에서 경제, 대중문화 그리고 사회구조에 영향을 주는 주도적인 위치에 있다. 군대가 주둔함으로써 한국이 받는 영향 중의 글자 그대로 확고한 예는 군부대 주변에 기지촌의 형성이다. 이것은 무수한 빠와 디스코 클럽, 양복점, 가죽 스포츠 의류점, 그리고 기념품가게들을 봐도 쉽게 알 수가 있다. 혼혈아들의 존재에 주요한 기여를 해 온 것은 바로 이 미군의 주둔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비록 하나의 미군부대는 한국 내에서 주도권을 잡고 영구적으로 주둔해 있는데, 미군들이 한국에서 근무하는 기간은 정말로 짧다. 왜냐하면 남한은 공식적으로 아직도 북한과 전쟁 중이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임기는 “고난의 기간”으로 정해져서 보통 1년 정도만 지속된다. 이와 같이 한국에 들어오고 나가는 GI들은 빨리 교체되는데, 이러한 상황은 그들을 일시적으로 머무르다가 떠나는 손님처럼 만들어 주고 결국은 혼혈아의 문제를 낳게 되는 것이다. GI들과 한국여성들 사이에 접촉이 이루어지는 주요한 장소는 한국인이 교용되어 있는 군부대와 군부대 주변, 즉 기지촌으로 이곳에는 두 잡단간의 사회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곳이다. 두 집단이 서로 친밀하게 접촉하도록 노골적으로 허가를 해주는 곳이 바로 기지촌이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접촉하는 데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는 것 같다. 그 하나는 성적으로 친밀하지만, 개인적이지는 않은 관계이다. 그 이유는 남자가 여자를 성적인 서비스를 목적으로 사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록 관계를 갖는 곳에서 일을 처리할 지라도 거래가 우선이다. 나머지 한가지 유형은 오랜 기간 관계를 지속하자는 잠재적인 약속이 이루어지며, 감정적인 친밀성과 서약이 관계의 필수적인 면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는 결혼으로까지 진행된다. 혼혈아가 세상에 태어나게 되는 것은 이 두 번째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만일 그 커플이 아기가 태어나는 그때에 결혼을 하지 않는다면, 결혼이라는 가능성과 약속은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다음은 GI와 한국 여성들의 인터뷰를 통하여 GI인 아버지가 그의 아이와 그의 부인이자 아이의 엄마인 한국 여성을 버리게 되는 가장 공통적인 이유들을 진술한 것이다. 1. 그는 한국이외의 다른 부대로 이송된다. 그곳은 멀어서 연락을 취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가족들에 대해서 등을 돌리기 쉽게 만든다. 결국 보지 않으면 잊혀지는 것이다. 2. 그는 영원히 결혼관계를 유지할 의도가 없을 뿐만 아니라 또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결혼을 했고 미국으로 돌아가면 그를 기다리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바로 그가 한국 여성들과 관계를 갖는 진짜 동기가 드러나는 것이다. 그는 편의상 결혼을 하는 것이다. 즉, 그는 한국에서 여성들과 함께 지내는 기간동안 결혼에 대해 언급하고 결혼에 대한 얘기를 할지라도 여성들에게 진짜 약속은 하지 않은 채 여성들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한국에서 짧은 군복무기간 때문에 한국여성들과 장기적인 관계와 가족을 형성하고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 지휘관에 의하면, “여전히 혼혈아 문제 이면에 있는 큰 이유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나마 운 좋게도 몇몇의 GI는 한국으로 돌아와 그들의 아이들을 미국으로 데리고 간다. 한 장교에 의하면 이것은 남자들이 그들의 부모로부터 받는 강요에 때때로 기인한다. 그는 “그 자식의 엄마가 한국으로 돌아가 애를 데리고 오라고 보낸 거예요”라고 말한다. 계급 차별주의 성차별주의 그리고 세계경제에 있어서 섹스 산업 역사적으로 볼 때, 기지촌에 있는 여성들은 주로 농촌출신의 가난한 계급 출신으로 중간계급이나 상류계급의 여성들처럼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 보지 못했다. 빠에서 일하는 많은 여성들은 처음부터 빠에서 일을 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공장에서 일하려고 서울과 같은 대도시로 왔다. 그러나 그들의 친구나 잘 아는 사람들이 기지촌에 있는 빠에 나가 일하면 공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 수가 있다라고 유혹을 하고 결국은 그들의 꾐 에 빠지게 된다. 이런 여성들은 절대로 매춘부는 되지 말자라고 굳게 다짐하면서 빠로 가게 된다. 그러나 방세와 빠에서 입을 옷 등을 사기 위해 착수금이라는 명목으로 빠 주인에 빚을 지고 계약서를 쓰게 된다. 어떻게 해서 쌓인 빚 때문에 그들은 결국 매춘에 종사하게 된다. 집을 떠나서 빠에 들어가 일하게 되는 또 하나의 공통적인 이유는 이런 여성들이 그들의 가정에서 심리적으로 그리고 정서적으로 고통을 받고 학대를 당했던 경험 때문이다. 이런 여성들의 설명에 따르면 그들은 알콜 중독에 걸린 아버지에 의해서 학대를 당하고 가족 중의 남성들에 의해 성적으로 학대를 당했다. 그들이 가정에서 부딪혀야 했던 이 같은 경험들은 그들에게 고통과 수치심을 가져다주어 결국은 집을 떠나게 되었다. 나는 또한 아버지가 빚을 갚지 못해서 빚 대신 딸을 주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 여자는 석사학위를 가지고 있으며 현재 미국에 살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GI들은 미국 남성들 가운데 한국의 기지촌여성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대다수의 사병들이 미국의 가난한 노동자 계급들이 사는 지역 출신이다. 그 지역 출신들은 중간 계급 이상의 남성들에게 주어지는 사회적 경제적인 기회들을 가져 보지 못한 사람 들이다. 내가 인터뷰했던 많은 미군들은 경제적으로 그리고 교육적으로 진보할 수 있는 기회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군대에 자원 입대했다고 말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의 경제적인 상황으로 볼 때, 별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제도적인 역할 한국에서 매춘은 공식적으로 불법이기 때문에 섹스산업 특히 기지촌에서의 섹스산업이 정부의 지원 없이 그 자체로 지속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지원의 두 가지 뻔뻔스럽고 두드러진 예는 여성들에 의한 VD카드의 사용이며, 군산 미공군부대 밖의 실버타운이라고 불리는 아메리카타운의 존재이다. GI들의 성적인 욕구에 대해 서비스를 해주는 모든 여성들은 성교를 통해 걸리게 되는 질병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줄 신분증을 확인 받아야 한다. 그들은 그 지역 보건소, 전문의에 의해 매주 검진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 신분증 없이 여자들은 일을 할 수도 없고, 어떤 경우에는 미군들이 출입하는 빠에는 들어갈 수조차 없다.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아메리카타운 주식회사는 미군만을 위해 특별히 건립되었다. 아메리카타운은 부대를 떠나 살기를 원하는 GI들을 위한 나이트 클럽, 식당, 상점, 여성들의 거주지보다 훨씬 더 놓은 질의 주거지 등은 한국정부의 이해와 협조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 한 것이다. 반면, 한국정부는 혼혈아들을 위한 제도적인 지원은 거의 하고 있지 않다. 그들이 제공해 주는 가장 확고한 지원은 펄벅재단에 등록되어 있는 아이들에게 매달 지급하는 매우 적은 지원금에 집중되어 있을 뿐이다. 미국정부는 이런 점에 있어서 한국정부보다 나을 것 이 없다. 미국 정부는 베트남의 혼혈아들의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1980년대 중반에 제정된 이민법 하에서 한국의 혼혈아들을 인식했다. 그런데 그 법은 1950년과 1982년 사이에 출생한 삶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었고, 그들이 미국으로 이민 올 수 있도록 해 주는 법이었지만, 이민을 위한 재정적인 책임을 기꺼이 떠맡아 줄 가족이나 혹은 다른 사람의 후원이 있어야만 했다. 원래 이것은 1982년 이후에 출생한 사람들과 적절한 후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미국으로 이민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이 법에 따라 혼혈인들이 그들의 아버지의 땅을 밟는 것은, 스스로가 좋아서 미국으로 이민해 나가기를 바라는 경제적인 수단을 가진 한국사람들보다 훨씬 더 어렵다. 몇 개의 미군부대에는 혼혈아 협회(American Children’s Associatin : ACA)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펄벅재단과 함께 일하는 자원자들의 모임으로 크리스마스나 독립기념일과 같은 미국의 국경일에 열리는 파티를 후원해 준다. 이러한 행사가 있는 날 혼혈아들은 파티가 열리는 부대에 데려와져서 미군들이 베풀어주는 점심과 과자 등을 먹으면서 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이러한 행사들은 대부분 일시적인 것들이며, 지속적으로 참가하는 사람들도 없다. 그러나 근래에 한 ACA에서는 GI의 의무복무기간 동안 혼혈아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Big-Sister / Brother’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노력이 의도하는 바는 좋지만, 이 모임에 참가하는 것이 자발적인가에 대한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장기간의 혼혈아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양질의 프로그램을 지속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한 GI 멤버에 “지금 우리는 대부분 말만하지 행동하지 않습니다. 조직이 어떻게 일하느냐 하는 것은 주위의 누가… 에 달려 있습니다. 때로는 많은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참가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다른 때에는 거의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한 10대의 혼혈아에게 이런 행사의 문제는 훨씬 더 깊고 심각한 것이다. “이런 파티는 의미가 없어요. 우리는 그저 햄버거와 핫도그를 먹고 캔디를 먹고 그리고 게임을 하러 갈 뿐이죠. 또 이런 행사는 어린 혼혈아들에게 미국과 미국인들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그리고 자기들이 우리를 정말 걱정하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기고 하죠. 그렇지만 우리를 정말 걱정하는 미군들은 없어요.” 혼혈아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뿌리는 이들 두 나라에 두고 있다. 그러므로 두 나라는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위에서 본 것처럼 한국 정부는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하며, 미국정부는 이민과 정착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여성의 사회·경제적 발전이라는 두 가지 기본적인 문제를 강조함과 동시에 태평양 지역의 여러 국가들의 제도적 차원에서 그리고 진보적인 운동의 차원에서 위에서 열거한 문제들에 모두 관심을 갖고 참가하여야 한다. 우리는 군대와 연결된 매춘뿐만 아니라 특별히 섹스산업에 종합적인 영향과 그 실체를 밝혀내야 한다. 우리가 진실을 밝혀내고 사람들을 교육시킬 때까지는, 눈에는 보이지 않을 지라도 이 문제들은 지속될 것이다. 예정되어 있지 않은 고난과 고통의 원인으로 말이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