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평화인권연대 활동가, 대안문화미디어모임 R.exe, hinol@orgio.net)

“…특히 만경강 유입구 쪽은 5급수에도 못 미치는 등급외의 수질을 보일 것으로 예측됐고, 표층과 구분되는 염분이 많은 심층수에서는 용존산소 고갈로 인한 물고기 떼죽음 등 생태계파괴가 우려…환경 기초시설 설치등을 위한 대책사업비가 제때 전액 확보되는 것으로 전제했으나, 하수처리장 건설과 하수관로 확충등의 재원조달 방안이 확정되어있지 않다고 밝혔다. “<한겨레신문 3월5일자 일부인용>

뭐, 익숙하다. 이쯤이야 자고 일어나면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지는 판타스틱한 사회에서는 일상이니까. 하지만 놀랍지 않다고 해서 열 받고 분노하지 않거나 체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지금과 같은 폭력적인 개발논리가 판치는 땅에서는 남산밑에 태권브이가 한사단쯤 잠들어있다고 해도 지구의 미래를 지키는데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분명히 여러 짝에 쓸모 있을 것 같은’사례를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꿈의 도시 꾸리찌바』(박용남 저, 이후) 라는 책에 소개된 동명의 도시이야기이다. 꾸리찌바는 브라질 빠라나주의 수도로, 대전 정도의 규모를 가진 대도시이다. 이곳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제3세계의 여느 도시와 같은 문제들을 겪고 있었으나, 약 40여년이 지난 지금은 ‘현명한 도시’, ‘희망의 도시’라는 격찬을 받고 있다. 꾸리찌바에 대한 존경의 근거는 이 도시가 ‘지속 가능한 개발’을 실제로 실현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단순히 시 차원에서 생태와 환경의 보호를 위해 노력하는 것뿐만 아니라 도시의 설계와 교통체계, 공업단지의 조성을 비롯해 각종 사회복지와 교육제도에 이르기까지 도시공동체의 모든 물질적 요소와 공동체 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놀라울 정도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속에서 희망을 실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전광역시 도시계획상임기획단의 수석연구원을 역임하고 ‘지금은 자동차를 길들일 때’등의 논문을 발표해온 저자 박용남은 이 책에서 97년 꾸리찌바를 방문한 경험을 바탕으로 꾸리찌바의 교통과 환경제도, 생태적 가치관에 입각한 교육제도, 주택문제, 교육제도와 시민의 입장을 중심으로 한 사회복지제도등을 풍부한 사진자료와 함께 조목조목 소개하고 있다. 비단 생태적인 문제의식만으로 보지 않더라도, 그들이 역사와 문화적 전통을 보존하고 재창조하는 방식이나 지역문화의 활성화를 위한 노력등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책에 실린 내용들 모두가 참신하고 흥미롭지만, 그중 몇가지만 간략하게 인용해보기로 한다.

꾸리찌바에는 지하철이 없다. 경전철도 없다. 그들은 계획적으로 조성된 버스전용차선(세계최초로 버스전용차선을 도입한 곳이라고 함)상에서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다닌다. 이중굴절버스, 버스를 갈아 타기 쉬운 원통형정류장등 버스 서비스의 질과 수송능력은 지하철을 능가한다. 지하철 건설에 들어가는 막대한 자본(Km당 90,000,000달러이상/ 꾸리찌바의 직통노선버스전용도로시스템은 Km당 200,000달러에 불과)을 투여하지 않고 체계적인 도로교통시스템을 통해 교통문제를 해결했다.

여섯 번을 갈아타도 요금은 한번만. 꾸리찌바는 1979년 ‘사회적 요금’제도를 도입했다, ‘사회적 요금’제도는 단거리노선이용자가 장거리노선이용자의 요금을 일정 부담하는 전제로 거리와 관계없이 단일요금을 부담하는 것이다. 이는 도시주변부에 거주하는 저소득계층에 대한 공적 부조의 한 방법으로,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중의 하나이며, 공동체구성원 모두의 합의하에 정착되었다.

진료예약은 전화 한통으로. 입원을 하기위해 종합병원에서 4시간씩 기다리거나 병원을 찾아헤메지 않아도 된다. ‘단일보건시스템’에 전화를 걸어 날짜와 장소,시간을 알수 있고 예약결과를 통보받을 수 있다. 이는 매우 간단한 서비스이지만, 얻을 수 있는 편의는 매우 크다.

물론 자본주의사회에서 이런 개개의 사례들이 근본적인 해결책일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꾸리찌바의 복지정책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지만, 계급간의 불평등은 그대로 인정하고 있다는 비판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필자의 지적대로, -이 책이 필시 실제보다는 좀 미화된 묘사일거라는 의심을 포함할지라도- 꾸리찌바는 “세계화를 모토로 지구촌 전체를 휩쓸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물결로부터 일정하게 벗어나 있는 몇 안되는 도시 가운데 하나” 일 것이다. 만일 정치적으로, 생태적으로, 문화적으로 올바른 삶을 꿈꾼다면, 이 책은 완벽한 지침서가 될 수는 없겠지만 우리의 상상력에 희망을 더해줄 수 있을 것이다.

내일 아침에는 이런 기사를 본다면 어떨까?

“서울시는 이달 안으로 광화문 네거리를 보행자의 광장과 공원으로 조성한다고 밝혔다. 이는 장기적으로 서울의 녹지공간을 시 전체의 30%이상으로 확대하기로 한 계획의 일환으로서…하반기에는 용산의 전 미군부대의 부지를 반환 받아 각계의 논의를 거쳐 생태공원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아마 놀라지는 않겠지만, 대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오늘 만우절이냐?”

…우울하게 만들었다면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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